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언론인들과 기자실 개혁문제(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 언론은 ‘기자실 통폐합’이라함)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17일 열렸다. 토론회는 당초 14일에 열리기로 계획됐으나, 한국기자협회(기협)를 비롯한 언론들이 토론회 참석 거부 의사를 밝혀 한때 무산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기협은 성명을 통해 “정부 방안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 선전 수단”이라며 불참의사를 표했기 때문이다. 이에 청와대측이 언론을 향해 “정정당당하지 못하다”고 비판하자, 언론에서 “토론회다운 토론회를 하자는 것”이라고 맞서 한때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한국언론재단은 14일로 예정된 토론회에 앞서 언론 및 시민단체 26개와 서울에 있는 신문사 편집국장 및 방송사 보도국장에게 참석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청와대와 언론재단은 이번 토론회에 정부 입장을 대표해 대통령이 나서고, 이 방안에 반대하는 10여 개 언론단체 대표자 및 현업 언론인들을 참여시킬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방송3사 중 1∼2곳과 토론회 중계 일정도 어느 정도 협의해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기자협회· PD연합회·인터넷기자협회 등과 현직 기자들마저 불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정부정책에 가장 비판적인 매체의 대표들인 조중동의 사주 1∼2인, 국장급 데스크 1∼2인 등도 모두 불참의사를 표했기 때문에 토론회는 무산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기협은 12일 “정부가 언론재단을 내세워 추진하는 이 토론회는 제한된 시간에 너무 많은 관련자가 참석해 진지한 토론이 되기 어렵고 대통령의 일방적 설명만 듣게 될 것”이라며 “기자들이 원하는 것은 정치 선전의 들러리가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토론회다운 토론회”라며 불참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기협은 또 “정부가 언론단체와의 토론회를 제안하면서 한편으로는 기자들의 공무원 접근 차단을 강행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며 “정부가 방안의 추진을 즉각 중단한다면 토론에 언제든지 나설 것”이라며 토론회의 문제점을 이유로 불참을 선언했다. 정일용 기자협회회장은 “도대체 토론하자는 취지가 무엇인가”라며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찾자는 게 토론인데 이미 ‘취재선진화 방안’을 밀고 나가면서 하는 토론은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토론회가 노 대통령과 함께 말 잘하기 시합하는 게 아니라면 정부는 우선 브리핑룸 신축공사부터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는 게 순서”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토론회를 성사하기 위해 언론계와 비공식 만남을 가지는 등 물밑접촉을 통해 의견조율에 들어갔다.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은 “이번 토론회가 사전 의견수렴의 형식은 아니지만 아직 브리핑룸 공사를 시작도 하지 않았고, 의견수렴의 성격이 없는 토론회는 절대 아니다”며 “논의된 내용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며 유연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청와대와 언론계는 13일 비공식 만남을 통해 17일 토론회를 개최하는데 결국 합의했다. 기협도 이번 토론회에 참석하기로 이날 결정하면서, 무산위기를 넘기게 됐다. 이날 만남은 기자협회의 불참 입장이 밝혀진 전날 청와대의 제안에 따라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협은 “부회장단 등 집행부와 정보접근권 쟁취를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 서울지역 지회장들에게 전화 및 메일로 TV 토론회 참석 여부에 대한 의견수렴 결과 대부분이 참가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기자협회는 “정부측이 기자협회가 주장한 정보공개법 개선과 관련, 해외실태 조사단 구성을 논의하고 내부고발자 보호방안 등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정일용 회장은 “이날 오전 청와대 양정철·김종민 비서관, 안영배 국정홍보처 차장 등 정부쪽 관계자가 PD연합회장 인터넷신문협회장·기자협회장과 만나 언론계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온 게 결정적인 참석 결정의 배경이 됐다”며 “이 밖에 각 지회장의 의견도 수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청와대측의 제안이 문서화된 것이 아니고, 기본 틀에도 변화가 없기 때문에 토론회를 거부해야 한다는 일부 이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안 언론노조위원장은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모양새 토론’이 아닌 의견과 정책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자는데 서로 의견을 같이 했다”며 “언론계 인사들은 정부 쪽 정책이 실시될 때 언론인들이 겪게 되는 현실적 어려움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고, 정부쪽도 성실하게 청취했다”고 토론회 참석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정부와 미리 비공개로 합의한 내용은 없다”며 “정부쪽 정보 공개의 한계와 운영상 문제점에 대해서 서로의 인식 차이를 확인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불참의사를 밝혔던 기자협회와 인터넷기자협회를 어떻게 설득했는지에 대해 천 대변인은 “언론재단 쪽에서 14일 진행이 어렵다는 의견을 보내와 13일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과 기협회장, PD연합회장 언론노조위원장이 만나 의견을 나눴다”며 “이 자리에서 서로의 입장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나누게 됐다”고 밝혔다. 천 대변인은 “기자협회가 ‘토론회가 언론계 인사 의견 수렴하는 자리여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며 “이에 대해 청와대는 ‘토론회가 무엇이 옳은지를 국민에게 판단케 하는 성격도 있지만 의견수렴을 하는 성격도 있다, 언론계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또 그는 “현직 기자나 편집·보도국장의 참석 여부에 대해서도 언론재단에 일임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천 대변인은 “언론계 인사들의 토론회 참석을 거듭 요청한 것에 대해 인터넷에 몇 건 보도된 것 외에 오늘자 신문엔 청와대 입장이 한줄도 보도되지 않았고, 기자협회 의견만 다뤄줬다”며 아쉬움을 밝혔다. 그는 “무슨 기사를 쓸지에 대한 권한은 언론사에 있겠지만 곤혹스럽고 씁쓸하다”며 “토론회가 임박한 상태에서 언론단체장들의 참석을 촉구한 의견이 제대로 전달이나 됐는지 의문스럽다”는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일로도 청와대 입장이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게 어렵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며 “청와대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토론회에는 관심을 모았던 편집·보도국장과·신문협회·방송협회·편집인협회·조중동 사주 등의 참석은 이들이 끝내 불참의사를 밝혀 토론자 대상에서 제외됐다. -김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