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0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거대자본 삼성은 광고로 언론을 길들이려 하지 말라”는 현수막을 걸고 파업 100일을 맞은 시사저널 기자들이 3인조 록그룹 허클베리핀과 독자들과 함께 거리문화제를 벌였다. 이 행사에는 시사저널 기자들이 독자의 후원금으로 만든 ‘시사저널 노보 특별판’을 무료로 나눠주고 태평로 삼성 본관까지 촛불행진하며 시사저널 사태를 시민들에게 알렸다. 시사주간지의 대표로 인정받아 온 <시사저널>은 작년 6월에 시사저널 870호에 실릴, 삼성 이학수 부회장의 인사비리를 다룬 기사를 금창태 사장이 편집국장 및 기자들의 동의 없이 삭제한 사건이 벌어진 후 기자들에 대한 줄 징계에 이어 직장폐쇄 조치 후, 관련 기사를 보도한 언론사와 시민단체와 독자까지 고소하는 등의 강력대응을 했다. 시사저널은 현재 편집국 기자 23명이 빠진 상태로 경영진이 외부기고와 편집위원회를 구성해 발행이 되고 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사장의 기사 무단 삭제와 부당 징계에 대해 편집회의 불참 등으로 반발하며 노동조합을 결성해 현재 용산 서울문화사 앞 건물에 임시 노조사무실을 개소하고 4월부터 2기 운영위원들이 경영진과 협상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25일 시사저널 노조 사무실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백승기(사진부장), 문정우(전 편집장), 정희상(노조위원장)등은 이번 사건의 사태와 심정 및 방향에 대해 밝혔다. “시사저널은 군소매체일 뿐인데 ‘할 소리는 한다’는 겁니다. 지난 18년 동안 의도적으로 또는 어떤 편향성 때문에 실수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나의 성향, 내가 가고자 하고 목적한 바 대로 매체가 흘러갔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매체 사이즈에 비해서 밖에서 우리에 대해 주목하고 우리가 썼던 기사들이 나름대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가 정치권력이든 자본권력이든 가리지 않고 응당 해야 할 이야기는 팩트(fact)에 의해서 차분하게 전달을 했기 때문이죠. 밖에서는 우리를 두고 진보지라고 얘기하지만 저희가 진보일 수는 없죠. 어떤 사람은 시사저널을 두고 중도좌파라고 하는데, 저희는 중도좌파든 중도우파든 그런 것에 관계없이 사실에 의해서 상당히 쿨(cool)하게 쓰는 잡지에요.” ■ 시사저널 노보 특별판의 보도에 의하면, 현재 발행되고 있는 시사저널의 편집위원장은 삼성 비서관 출신이고 지면을 거의 삼성과 중앙일보를 거쳐간 이들이 기획하고 편집하고 있다. 광고도 삼성전자·제일모직·삼성 에스원 등 삼성 계열사가 가장 많아 든든한 후원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삼성은 의례적으로 하는 기업홍보라고 하지만 사건의 발단이 된 기업의 홍보치고는 지나치게 많다. “어쩌면 우리가 삼성에 대해서 가장 많이 썼던 매체일 거예요. 그러니까 이번 2월에 시사저널 현 사장인 금창태 씨가 프레스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했어요. 일이 급박하게 가니까, 그 분이 ‘우리는 삼성에 대해서 굉장히 쓰고 싶은 얘기 쓰고 자유롭게 쓰게 해줬다’고 말하면서 그 증거로 삼성에 대해 쓴 기사들을 기자들한테 총 망라해서 보여 주었어요. 굉장히 아전인수 격이죠. 그 분이 우리들한테 삼성 기사를 쓰게 도와준 것이 아니라 그동안 막고 싶어도 못 막았던 것일 뿐이지요. 다만 이번에 그런 일들로 인해 그 분이 기저에 깔고 있었던 본색을 드러낸 것뿐입니다. 굉장히 상황에 대해서 자유롭게 쓸 수 있었던 매체라고 기자회견에서 했지만, 사실 그 사람이 했던 게 아니라 끊임없는 견제와 압력 속에서 기자들이 굴하지 않고 했던 일들입니다.” 책이 제대로 안 만들어지는 사태 막기 위해 노동조합 결성 “금 사장은 게이트 키핑(gate keeping) 차원에서 얘기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기사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학수 기사가 나간다는 연락을 받고 기사를 썼던 기자를 사장실에 불러 들여서 ‘이학수 씨하고 나하고 여러 가지 친분이 있으니 빼라’고 한 것이죠. 기사가 올 때까지 기다려서 보고 난 다음에 ‘이 기사는 어디어디가 좋지 않으니까 좀 더 보강을 한다거나, 이런 부분에서는 소송에 걸릴 요지가 있으니까 좀 더 확인을 하고 써라’라고 해야 하는데, 기사를 보지 않았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거든요. 이런 야만적인 행위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고 나서 나중에 번복하고 있어요. ‘기사를 보고 나서 얘기했다. 아니면 삼성측에서 이미 어떤 내용인지 알려줬다’고 하는데, 세상에 자기 매체에서 나오는 기사를 삼성이 알려줘서 알았다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잖아요. 저는 꼭 편집권이 그 분한테 있든 우리한테 있든 사장이 어떤 의견을 편집국에 개진할 수 있는 권리는 있다고 봐요. 그렇지만 기사를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랬다는 것이 바로 기자들을 화나게 만드는 부분이에요.” ■ 기사 삭제 사건이 일어난 후 이윤삼 당시 편집국장은 사표를 냈고 경영진 측에서는 즉시 사표를 수리했다. 금창태 사장은 편집국 팀장들에게 편집회의에 참석하라고 했지만 팀장 전원은 삭제 사건에 대한 유감표현이 먼저라며 불참이유를 담은 공식 답변서를 제출하고 편집회의에 불참했다.
“그 후로 팀장들을 위시로 해서 그 분의 명령을 받지 않았어요. 우리가 믿을 수 없는 그분의 명에 따를 이유가 없었거든요. 왜냐하면 단 한 번도 이 사태에 대해 사과하거나 유감표시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장영희 취재 총괄부장이 저(백승기)보다 일주일 먼저 회사에서 해직이 아닌 무기정직으로 쫓겨났어요. 그 이후 8월 23일에 저는 제 직책을 빼앗기고 ‘자택 대기 발령’을 받고 ‘편집국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습니다. 시사저널 기자들이 그동안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없었어요. 그 이유는 창사 이래로 회사와 편집국 간의 갈등이 있었을 때에는 기자협의회를 통해 아무리 큰 갈등이라도 해결한 전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무력적이고 비민주적이고 야만적인 상황을 당하고 난 후에 우리가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노동조합을 만들었죠. 책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 오니깐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시사저널이라는 책이 안 만들어지는 일을 없애고 꾸준히 막힘이 없이 이어가게 하기 위해서 만들었어요.” ■ 경영진 측과 단체협상을 계속 하고 있는 도중에도 시사저널 기자들은 결호를 낼 수 없다는 각오로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잡지를 만들어 왔다. 그동안 회사 측에서는 12월 초부터 취재·사진·미술에 걸쳐 16명의 편집위원을 대부분 중앙일보와 그 계열사에서 데려와 기자들의 파업에 대비해 별도의 사무실을 차려 시사저널 기자 없는 시사저널 발행을 준비해 왔다. “파업하기 전까지 시사저널은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저희들의 의지대로 만들었어요. 직장 폐쇄된 이후에 사측은 이미 사태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꾸준한 준비를 했어요. 아마도 ‘저 기자들이 파업까지 가겠구나’ 생각했었나 봐요. 그래서 소위 비상위 편집위원이라든가 기타 그들이 원하는 사람들을 모집해 용산에 임시편집국을 만들어 놓고 우리 파업에 대비해 놓고 있었어요. 그리고 직장폐쇄 후 그들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거죠.” ■ 어떻게 보면 구조적이지 못한 개인적인 이유가 이번 사건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언론을 통제하려는 삼성의 노력에 기자들이 반발하자, 회사는 직장폐쇄라는 극단적인 조치로 대응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기자들과 사측의 싸움이 아니라 언론과 거대자본 권력과의 싸움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시사저널에 대해 그들(삼성)도 알만큼은 알아요. 제(문정우 전 편집장)가 편집장으로 있었을 때 삼성과 관련한 기사가 많이 터졌잖아요. 우리 사장이 초기부터 편집회의 때 공공연히 했던 얘기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댈 곳은 삼성밖에 없다. 제발 삼성 좀 건드리지 말라’는 거였는데, 그런 말이 데스크에게는 엄청난 부담이거든요. 그 얘기가 PD수첩에 나가서 금 사장이 지금 화내고 있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태입니다. 경영진과 기자들 간의 엄청난 긴장관계가 있었고 데스크에서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우리 기자들이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으니까 금 사장도 스트레스가 쌓였을 거고 그래서 서로 폭발한 거죠.” ■ 고재열 기자의 ‘퀴즈왕 등극기’로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홍보가 많이 되었지만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장기간의 파업으로 인한 심정이 어떤지 물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보아 왔던 단순하고 고답적인 투쟁이 아니라 시사저널이 하면 달라도 뭐가 다르다고 느끼게 좀더 문화적으로 어디 가서 엄살피지 말고 즐기며 싸우자는 거예요. 우리도 왜 힘들지 않겠어요. 그러나 우리가 여유있고 행복해야 싸움에서 이긴다는 희망으로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져요.” 독립언론으로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No’라고 말했다 ■ 기자들한테는 시사저널 지면에 기사를 못쓰는 것보다 매주 발행 되어 나오는 시사저널 정체성이 사라진 잡지를 보는 것이라고 한다. 짝퉁 1호를 봤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물었다. “결호 방지용이라 급조해서 만든 잡지이기 때문에 질이 낮고 조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하는데, 그 와중에도 저쪽 사람들이 만들면서 지면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사용했다는 의심이 드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우리가 이번 기회에 그들의 속을 봤어요. 우리가 보고 싶어 본 게 아니라 그들이 다 보여준 것이죠. 결국 그런 식으로 매체를 만들고 싶어 했단 얘기거든요. 우리가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첫호를 보고 너무 절망적이었고 너무나 창피했어요.
그렇게 지면을 만들면 잘 팔리지도 않거든요. 세련되게 팔아먹어야지. 그래도 그들은 이 책도 좋아하는 사람이 참 많다. 그리고 잘 만든다고 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 얘기가 맞는지 안 맞는지는 확인할 바가 전혀 없습니다. 살펴보면 외고 비율이 66%나 되고 보도자료를 베껴 쓴 홍보성 기사에 짜깁기 기사, 표절시비가 붙은 BBC 기사 등 저희들이 만들던 시사저널과는 다릅니다.” ■ 이렇게 사태가 불거져 장기간 파업을 하는 점만 다를 뿐이지 다른 언론사들도 똑같은 갈등을 한다. “우리 사태가 일어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기자협회에서 전문 여론조사기관에 현직기자 300명에게 이 사태에 대해 물어봤는데, 80% 정도가 우리가 정당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얘기하지만 자기들 매체에는 못쓰고 있거든요. 예전 같았으면 기자협회들이 함께 일어났을 텐데, 지금은 우리가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요. 많은 매체가 사유화 되어서 방송과 신문들이 너무나 광고에 의존하고 있어요. 거의 지대(誌代)와 광고의 비율이 0:10이에요. 지대로 올리는 수입은 거의 없고요. 거의 다 광고로 하고 있어요. 생존의 문제가 걸렸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기사를 낼 수가 없어요. 우리는 사주 또는 경영주가 틀렸을 때 틀렸다고 말할 수 있고 시사저널은 그런 중간간부를 가지고 있고 그런 조직이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보거든요. 우리는 아닌 것을 ‘No’라고 했을 따름이고요. 심상기 회장이 99년 11월 시사저널을 인수하고 독자들과 기자들에게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고 독립 언론으로서의 가치를 지녀라’라는 편지 형태의 글을 썼어요. 우리 기자들은 소유주인 심상기 회장의 뜻에 맞게끔 생활해 온 거예요. 그런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 비록 시사저널 지면은 아니지만 시사저널 기자들은 파업하는 도중에도 ‘시사저널 거리편집국’을 개설해 기사를 쓰고 있다. 독자들이 시사저널 사태를 알고 양질의 기사와 중요 제보가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현재 노조의 협상 대상은 금창태 사장에서 심상기 회장으로 바뀌었다. “이제까지는 소유주가 대리를 내세워서 사장을 했거든요. 우리 시사저널 사장이 여러 달 동안 좋게 합의해서 끝내자는 역할을 했었어요. 기회를 준 것이죠. 그러나 그 사람은 사태만 더 악화시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거든요. 갈수록 징계자만 많고 갈등도 심해지고 노사 간의 갭(gap)은 점점 커지고 해서 그 사람을 우리가 협상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3월 말까지 이 사태를 해결하려고 했던 집행 1기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새로운 집행부가 만들어졌는데, 2기 집행부에서는 이제까지 많은 기회를 금 사장에게 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협상파트너로 인정할 수가 없어서 소유주인 심상기 회장과 얘기를 하겠다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심 회장 측에선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집 앞에서 침묵시위하고 옵니다.” 결과에 관계없이 우리는 이긴다 ■ 이번 달 말이나 다음 달 초가 데드라인이고 끝장투쟁 선언을 한 보도에 대해 정희상 위원장에게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물었다. “아마 약 보름 정도의 시차가 있을 거예요. 전임 집행부는 기자 23명 전원을 데리고 편집국으로 돌아가는 싸움을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의 파업사태에 대한 협상태도로 봤을 때 1기처럼 또 밀고 당기고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죠. 2기 때도 물론 돌아가는 싸움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도 새로운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거예요. 정통 시사저널 복구를 바라는 독자들의 요구가 강하지 않습니까? 과연 저쪽(사측)에서 우리랑 함께 해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같이 가야죠. 그러나 같이 갈 수 없다는 것이 최종 확인면 순간 정신적 지분을 가진 저희는 정통 시사저널에 대한 각계의 염원을 담은 기대에 새로운 시사저널로 화답해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는 의무감이자 부채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희들이 심 회장보다 10여년 앞서 시사저널 맥과 연결되어 있거든요. 그 분들의 지지와 후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실망시켜 드리지 않으려면 우리는 역사적 명분을 계승하는 새로운 실험으로 전통을 잇는 새로운 매체로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시사저널’이라는 명칭은 쓸 수 없지만요. 물론 기본적으로 저희 살길을 찾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외적으로 언론사적으로 봤을 때는 중요한 한 획을 긋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꼭 전제되어야 할 것은 끝장교섭이 됐든 뭐가 됐든 최종협상이 결렬된 경우이지요.” ■ 외국의 큰 주간지를 보면 거의 정기 구독과 지대에 의존하고 있다. 일반광고도 나오지만 공익광고를 넣어 유지하는데, 한국에서 민주성과 효율성은 있는데, 자본(광고)에 의존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분명히 있다.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게 돌파해 나갈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우리가 돌아가더라도 또는 새로 만들더라도 죽어라고 지대의 비율을 높여야 해요. 그래야 독립언론의 독립성이 강화되거든요. 이번 일로 시사모(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람들을 만나면서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많아요. 우리가 한 것에 비해서 너무나 지나치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요. 우리가 우리 책에 썼던 기사들을 우리보다 더 잘 알기도 하고 자기 돈 내고 사 보는 매체의 사태를 시간과 돈을 들여 돕고 있어요. 그것을 보면 너무너무 송구스럽고 어떨 때는 모골이 송연해지며 막 겁이나요. 과연 메이저 언론에서 우리와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독자들이 저렇게 투철하게 싸울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불가능할 것 같아요. 아마도 본 사태가 여러 독자 미디어 소비자 운동이 새로운 방식으로 시작되고 있고 어디로든 간에 이 시사저널 사태는 한국 언론사에 또 하나의 언론 학계의 연구모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서연 객원기자 / 정리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