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행하는 만화의 영상화, 그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박인권 작가의 <쩐의 전쟁>이 드라마화 되어 5월 16일부터 방영된다는 것이다. <쩐의 전쟁>은 전형적인 성인 만화로서, 돈·폭력·섹스 등 온갖 남성들의 가십과 로망이 전면에 깔려있는 작품이다. 온가족이 모여앉아 지켜보는 TV의 특성상, 현실적으로 드라마화 되기 힘든 색깔의 작품이 드라마화 된다는 것은 ‘사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제작진은 그런 요소를 충분히 잘 알고 있기에, 수위를 대폭 낮춰 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표현 수위를 대폭 낮출 수밖에 없는 것은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쩐의 전쟁>에 스며든 근본적인 현실관만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쩐의 전쟁>은 ‘사채’를 소재로, 돈과 카드에 휘둘려 수많은 신용불량자를 낳는 우리 사회의 검은 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허영에 물들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을 자초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밀려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돈이란 애초부터 그런 것. “사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가치관을 유지하면서 살려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과 운명의 무게는 우리에게 곧잘 돈을 요구한다. 그럴 때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신용카드와 ‘사채’다. <쩐의 전쟁>의 주인공 ‘금나라(박신양)’는 기구한 운명과 함께 사채업자의 길을 걷는다. ■ 사채와 돈에 얽힌 적나라한 이야기 <쩐의 전쟁> 드라마판의 ‘금나라’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로 일하다가 사채업자의 길을 걷는 것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이 설정도 충분히 시청자의 흥미를 돋울 수 있을 것 같지만, 보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직접적인 충격과 ‘돈’에 대한 시선은 아무래도 원작에서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원작에서의 ‘금나라’는 수학과를 졸업한 천재로서, 무엇 하나 없던 청년실업자가 ‘사채업자’가 되기까지, 무섭도록 치밀하고 저돌적인 이미지를 구축한다. 게다가 그의 집안이 무너지는 과정을 그리는 첫 서사도 인상적이다. 신용카드 빚에 짓눌린 아버지는, “늬들은 카드빚 내지 마라”는 유서와 함께, 신용카드를 날카롭게 갈아 목에 꽂아 자살했으며, 남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식물인간이 됐다가, 어린 외손자의 손을 빌어 산소호흡기의 전원을 끄면서 죽음을 선택한다. 형은 보험금을 수령하기 위해 사고를 위장해 자살했다가 발각돼 돈 한 푼 못남기고 죽어버렸으며, 누나는 몸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친구의 음모에 가담했다가 ‘금나라’가 살인까지 저지르도록 한다. 카드빚에, 그리고 돈에 의해 무너진 다소 극단적인 사례로도 볼 수 있지만, 언제 누구에게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돈에 원한이 사무친다면, 돈을 정복하는 것이야말로 원한을 푸는 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만화는, ‘금나라’가 교도소에서 전설적인 사채업자 ‘독고철(신구)’을 만나 돈과 인간에 얽힌 다양한 철학을 몸소 배우는 장면이 비중 있게 등장한다. 그러면서 사채업자 변신 이후에는 그가 겪는 돈과 사채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 모음들을 나열하는 형식을 지향한다. 이야기의 흐름상으로는 확실히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은과 금>, 그리고 마나베 쇼헤이의 <사채꾼 우시지마>와 비슷한 면이 엿보인다. 모든 것을 날린 백수는 ‘거물’을 만나, 돈의 세계에 뛰어들게 됐으며, 그 돈의 세계에서 온갖 허영과 음모, 기구한 사연들이 서로 부딪치는 ‘인간’의 존재를 발견한다. ‘금나라’는 지독한 끈기와 저돌적인 움직임, 그리고 사채업자답지 않은 인간미를 동시에 간직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영혼을 돈에 팔아 인간성을 저버린 이에 대해서는 잔혹한 응징도 아끼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피눈물을 흘리게 된 채무자에게는 챙길 것은 챙겨가면서도 인간적인 정과 감동을 선사한다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한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사채꾼 우시지마>와 마찬가지로 ‘사채업자’의 항변도 이야기한다는 것. ‘우시지마’는 “사채업자에게는 오히려 채무자야말로 무서운 존재”라는 주장을 외친다. 사채업의 불법성을 알고 그것을 이용해 오히려 사기와 협박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으며, 기본적으로는 “채무자가 누군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긴장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모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드라마판 <쩐의 전쟁>은 만화 2부의 4~6권에 걸쳐 그려진 ‘돈귀신’ 편을 각색했다고 한다. <사채꾼 우시지마>에서의 주인공의 항변을 이야기한 이유가, 직접적으로 그려지는 에피소드인 것이다. ■ <쩐의 전쟁>, 정말 ‘돈귀신’ 편이 각색될까? ‘돈귀신’ 편은, 여성 캐릭터가 비중 있게 등장하지 않기에 과도한 섹스는 등장하지 않았던 에피소드였다. 다만, ‘금나라’의 돈을 무려 8억이나 빌려 자취를 감춘 채무자가, 그의 추적을 피해 오히려 확실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교도소에 숨어든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그를 유인하는 ‘금나라’의 빛나는 지략이 돋보이지만, ‘교도소’라는 배경이 드라마화에 상당한 장애가 될 것 같다는 예상을 해본다. <쩐의 전쟁>의 에피소드들 중에서 가장 욕설이 많았으며, 그를 위협하고자 암시하는 폭력의 수위도 못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진희와 김정화가 등장하기 때문에, ‘돈귀신’이 각색된다는 언론 보도 자체가 미심쩍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폭력과 욕설, 섹스를 덜어낼 수밖에 없기에 자극적인 맛은 분명히 덜해질 드라마판이 어떻게 ‘돈’과 ‘인간’의 철학을 그려나갈 것이냐는 점이다. 드라마판은 만화에서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골고루 다루기보다, ‘금나라’의 사채업자 변신 과정과 함께, 그 이후의 에피소드 중에서 하나를 뽑아내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명한 선택이다. 묻혀두기엔 아까운 에피소드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것을 다 보여주기엔 불가능한 영상의 한계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기꾼과 엘리트의 이미지가 동시에 느껴지며, 실제로 그런 상반된 캐릭터를 두루 경험한 박신양이 ‘금나라’로 캐스팅된 것은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더불어, 어떻게 그려질지 예상하기 어려운 박진희·신동욱·김정화가 보여줄 캐릭터들도 쓸데없이 사랑놀음에 빠지기보다, 작품 본연의 취지에 부합할 캐릭터로 그려졌으면 싶다. 사채업자가 등장한다고 해서, ‘사채업자가 사랑하는 드라마’가 돼서는 곤란하다. ■ 현실을 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돈’의 위험, 그리고 냉혹함 일본 드라마가 소재나 장르 면에서, 비교적 풍성하게 그려지는 이유에는 분명히 ‘만화’도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기 있는 소설과 만화는 예외 없이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만화는 넓은 상상력이 필요한 만큼, 드라마 장르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궁>과 <풀하우스> 등의 작품들이, 그 힘을 실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좀 더 넓은 저변을 위해 그와 정면으로 다른 색채의 작품도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데, <쩐의 전쟁>은 그 힘을 보여주기엔 아주 좋은 작품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표현 수위는 어쩔 수 없이 조절할 수밖에 없지만, 현실과 돈에 치인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냉혹하지만, 냉혹하다고 외면한다면 영원히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냉혹하기 때문에 더욱 정면으로 맞서야 하며, 느껴야 한다. 인지도 높은 연예인마저도 대부업 광고에 출연해 우리를 유혹하는 세상이다. 현대인들은 허영심에, 혹은 현실에 맞춰 살기 위해 숱하게 카드를 긁어대며 돈을 빌려댄다. <쩐의 전쟁>은 우리에게 그 말 많고 탈 많은 ‘돈’이 얼마나 위험하고 냉혹한 종잇조각인지 잘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향한 ‘금나라’의 여정이 영상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형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