장동익 대한의사협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정치권에 폭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연이어 장 회장의 ‘장애인 폄하’ 발언 문제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공개된 강원도 대의원대회 녹취록에서 장동익 회장이 장애인인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을 향해 “소아마비로 장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하반신(불구)자”라고 한 발언과 “그래서 의사에 대해 한이 엄청나게 센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녹취록에서 드러난 장 회장의 발언은 장향숙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고 심사할 때 의협에 반하는 발의를 많이 했다는 이유이다. 의사협회의 로비가 통하지 않는 의원으로 언급돼 있는 장향숙 의원을 향해 행사장에 모인 지역대의원들 앞에서 이같은 인신공격적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 장동익 회장은 “(장 의원의) 주치의가 세브란스 병원장 맡고 있는 G라는 대학동기인데, 장 의원을 책임지겠다고 했는데도 노인수발법 부탁했더니 실제로 법안소위에서는 (장 의원이) 반대로 얘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장 회장은 “화가 나서 부산의사회장보고 장 의원 후원하지 말라고 말했다”며 “쓸데없이 돈 버리는 짓이니까”라고 말했다. 장 의원이 발의한 의심처방을 확인하는 것을 의무화한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장 회장은 “약사가 의사를 골탕 먹일 수 있는” 법안으로 평가했다. 이에 장향숙 의원은 24일 국회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장 회장을 상대로 발언의 진위를 밝히는 과정에서, 녹취록에서의 ‘비하’ 발언에 대해 울분을 터뜨렸다. “저보다 많이 배우셨고, 돈도 많이 있고, 연세도 많고 경험도 많을텐데 부끄럽지 않습니까”라는 말로 포문을 연 장향숙 의원은 “지금까지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한 적도 없고, 의사에 한을 가진 적도 없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이어 “의심처방 응대의무 법안은 의약분업 이후 의사의 처방에 대해 약사의 의무와 의사의 의무가 불평등하고, 약화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을 막기 위해 추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국회 보건복지위를 다 모욕하고, 뼈가 빠지게 일해 온 법안심사소위원회를 도둑 취급 받게하고, 의심받게 하고…그 명예의 보상은 어디서 받느냐”며 “의원 하면서 칭찬도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이렇게 유감스럽고 모욕감을 느낀 적은 처음”이라고 분개했다. 장 회장은 장 의원의 항변에 대해 “장애인에 대해 몰상식스러운 발언을 한 점에 대해 의협 회장으로서 매우 유감스럽다”며 순순히 장애인 비하 발언에 대해 시인하며 “재활 치료와 장애인을 위해 애쓰고 있는 의사들에게 누를 끼친 것 같아 죄송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장애인단체를 비롯한 여기 단체에서는 장 회장의 장애인 폄하 발언에 대해 ‘즉각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 장애인단체 “장 회장 발언은 의료계 인식 수준 보여주는 것” 한국장애인총연합회(이하 장총)를 비롯한 장애인 단체들은 “장 회장의 발언은 480만 장애인들을 분개하게 만든다”며 “장총 등은 의협 장동익 회장의 발언이 비단 장향숙 의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의사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장총은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로서 그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활동하는 사람들”이라며 “국회의원에 대해 비판해야 할 문제는 그들의 활동이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가 하는 부분이지 그들의 장애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장총은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며 장애인과 마음을 나눠야할 의사 가운데 의사협회의 회장이란 사람이 대중 앞에서 장애인을 ‘편견과 아집으로 똘똥 뭉친 사람’으로 표현한 것은 통탄할 일”이라며 “장 회장은 즉각 장애인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시인하고 깊은 반성과 함께 480만 장애인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총의 이문희 정책연구실장은 “장 회장의 발언이 전체 의사의 편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장애를 갖고 있어서 의사에게 한을 갖고 있다는 발언은 반드시 사과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김태호 사무총장도 “의사협회장 정도 되시는 분의 말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발언 수준이 낮고, 자질이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한편, 의사가 약사가 문의하는 의심처방에 대한 응대를 의무화하고, 위반시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토록 한 의료법 개정안(일명 ‘의사 응대 의무 법안’)이 23일 국회 복지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되는 과정에서 장 회장의 로비의혹도 제기됐다. 녹취록에는 해당 법안이 지난 2월 법안심사소위에서 보류된 것에 대해 장 회장이 “법안심사소위 의원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었다”며 “3:3대 동수를 만들어 부결시켰다”고 말한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24일 장 회장 청문회에서 고경화 의원은 “이런 로비 파문이 있기 전인 23일 해당 법안이 수정돼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고, 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해 얼마나 천만다행인지 모르겠다”며 “만약 부결됐다면 또 지난 2월 때 같은 오해를 받았을 것 아니냐”며 장 회장을 비난했다. ■ ‘로비 안 통하는’ 장향숙 “장 회장 발언은 의료법 개정위한 것” 장향숙 의원도 “해당 법안은 국민들의 약화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지, 의료계나 약계를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며 “저한테 로비했냐? 밥 사준 적 있냐?”며 로비 의혹 제기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장 의원은 “장 회장이 지난 4월23일 일부 의료법 개정법률안을 설명하기 위해 의원실로 오겠다 해서 오라고 했다”며 “그러나 둘이 만나는 것이 모양새가 안 좋을 것 같아 약사협회 회장을 오라고 해 셋이 5분 정도 만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향숙 의원은 25일 한 방송에 출연해 “장동익 회장의 말은 어떤 것도 믿을 수가 없다”며 “의사협회도 권익단체로서 국회에 자신의 입장을 얘기할 수 있지만 문제는 돈 로비가 있었고 그걸로 인해 국회의원들이 이익단체를 위해 일했다는 얘기인데, 나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장 회장의 발언에 대해 불쾌감을 표했다. 하지만 이날 장 의원은 그동안 국회 주변에서 소문으로 떠돌던 로비설 속에 등장했던 의원들과 장동익 회장이 녹취록 속에서 언급한 의원들에 대해 “같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해 검찰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향숙 의원은 “내가 주무른다고 가만히 주물림을 당하냐”며 “어처구니없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의심처방 의사응대법안은 의사에게 한이 있어서도 아니고 의협에 불이익을 주거나 약사에게 이익을 주려는 것도 아니다”라며 “법을 만드는 사람으로 상식적인 차원에서 심사해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또 “다양한 이익단체들의 주장을 경청해야 하지만 최종 판단은 상식의 선에서 해야 한다”며 “법의 정당성과 당리성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지 로비로 법안이 좌지우지 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장 의원은 “상식적인 법 제정을 왜 그렇게 안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많이 가진 자들이 하나도 내줄 수 없다는 논리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특히 장 의원은 연말정산 대체법안, 의심처방 의사응대법안, 노인수발보험법 등이 장 회장의 로비대로 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결국 진짜 속내는 의료법 개정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장동익 회장이 언급한 의원, 정형근·배일도 의원으로 알려져 당사자들 극구 부인…검찰 수사 착수 이번 장동익 회장의 발언 파문은 KBS가 23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국회의원과 공무원에게 금품 로비를 해 온 정황을 담은 녹취록을 보도하면서 비롯됐다. 의협 장동익 회장이 지난달 31일 강원 춘천시에서 열린 의협 시도 대의원대회에서 회비 사용처가 불분명한 돈이 있다는 대의원의 문제 제기에 대해 국회의원에 수백만원씩 정기적으로 주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장 회장은 “한나라당 2명, 열린우리당 1명 등 국회의원 3명에게 매달 200만원씩 600만원을 쓰고 있다”며 “모 국회의원이 의협에 유리하도록 연말정산 대체법안을 만들기로 했는데 이에 대한 대가로 1000만원을 현찰로도 줬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술을 먹여서 한나라당 (의원) 보좌관 9명을 완전히 우리 사람으로 만들었다”며 “복지부에 있는 사람들에게 골프 접대하고 거마비도 집어 줬다”고 말했다. 이에 다음날인 25일 <한겨레신문>은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과 배일도 의원의 실명과 구체적인 액수를 밝히면서 사태가 급속히 커졌다. 장동익 회장이 “연말정산 대체법안을 만들기 위해 의원 섭외를 하는데, 정 의원이 ‘고려해 보겠다’며 긍정적으로 말했고, 이 말을 들은 우리 회원들이 고마워서 후원을 했다”는 점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형근 의원의 한 보좌관은 “지난해 12월 대한의사협회·대한한의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 등 세 단체장들이 연말정산 간소화와 관련해 문제가 있다고 설명하고 헤어진 뒤 각 단체장들이 자기 회원들한테 후원을 좀 하라고 독려한 것”이라며 “세 협회 티에프팀(TFT) 팀장이 독려해 후원금이 천여만 원이 된다고 장 회장에게 보고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정 의원이 장 회장에게 (법안과 관련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배 의원실은 “11월 17일 경 폐기물관리법을 언급하며 후원금을 넣었다는 대한의사협회 명의의 팩스가 들어왔다”며 “그때서야 입금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배 의원실은 의사협회로부터 9명의 의사 전화번호를 알아내, 같은 달 21일 이들의 계좌에 후원금을 되돌려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배 의원의 한 비서관은 “폐기물관리법 개정은 의사협회의 요구도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이미 의원실에서도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의견 수렴 차원에서 (의사협회의) 얘기를 들었을 뿐”이라며 “900만원이나 되는 후원금은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어 바로 돌려줬다”고 말했다. 박재완 한나라당 의원도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긴급회의에서 지난해 6월 장동익 대한의사협회장 쪽이 후원금 명목으로 현금 500만원을 건네려 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지난해 6월20일 저녁 8시40분께 서울 시내 어느 호텔 커피숍에서 의사인 친구를 만났는데 친구가 봉투를 주려고 시도했다”며 “‘뭐냐”고 물어보니 ‘회장님께서 협회 돈은 아니고, 개인 돈으로 후원을 하려고 한다’고 해 거절했다”고 말했다. 한편, 장 회장은 이날 보건복지위 증인으로 나와 “의원들에게 돈을 준 적이 전혀 없다”며 “회원들에게 ‘내가 열심히 한다’는 사실을 부풀리려 한 것으로, 사실이 아니다”라며 하루만에 발언을 뒤엎었다. 하지만 이번 ‘의·정(醫政) 커넥션’ 의혹은 그냥 덮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검찰이 대한의사협회의 정치권 금품로비 의혹에 대해 전격 수사에 착수하며, 철저한 수사를 할 것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의협 등으로부터 1000만원의 후원금을 받아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복지위)은 “‘연말정산 대체법안’ 문제는 전국민적 관심사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지 의료계의 요청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1000만원인가를 (그쪽에서) 후원금 계좌에 보냈다는 것은 사건이 일어나고서야 알았다”며 “후원금은 소액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한나라당 배일도 의원은 2005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할 때 협회 소속 9명이 900만원의 후원금을 낸 사실을 뒤늦게 알고 전액 돌려줬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의 복지위 간사인 김병호 의원은 “작년에 장동익 의협회장이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설명할 게 있다고 만나자고 해서 외부 말고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나자고 해 두 번을 만났다”며 “그러나 후원금을 받은 적이 없으며 당의 복지위 소속 의원들에게 로비 여부를 조사했는데 9명 전원이 없다고 해서 지도부에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전재희 의원 측은 “장 회장이 작년 의원한테 계속 식사 약속을 요청했으나 (로비를 의식해) 거절했다”며 “그러자 장 회장이 의원회관으로 찾아와 소아과를 소아청년과로 개명하는 게 의협의 숙원사업이라며 협조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한편, 장 회장은 지난해 9월 임모 전 의협 이사 등 6명에 의해 한국의정회 사업추진비 3억4,700만원과 협회비, 회장 판공비 등 총 3억8,000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고발됐지만 검찰은 같은 해 12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리했다. 그러나 임 전 이사 등이 항고를 하자 서울고검은 올해 2월 ‘수사가 미진하다’며 재수사를 명령, 중앙지검 조사부에서 수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김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