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26일 충남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불이 나 잠을 자던 초등학생 8명이 숨진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화재참사’는 우리나라 엘리트 스포츠 문화의 현주소를 일깨운 사건이었다. 환기시설과 출입문 등 안전장치도 없는 곳에서 오로지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합숙을 하던 초등학교 운동선수들이 어이없이 사망한 이 사건은 왜곡된 우니나라의 엘리트 스포츠 문화가 낳은 인재로 기록되고 있다. 그 뒤, 초등학교 운동선수들의 합숙은 법적으로 금지되었지만 초등학생 운동선수들은 짧은 기간에 좋은 성과를 내야하는 부담감에서 얼마만큼 자유로워졌을까?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참사 이후 초등학생 운동선수들의 합숙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합숙 관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합숙경험을 가진 초등학생들은 응답자 725명 가운데 341명(47.0%)로 나타난 것이다. 30일 이하로 합숙한 이들이 합숙경험이 있는 286명 가운데 83.9%로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기간이 120일 이상이라는 학생도 29명이나 됐다.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지난해 7월 31월부터 9월 8일 약 40일 동안 전국 15개 시도 746명의 초등학교 운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를 보면, 초등학생 운동선수들의 여건이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10명 중 2명, ‘운동하느라 수업 참여 못해’ 우리나라 초등학생 운동선수 가운데 여전히 정규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작지 않았다. 응답자 746명 가운데 161명(21.6%)이 ‘3~4교시’나 ‘1~2교시’만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나 학습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축구 등 단체종목을 하는 초등학생들은 교육부 지침대로 수업 참여시간을 잘 지키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개인종목과 대인종목의 운동을 하는 초등학생들의 상황은 열악한 정부 정책의 허점도 드러났다. 단체종목 총 응답자 515명 중 정상적인 수업참여시간 5~6교시를 참여하는 학생운동선수는 429명(83.3%)으로 높은 참여율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종목 총 응답자 128명 중 77명(60.2%)과 대인종목 총 응답자 103명 중 67명 (65.0%)만이 정상적인 수업참여시간 5~6교시를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4명 가운데 3명’, 언어·신체폭력 경험 욕설 등 언어 폭력을 겪은 초등학교 운동선수는 응답자 746명 가운데 554명 (74.3%)으로 나타났다.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운동선수도 총 응답자 중 559명(74.9%)으로 나타났다. 4명 가운데 3명이 언어나 신체 폭력을 겪고 있는 것. 성적 폭력 피해를 경험한 응답자도 전체의 14.9%(111명)이나 됐다. ‘언어적 폭력 가해자가 누구인가’의 질문에 응답자 중 255명(42.7%)은 코치, 159명(26.6%)은 감독 등 지도자들로부터 언어 폭력 피해를 입고 있었다. 운동부 선배에 의해 언어적 폭력은 135명(22.6%)으로 뒤를 이었다. 운동선수들이 겪는 체벌 등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초등학생 운동선수도 총 응답자 중 559명(74.9%)이나 됐다. 특히 피해 운동선수들은 ‘몽둥이’, ‘손’ 등으로 폭력을 경험했고 운동기구나 죽도·하키스틱과 같은 위험한 기구로 폭력을 경험하기도 했다. “성적 폭력 피해를 경험했는가? 있다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초등학생 운동선수들은 성적 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111명 중 50명(45%)은 지도자에 의해 성적 폭력 피해를 경험했다. 여학생의 경우 총 응답자 135명 중 8명이 성적 폭력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4명은 감독선생님에 의한 것이고 3명은 코치선생님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 스포츠 선진국일수록 학생운동선수 인권에 관심 유소년 스포츠가 활성화된 영국 등 스포츠 선진국의 사례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학생운동선수들의 심각한 인권상황이 여실히 드러나다.
영국의 경우, 영국선수협회(SAF)는 모든 어린 선수들이 즐겁게 운동하며 육체적·성적·정신적 폭력으로부터 보호받고 안전한 환경에서 운동 할 수 있도록 폭력에 대한 정의와 준수해야할 규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영국선수협회는 지도자에게 ‘차분함을 유지하라: 부적절한 행동을 급하게 취해서는 안 된다’는 등 폭력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대응방법을 정하고 있다. 일본은 학생들이 자신의 취미에 맞는 운동종목을 선택하도록 하고,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는 클럽 활동과 달리 교육과정에 포함하지 않는 방과 후 자유로운 체육활동도 활발하다. 자유롭게 모인 학생들이 전국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팀을 만들어 각 경기 연맹에 등록하는 경우도 많다. 학교 체육의 정상적인 운동과 운동 특기를 가진 학생의 자율적인 운동부 활동을 활성화시킨 결과 일본의 선수 인프라는 폭발적으로 확대됐다. 일본 프로야구에 사회인야구 출신이 종종 있는 경우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은 “학교별 전국규모 대회(소년체전)를 연 2회로 제한하고 방학을 이용한 전국규모 대회 개최를 추진하는 방법”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산학협력단은 국가인권위원회 산하 ‘학생운동선수 인권보호부서(가칭)’를 설치해 ‘아동인권보호 전담관(가칭)을 두는 방법도 함께 내놓았다. -오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