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현대·기아차 핵심 기술 유출로 사회를 들썩이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최대 22조원의 피해액이 발생할 것이라는 통계치가 나와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사실 이런 ‘산업 스파이’가 하루 이틀의 일인가? 그래도 이쯤은 양반. 더욱더 심각한 산업 문제는 아마도 모방, ‘짝퉁’의 기승 아닐까? 이제는 너무나 많은 가짜들이 판을 쳐 진짜가 가짜같고 가짜가 진짜같아 혼돈만 뒤따른다. 심지어, 의류나 휴대폰 에어컨 등 소비재 수준을 넘어 이젠 산업소재와 부품까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은 짝퉁의 종류도 중국에서 만들어진 ‘원조 중국산 짝퉁’과 일부 국내 유통업자들이 중국산을 수입한 뒤 로고나 브랜드만 국산으로 바꾼 ‘가공 중국산 짝퉁’으로 점차 세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모방이 또다른 창조라지만 그로 인해 찾아드는 상처와 피해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 손으로 지우니 글씨가 없어지네요 정재균 LG화학 고객지원팀 과장은 지난달 한 건설사로부터 이런 항의를 받고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시공 과정에서 대리석이 너무 쉽게 깨진다’는 얘기가 아무래도 이상해 직접 확인해본 결과, 바로 중국산 ‘짝퉁’ 인조 대리석이었던 것이다. ‘LG’라는 마크가 있었지만, 손으로 문지르자 글씨는 금새 지워지고 말았다. 정 과장은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중국산 짝퉁 건자재 규모에 비하면 이번에 적발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 ‘짝퉁’, 인조대리석 시장 200억원 이상 연간 1500억원 규모인 국내 인조 대리석 시장 중 이미 200억원 이상을 중국산이 장악했다는 게 업계 추산이다. LG화학은 최근 ‘LG 하이막스(HI-MACS)’ 로고가 새겨진 싸구려 중국산 인조 대리석이 유통되고 있어 경기 광주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일부 유통상이 중국산 인조 대리석을 수입해 LG 로고를 새긴 뒤 주방 가구업체와 건설사에 납품을 시도하다 적발됐다”며 “중국에서 아예 LG로고까지 새겨 만든 모조제품과, 중국산을 수입해 유통업자가 LG로고를 인쇄한 모조제품들이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다”고 귀뜸했다. 철강재도 중국산 모조품이 넘쳐 나고 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중국산 철강재를 수입하는 한 국내업체가 현대제철 검사증명서를 위조, 지하철 공사 현장에 H형강을 납품한 사실을 적발하고 이 업체를 고소했다. 이후 현대제철은 철강제품 검사증명서 위·변조 방지 시스템을 더욱 강화했다. ■ 맨홀 뚜껑, 아파트 등 중국은 ‘따라쟁이’ 철강제품 가운데에는 맨홀뚜껑까지 중국산 짝퉁이 판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145㎏ 원형의 국산맨홀은 10만원이 넘는 반면 중국산은 3분의1에 불과하다. 이미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의 중국산 짝퉁은 널리 알려진 얘기. LG전자는 지난해 중국 우루무치시 공안당국과 함께 가짜 LG상표를 부착한 에어컨과 컬러TV 생산 현장을 급습, 짝퉁 에어컨 400여 대와 컬러TV 430여대 등을 적발했다. 삼성전자 역시 지난해 중국 행정당국이 공식적으로 압류한 모조품만 2만점이 넘을 정도이다. 2002년에는 중국 체리차가 GM대우차의 마티즈를 모방한 ‘QQ’를 내놓아 소송으로까지 비화된데 이어, 작년엔 공식 행사인 베이징 모터쇼에까지 현대차의 싼타페와 기아차의 쏘렌토를 모방한 차량이 등장했다. 짝퉁 아파트까지 등장했다. 지난 2월에는 삼성건설의 아파트 브랜드인 ‘래미안’ 상표를 불법으로 사용해 온 중국업체가 적발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짝퉁이 소비재에서 산업재로 확산되며 업체마다 제2차 짝퉁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자칫 오랜 공을 들여 쌓아올린 브랜드 이미지가 타격을 입을 수 있는 만큼 다양한 대책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염미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