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김근태 두 전직 열린우리당 의장이 말 그대로 ‘계급장 떼고’ 언쟁을 벌였다. 언쟁의 이유는 ‘열린우리당의 진로’다. 또 하나 있다. ‘곧 대선 정국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결별하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는 두 전직 의장의 판단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은 “나갈 테면 하루라도 빨리 나가라. 나는 당을 지킨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 1라운드 - 노무현 vs 정동영, 결별 진즉에 확인 이들의 논쟁은 재보선 직후인 지난달 2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청와대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정 전 의장은 2·14 전당대회의 대통합 정신을 강조하면서 “(범여권) 통합 작업이 너무 지지부진해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된다”고 주장하고, “대통합을 위해서라도 열린우리당을 버려야 한다”며 탈당 의사를 노 대통령에게 내비쳤다. 이러한 발언을 그냥 듣고 있을 노 대통령이 아니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나간다고 해서 잘된다는 보장이 없다”며 “어렵더라도 당을 지켜야 한다”고 거듭 만류했고 정 전 의장은 탈당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언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날 노 대통령은 “정동영도 나가고, 당이 껍데기가 되면 내가 다시 (열린우리당에) 들어가겠다”며 당에 복귀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지난 4월 27일 청와대 오찬 회동은 사실상 노 대통령과 정 전 의장 간 결별을 선언한 자리였다”고 풀이했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인 이광재 의원은 5월 6일 “가출을 자꾸 하면 습관이 되고 탈당도 자꾸 하면 이마에 ‘주홍글씨’가 쓰이게 된다”며 정 전 의장을 비판했고,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도 최근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 의원과 만나 “우리(친노직계)는 당을 지킬 테니 떠날 분들은 떠나라”며 “비례대표 의원들도 편안하게 보내드리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과의 결별을 확인한 정동영 전 의장은 한 걸음 더 나갔다. “열린우리당 후보 경선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는 5월 3일, “십자가 지는 것을 피하지 않겠으며 이달이 가기 전에 결심하겠다”며 “열린우리당 후보 경선에 참여하지 않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노 대통령은 대단한 전략가”라며 “고건 전 총리, 정운찬 전 총장에게 했던 정치적 발언을 어느 시점에선 나한테도 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 전 의장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등 이른바 ‘친노 직계’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누구를 배제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정치란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극히 부정적 시각을 보였다. 또한 ‘참여정부 정책에 대한 긍정 평가부터 해야 한다’는 한명숙 전 총리의 지적에 대해 정 전 의장은 “권력에서 제일 나쁜 건 ‘예스 맨’”이라며 “나는 (노 대통령의) 대연정론, 대북 송금 특검, 코드인사를 막지 못한 데 대해 반성하고 후회한다”고 노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 2라운드 - 김근태 전 의장의 정동영 따라하기(?) 정동영 전 의장이 ‘5월 중 탈당’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나서자, 덩달아 바빠진 사람이 김근태 전 의장이다.
이미 지난 4월 17일 국민대 정치대학원 초청 특강에서 “어느 시점을 탈당 보류의 마지노선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지난 2·14 전당대회에서 (대통합 완성의 시점으로) 6월을 보지 않았느냐”며 ‘통합의 가시적 성과가 뒤따르지 않을 경우에 탈당 등 행동에 나설 수 있음’을 암시한 바 있는 김 전 의장은 5월 3일, “5월 말까지 실무적으로도 분명한 대통합 신당의 가시적 효과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의장이 5월말까지로 잡은 것은 2·14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에 이임한 4개월 시한인 6월 14일까지 당 해체를 완료하기 위한 것이다. 김 전 의장은 이날 범여권 후보들의 5·18 망월동 공동 참배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이후 원탁회의를 가질 것을 제안한다”며 “국민 속에서 함께 하는 명실상부한 국민리그가 돼야 하며 국민경선추진위 구성에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석회의 범위에 대해선 김 전 의장은 “문국현·정동영·천정배·손학규·한명숙·김혁규 등 모든 예비후보에게 개방돼야 하며, 불참하는 것은 대통합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등 친노 인사의 합류여부에 대해서는 “우리당 해체를 전제로 대통합으로 가자는 것에 동의한다면 배제하지 않는다”며 원론적인 입장만을 말했다. 정동영 전 의장과의 동반탈당 여부에 대해서도 김 전 의장은 “단정할 순 없지만 의견을 교환하겠다”고 말했고, ‘도로 열린우리당이 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는 “대통합 신당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개혁·진보적 가치에 비판적인 분들은 또 다른 그룹을 만들어 경쟁해야 한다”며 “커밍아웃해서 경쟁하고 국민 앞에서 선택을 받아야 잡탕정당이라는 비판을 넘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 3라운드 - 노무현 대통령의 대반격, “정동영·김근태의 통합신당은 지역당” 정동영·김근태 두 전직 의장들의 ‘열린우리당 해체’와 ‘탈당시사’가 날이 갈수록 위험수위에 근접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이들을 거세게 비난하고 나섰다. 노 대통령은 7일 “이제는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정치인 노무현’이 좌절에 빠지고 있다”며 “열린우리당이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어 최근 열린우리당 해체와 탈당을 시사한 김근태·정동영 전 우리당 의장들에 대해서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그는 “당이 오랫동안 흔들리고 표류하더니 이제는 와해 직전의 상황”이라고 지적하고 “일부 사람들은 당을 깨고 나갔고 남아 있는 대선 주자 한사람은 당을 해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한사람은 당의 경선 참여를 포기하겠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며 “당신들이 말하는 통합신당은 무슨 당인가. 과연 지역당이 아니고 창당선언에서 다섯 번이나 강조했던 국민통합당이 맞느냐”고 되물었다. 노 대통령은 “통합신당이 무슨 당이든, 당신들이 하는 대로 하면 과연 통합신당이 되기는 하는 것이냐”며, “그렇게 하면 과연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인가.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열린우리당 창당의 정신에 맞는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노 대통령은 “제가 보기에는 구태정치로 보인다”고 두 전직 의장들을 비판하고,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기 위하여 당을 깨고 만들고, 지역을 가르고, 야합하고, 국회의 다수당이 되기 위하여 정계개편을 하고, 보따리를 싸들고 이당 저당을 옮겨 다니던 구태정치의 고질병, 당신들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엄숙한 표정으로 국민들에게 청산을 약속했던 그 구태정치의 고질병이 다시 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당이 어려우면 당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당원에 대한 도리이자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지적하고 “가망이 없을 것 같아서 노력할 가치도 없다 싶으면 그냥 당을 나가면 될 일이고 그러면 끝까지 창당정신을 살리고 싶은 사람들이라도 남아서 노력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인데, 왜 굳이 당을 깨려고 하느냐. 당을 깨지 않고 남겨 두고 나가면 혹시라도 당이 살아서 당신들이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될 것 같아서 두려운 것이냐”고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정치는 잔꾀로 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일부는 당을 박차고 나가서 바깥에 신당을 조직하고, 일부는 남아서 당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도록 진로방해를 하면서 당을 깨려고 공작하는 것은 떳떳한 일이 아니며 복잡한 분석과 수읽기, 거기서 나오는 잔꾀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그들은 당을 해산하자고 하고 당을 나가겠다고 한다”며 “설사 가치와 노선이 맞아서 통합신당을 하더라도 당을 가지고 통합을 하는 것이지 당을 먼저 해산하고 통합을 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당을 해산하고 누구와 통합을 한다는 말이냐. 어느 당에 입당을 한다는 말이냐”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굳이 당을 해체하자는 것은, 희생양 하나 십자가에 못 박아 놓고 ‘나는 모른다. 우리와는 관계없다’고 알리바이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라고 열린우리당 해체론을 강력히 비판하고 “스스로를 속이고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 4라운드 - 정동영·김근태의 합창, “노 대통령이야말로 구태·잔꾀정치” 노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맹비난에 직면한 정동영·김근태 두 전직 의장은 5월 7일과 8일에 걸쳐, “노 대통령이야말로 구태정치, 잔꾀정치”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김근태 전 의장은 노 대통령의 글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오른 직후 논평에서, “아무리 (김근태가) 미워도 말은 가려서 했으면 한다”고 반발했다. 그는 “소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 최근 ‘구멍가게도 못할 사람들’ ‘살모사 정치’라고 하는데 아마 김근태 들으라고 한 소리인 듯 하다”고 주장하고 “대통령께서는 정치인 노무현 자격으로 오늘 ‘구태정치’ ‘잔꾀’ 등 특유의 독설로 현 상황을 진단했다”며 “우리 국민은 품격 있는 정치, 품격 있는 대통령을 보고 싶어 한다”고 노 대통령을 비판했다. 김 전 의장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는 없는 일”이라며 “대통합신당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갈 테면 가라’고 압박하고 있고 비례대표도 다 보내주겠다고 한다. 무엇이 진심이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한쪽에서는 어르고, 다른 한쪽에서 뺨때리는 행태야말로 구태정치”라며 “여론이 불리할 것 같으면 ‘우리는 대통합신당을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잔꾀정치”라고 주장했다. 김 전 의장은 이어 “우리당의 창당정신은 실종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는 제1 원칙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거부, 한미FTA 졸속타결 등을 주도했던 대통령님에 의해 부정됐다”며 “남북화해와 협력이라는 2대 원칙은 대북송금특검을 도입함으로써 좌초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지역주의 타파와 국민통합이라는 3대 원칙은 대연정 제안으로 스스로 동력을 잃었다”며 “도대체 어떤 원칙과 명분을 주장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한 “스스로 원칙과 명분을 파기하고 이제 허울뿐인 우리당을 사수하자고 하는 것이 가장 무원칙하고 명분 없는 일”이라며, “열린우리당의 훼손된 창당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새로운 틀과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동영 전 의장도 이날 “당 사수 주장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들어간 것과 같다”며 “찬성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5월 7일 오전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수성 새마을중앙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당을 지키는 게 원칙이 아니라 창당정신을 이어가는 게 원칙”이라며 “우리당은 그 창당정신을 국민에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병자호란 당시 조선이 남한산성으로 후퇴했던 기록을 거론하며 “산성으로 들어가 진지전을 편다는 것은 국민을 죽이는 길”이라며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전 의장은 또한 노 대통령의 글 발표 이후 논평에서, “아무리 고뇌해 봐도 저의 결론은 민주개혁진영의 대통합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며 “우리가 견지해야 할 원칙은 열린우리당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과는 추구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고 현재적 시점에서 정동영의 원칙과 대통령의 원칙이 다를 뿐”이라며 “정동영의 원칙과 길은 국민에게 순종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정 전 의장은 “그 길은 민주개혁진영의 대통합·대화합이라고 생각한다”며, “반한나라당에 동의하는 세력, 부패와 특권을 반대하는 세력이 집결하여, 남북동서의 통합을 달성하고 대선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당심’은 2·14 전당대회의 합의정신, 즉 대통합 신당과 열린우리당의 해산을 결정했습니다. 이를 국민에게 공약했다”며 “최근 일각에서 2·14 합의정신을 깨고 대선을 포기하려는 듯한 패배주의적 발언을 보면서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열린우리당 사수론자들을 비판했다. 그는 “이것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고, 시대정신이며 국민의 명령이고 이것을 따르는 것이 국민에게 순종하는 정치이며, 국민우선의 정치”라며 “죽을 각오로 분열된 민주세력을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정 전 의장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은 민주화의 역사적 정통성이라는 기반 위에서, 탈지역주의·반특권·반부패의 가치를 국민에게 평가받고 선택받은 역사”라고 규정하고 “그 역사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기 위한 통합이 원칙과 대안도 없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노 대통령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국민들에게 무의미한 ‘사수론’을 주장할 때가 아니라, 새롭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정치를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며 역사적 짐이라고 생각한다”며 노 대통령의 주장과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친노와 반노’ 사이에서 길을 잃은 김근태-정동영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전 의장과 정 전 의장이 전선을 잘못 잡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실정이다. 다시 말해 “‘대통합 대 당 사수’의 구도를 만들지 못하고 보수신문의 공격이 될 수 있는 ‘친노 대 반노’의 구도로 만들어버렸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중도신당, 민주당, 김근태·정동영 등이 다들 지분을 차지하며 블록화 해나가고 있다”며 “장관직과 당 지도부 등 기득권은 다 누린 사람들이 대선 행보가 급한 마음에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두 전직 의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지지율을 버려서는 (대권은) 힘들다”고 말했다. 당의장을 역임한 신기남 의원도 “노 대통령의 지지자들까지 버리면 다음 대선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작심하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결별 수순을 밟고 있는 정동영·김근태 두 전직 의장들은 노 대통령과 비교될 수 있는 자신만의 비전과 정책을 내놓기 전에는, 탈당을 해도 그 효과는 극히 미미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 전반의 전망이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