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말했다. “우리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팩트에 의해 쿨하게 기사를 쓰는 매체”라고. 그리고 또 말했다. “우리는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인 편향성 때문에 실수한 적은 없다”고.
노조 사무실 바닥 여기저기에는 이들이 ‘갈 데 없는’ 기자라는 것을 반영이라도 하듯, 카메라와 카메라 가방, 그리고 자신들이 없는 사이 나온 ‘짝퉁 시사저널’이 놓여 있었다. ‘짝퉁’을 보며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노조 사무실 한 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1987년 창간 후 그들이 만들어 온 898호까지의 시사저널 걸개였다. 이들의 애착은 <시사저널>이 아닌 이 역사에 담겨있는 시사저널 ‘정신’이다.
취재의 주체에서 대상자로 바뀐 것은 백승기 전 시사저널 사진부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백 기자는 “넉 달째 월급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대한 미안함보다는, 매주 꼬박꼬박 인쇄되어 나오는 ‘짝퉁’을 접하는 일이 더 괴롭다”고 말했다. 백 기자는 “우리 손으로 책을 만들고 싶다”며 “시사저널 기자들의 파업은 기자답게 일할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내지르는 절규”라고 말했다.
십 년 넘게 취재의 일선에서 주로 인터뷰 진행자로 살아온 문정우 전 시사저널 편집장. 이번에는 그가 거꾸로 취재의 대상이 됐다. 문 전 편집장은 “짝퉁 1호 발행 이후 절망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시사저널의 정신적 지분은 심상기 회장이나 금창태 사장이 아닌 바로 우리들, 시사저널을 지키고 가꿔온 기자들과 독자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어둡다. 시사저널 사태의 끝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사저널 기자들은 말한다. “이 환멸을 견디는 것은 숱한 희망의 증거들 덕”이라고. “그것들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불쑥 불쑥 나타났다”고 이들은 증언한다. 시사저널의 많은 애독자들은 시사저널 기자들이 반드시 ‘복귀’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마치 해가 비치지 않는 어두운 방안 저 편에 밝은 햇볕에 빛나는 거리가 있듯이.
정희상 신임 노조위원장. 정 위원장은 “일종의 ‘끝장 투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위원장이 말하는 ‘끝장 투쟁’은 그러나, 패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 아닌, 승리를 담보로 하는 것이다. 그는 “늦어도 5월 초순경까지는 시사저널 사태의 결말을 지을 것”이라고 했다. 정 위원장은 “그것은 우리 모두가 현재의 시사저널로 복귀하는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시사저널의 부활’이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새로운 모색’에는 ‘시사저널’이라는 이름을 다시는 쓸 수 없다는 가슴 아픈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노조 사무실 바깥에 놓여 있는 재떨이와 그 위를 수북하게 덮은 담배꽁초들. 그러나 이것은 절망의 상징이 아닌, 희망의 증거물이다. 어렵사리 구한 노조 사무실에 찾아오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비록 사무실은 낡고 비좁지만, 시사저널 기자들을 향한 독자들의 성원은 언제나 맑은 봄날이다. 기자가 찾아간 이날도 몇몇 독자들이 노보를 얻기 위해 들렀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빈손으로 오는 독자들이 없다는 것이다.
기자는 타고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대화 내내 백승기 기자는 취재수첩과 펜을 만지작거렸다. 더구나 그는 ‘펜대(취재기자를 이르는 말)’가 아닌 사진기자다. 시사저널의 명성은 단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그 무수한 특종 역시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언젠가 중국의 대문호 노신은 이렇게 말했다. “희망이란 길과 같은 것이다. 길이라는 게 사람들이 자꾸 걷다 보면 절로 나듯이 희망 역시 자꾸 품다 보면 현실이 된다”고. 시사저널 노조 사무실 바닥에는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젓가락 종이로 접은 작은 별이 놓여 있었다. 문정인 전 편집장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삐딱함, 까칠함, 자유로움”이라는 세 낱말로 표현했다. 이들이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는 날은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는 심증을 지울 수는 없다. 이들은 ‘진짜’ 기자고, 글쟁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양심이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