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경기고 출신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대선가도에서 낙마(落馬)해서 결국 낙상(落傷)하고 말았다. 그것도 변죽만 울리다가 말이다. 서울대에서 총장이 될 수 있는 출신 성분은 반드시 경기고라는 성골집단이어야만 한다. 역대 서울대 총장 출신 성분이 대부분 그렇고, 교수사회에서 현실적으로도 가장 힘센 정치적 파워를 가지고 있다. ■ 서울 양반, 경기고, 자유주의자 그런데 현실정치에서는 그들의 파워가 먹혀들지 않는 것은 왜일까?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이회창 옹도 상고 출신에게 거푸 두 번씩이나 당했다. 경기고 동문들의 원한도 울분도 십분 이해할 만하다. 회창 옹이 패한 후 ‘경기고 동문회의 충격’이란 글에서 “상고 출신의 대통령 당선자 밑에서 명문 경기고 출신들이 앞으로 5년을 보내야한다니, 우리 앞으로 더욱 분발하자(경기고등학교 49회 한국 언론인 포럼 윤명종 회장)”는 얘기도 전해졌던 판이니, 그들의 정치적 상실감과 가슴앓이, 상고 콤플렉스가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그렇다고 경기고를 다녔다는 한화 그룹의 김승연 회장 같이 상고 출신들을 손봐준다고 다 집합시켜 놓고 엎드려 뻗쳐 시킬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번 대선 가도에서도 고건에 이어 벌써 두 번째다. 이제 경기고 출신으로 누가 남아 있는가? 경기고등학교 교훈이 ‘자유인·문화인·평화인’이란다. 정운찬의 대선 출전을 접는 변(辯)에서도 그런 뉘앙스가 풍기지만,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자유주의자니까, 어떤 때는 신중하고 어떤 때는 내 맘대로 한다”고 했다고 한다. 자유주의자. 이 말을 되씹어보면 “이제껏 공부 잘 해서 남들 부러워하는 경기고·서울대 나오고, 거기다 교수하고 총장까지 한 내가, 세상에서 무엇 하나 부러울 게 없는 내가 이곳저곳 다니면서 별 볼 일 없는 대중(?)들을 향해 연신 고개 굽신 굽신거리면서 표 달라고 구걸하는 그런 ‘노예적 삶’을 살수 없다”란 말로 들릴 뿐이다. 그게 교양 있고 품위 있는 ‘문화인’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고인이나 어울리는 이전투구가 학벌 좋은 경기고인에게는 ‘평화인’으로서의 자유를 상실케 한다는 얘기쯤으로 들린다. ■ 촌스러움의 결핍과 촌놈의 역사의식 우리의 경우에 ‘촌놈’이란 ‘서울 쥐와 시골 쥐’라는 우화에서 보듯이 서울 쥐가 가지고 있는 도시의 ‘세련미’와 삶의 방편으로서의 ‘약삭빠름’을 지니지 못한 사람을 가리킨다. 경기고식으로 말하자면 ‘문화적’이지 못하다. 언어적으로는 좀 어눌한 표현을 사용하고 유머와 재치가 섞인 언어적 구사를 하지 못하고, 외관상으로는 좀 궁상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 즉 ‘촌스러움’을 지닌 사람을 ‘촌놈’이라 불러왔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표현 중에서, ‘서울 양반들은 눈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간다’고 하지 않던가? 이 땅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중심’이라는 공적인 정치적 공동체에 거주하며, 정치권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근접한 거리를 두고 살던 서울 사람보고는 ‘서울 놈’이라 하지 않고, 흔히 ‘서울 양반’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역사란 ‘중심과 주변’, ‘중앙과 변두리’라는 대립 구조 속에서 발전되어 가기 마련이다. 중심은 언제나 주변 세력을 끌어들이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고, 중심의 변화와 변동이 역사의 궤적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은 지난 인류의 역사가 반증해주고 있다. 그 역사적 예증으로서 헬라스 역사가 아테네를 중심으로 해서 다른 폴리스에로의 점차적인 권력 이동과 변동을 통하여 이루어지었듯이, 중국의 역사도 중원 지방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중국역사의 큰 흐름이 면면이 이어져 내려 왔다. 또한 산업혁명을 이끈 도시의 인구 집중화도 도회지 인들의 세련된 삶에 대한 부러움이 한 몫을 담당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심과 주변’이라는 우연적인 요인이 역사를 움직이는 역동적 힘이었다고 한다면, 또 역사가 이성에 의해 움직이기보다는 감성에 의하여 움직인다면, 우리는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지구의 표면 전체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파스칼의 ‘감성적 역사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진실은 지나친 정확성에서도, 그렇다고 해서 지나친 감성(파토스)에로의 호소에서도 찾아질 수 없는 특수한 어떤 것이다. 어찌 보면 역사는 지성과 감성의 줄타기 인질일는지도 모르겠다. ■ 경기고 출신은 영원히 ‘촌놈’일 수 없다 촌놈으로서 변두리인의 중심에 대한 반감은 ‘언젠가 내가 너희들을 지배하겠다’는 야심과 분노, 억눌림에 대한 복수의 감정을 숨겨둔 채 살아나가게 만든다. 그런 한편으로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능력, 다시 말하여 ‘촌놈의 환경과 처지’를 깨부수려는 추진력 내지는 역사의 역동적 힘을 키워 나가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저 중심을 향해 솟구치려는 의지를 불태운다. 촌놈이 지니는 역사적 힘의 특징은 맹목적인 정의의 분노와 내 뜻을 언젠가는 반드시 펼쳐 보겠다는 역사의 힘으로서의 역동적 추진력이다. 그럼에도 촌놈은 일생동안 촌놈의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한다. 이것은 촌놈의 짊어진 운명과도 같은 어떤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이 땅의 촌놈들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중요한 통로가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사법고시를 패스하여 권력의 집단에 유입되는 것이다. 이 일은 머리가 좋은 촌놈에 해당되는 것이고, 촌놈적인 감성이 뛰어난 자는 명예의 수단으로서 ‘신춘문예’라는 또 다른 수단을 통해서 문인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글을 통하여 자신이 겪은 콤플렉스를 떨쳐내려고 노력하는 집단이다. 다른 하나는 또 다른 부류의 촌놈의 기질을 가진 자들로서 다소 머리가 둔한 탓에 실질적 권력을 소유한 집단에 모여드는 육사 출신들이었다. 문인의 70~80%가 촌놈 출신이고(60~70년대의 통계), 군인(장성)의 태반 이상이 촌놈이었다는 사실은 이를 확인시켜준다. 이와는 달리 중심에서 놀던 서울 양반들은 경기고, 서울대를 나오긴 하지만 권력의 핵심부에 들어서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들은 촌놈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콤플렉스, 역사를 바꾸려는 추진력, 중심으로 향하는 구심력이라는 점에서 촌놈에 비해 대단히 미약하다. 더구나 어린 시절부터 세련된 도시 문화에 길들여 살아 왔던 그들이기에 역사적 변혁을 가져오는 역동적 힘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들은 기껏해야 권력 중심부에 기생하면서 자신의 처지에 안주한 채로 살아나갈 뿐 역사의 변화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학벌 좋은 ‘서울 양반, 경기고, 서울대’ 출신들을 희생정신이 결여된 제 하고픈 대로 살아가는 ‘자유주의자’, 역사의식이 결여된 이기적 욕망으로 가득 찬 ‘문화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끈질긴 정치 싸움을 하지 않은 채, 최고 권력에 기생하면서 안주하는 ‘평화주의자’로 사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김재홍 교수 서양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