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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명세와 ‘나비의 꿈’그 야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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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0호 ⁄ 2007.10.29 15:36:07

2005년 9월, <형사-듀얼리스트>가 개봉했을 때였죠. 혹평했다가 욕 많이 먹었습니다. “비주얼이 뛰어나면 뭐하나. 이야기와 연기가 겉도는 걸”이라는 것이 제 이야기였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디-워>에 대고 “이야기가 엉망진창”이라고 혹평했던 일부 영화기자들이 <형사-듀얼리스트>에 보냈던 반응입니다. “이야기를 죽이고 이미지를 살렸다.” “영화의 모든 것이 감정에 바쳐진, 감정이 주인공인 놀라운 영화. 엔딩의 액션 신은 멜로의 절창이다.” ■ 심형래와 이명세, 그 시선 차이< /b> 영화평이라는 게 참 난감한 것이, 제 아무리 전문가가 평을 한다 해도 ‘주관적’이라는 것입니다. ‘주관’이라는 것은 개인의 감정이 얼마든지 개입될 수 있는 부분이죠. 전문가도, 전문가가 아닌 저나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주관’으로 본 <형사-듀얼리스트>는 견디기 힘든 영화였습니다. 하지원의 ‘고함소리’만이 귓가에 맴돌 뿐, 아무리 봐도 ‘짧은 이야기를 위해 비주얼을 덕지덕지 억지스럽게 붙인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만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디-워>도 ‘짧은 이야기’를 위해 온갖 컴퓨터그래픽을 총동원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디-워>에는 ‘명품’을 자처하고자 하는 ‘쓸데없는 기름기’는 없었습니다. 심형래 감독 개인의 연출력 부재가 ‘기름기’를 붙일 여력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측면도 있었을 것이고, <디-워>는 애초부터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임을 표방했다는 차이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일 듯합니다. 이게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는 거죠. ‘편하게 본다’는 것은, 온갖 영화들을 섭렵했다는 평론가·영화기자들로서는 ‘하품 나는 영화’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편하지 않다’는 것은 그네들만이 볼 수 있는 ‘뭔가’가 중요하게 작용해 ‘호평’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거죠. 하지만 중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잣대를 적용해도 ‘이름’에 따라 그 잣대 적용이 천차만별로 적용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디-워>와 <형사-듀얼리스트>의 차이라고 봅니다. 컴퓨터그래픽이니 미장센이니, 독창적으로 활용하고 유려하게 끌어다 쓰는 것은 능력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아무리 엉망진창이라도) 이야기와 잘 연계시켜 이해도를 높이는 것도 능력입니다. 그 당시의 ‘이명세 마니아’들은 “<형사-듀얼리스트>만의 아름다움이 있고, 그걸 못보고 혹평하는 것은 영화 보는 눈이 떨어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디-워>도 분명히 <디-워>만의 장점이 있었습니다. <디-워>의 컴퓨터그래픽, 한국영화에서는 분명히 ‘독보적’이었습니다. 영화는 결코 중얼거림이 아닙니다. 물론 ‘마니아’와의 대화를 더 중시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마니아 아닌 사람들’의 반응도 존중하거나, 혹은 감수해야 합니다. 극장은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곳이거든요. ■ 이명세와 ‘나비의 꿈’< /b> 이명세 감독은 ‘혹평’을 감수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감수해가면서도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요점이 있어 보입니다. 그는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장자가 꾸었다는 ‘나비의 꿈’을 깊이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장자가 나비가 돼 훨훨 날아다니는 행복한 꿈을 꾸었는데, 깨고 나서 보니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사람의 꿈을 꾼 것인지” 잘 모르겠더라는 이야기죠. 이명세는 <형사-듀얼리스트>에서 간접적으로 이 ‘나비의 꿈’을 시도한 것입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비주얼이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야기가 비주얼을 내보이는 것인지” 혼란에 빠트리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러자면 이 뜻에 부합해 줄 만한 배우를 찾아야 했습니다. 하지원, 드라마 <다모>에서는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형사-듀얼리스트>에의 출연은 여전히 의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함’ 밖에 기억나질 않습니다. “수사를 하는 것인지 사랑을 하는 것인지” 혼란에 빠진 상태, 고도의 감정 연기가 필요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나비의 꿈’의 구체적인 내용일 것입니다. ‘나비의 꿈’은 원래 “보이는 것은 만물의 변화에 불과할 뿐 꿈도 현실도 구별이 없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이야기한다”는 내용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산다는 게 이렇게 덧없다”는 내용이기도 하죠. 조금 쉬워지죠? 그렇다면 이명세 감독은 <형사-듀얼리스트>에서 비주얼도 이야기도 구별이 없는 ‘물아일체의 영화’를 추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많은 영화 마니아들이 논했던 ‘이야기냐 미장센이냐’는 논점, 어떻게 보면 덧없는 논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나비의 꿈’의 결정판 < /b> 도 아주 간결한 내용입니다. “첫사랑 찾아 삼만 리” 자, 이 ‘첫사랑’은 과거의 추억과 꿈, 현실을 가리지 않고 나타납니다. 주인공 민우(강동원)는 “내가 현실에서 첫사랑을 보는 것인지, 꿈에서 첫사랑을 보는 것인지” 헷갈리는 상황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마도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가보겠지만, 영화 속의 그는 이 ‘혼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어떻게 보면 ‘민우’라는 인간 자체가 혼돈의 인간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그러면서 1시간 50분 동안 이 ‘혼돈’을 담아냅니다. ‘비주얼리스트’라는 평가에 걸맞은 장면들이 자주 나타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제 짧은 글 솜씨보다는 이 영화를 보고 감탄한 어느 영화기자의 평을 인용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이명세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색감이 먼저 눈길을 끈다. 조명과 카메라의 철저한 계산 아래 촘촘하게 직조된 장면들은 민우의 환영과 혼돈으로 가득 찬 머릿속을 화면에 비추는 듯 빠르게 스크린을 훑고 지나간다. <첫사랑>의 정서, <개그맨><남자는 괴로워>의 슬랩스틱까지, 이명세 감독의 전작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미스테리와 추적의 드라마 사이에 끼어들며 드라마와 코미디의 곁가지를 만든다.” “매번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하는 이명세 감독과 강동원·공효진·이연희라는 배우들의 조합만으로도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할 터. 장면 하나하나마다 조명과 미술, 카메라 워크까지 섬세한 공을 들여 찍은 감독의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필름 2.0> 송순진 기자 송순진 기자는 그러면서 반대편 관객을 배려했을 법한 ‘가상의 혹평’도 남겨놓습니다. “이명세 감독, 즉 민우(강동원)의 심리를 좇지 못하거나 그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면, 멜로 라인을 깔아놓으면서 동시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이명세 감독의 4차원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혼돈의 영화로만 느껴질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가상의 혹평’은 과거 <형사-듀얼리스트>의 팬들이 혹평하는 사람들에게 전개하던 논리와 정확할 정도로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정신세계를 이해해야 하며’, ‘그의 4차원 언어를 이해해야’ 잘 보인다는 거죠. 한마디로, “이명세의 영화는 아무나 보는 것이 아니다”는 이야기로도 들립니다. 이명세 감독으로서는 ‘나비의 꿈’의 정수를 보여준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영화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기에, 기본적으로 ‘중얼거림’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장르입니다. ‘중얼거림’을 그래도 밀어붙인다면, 반대의 평가도 용인해야 한다는 거죠. 다행히 <형사-듀얼리스트>는 국내에는 아직 척박한 ‘마니아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이게 바로 <디-워>에 비해 건강한 요소인거죠. <디-워> 논란에서처럼 서로를 찍어 내리려는 폭력적인 문화에 앞서, 마니아들이 문화를 조성하며 마니아들만의 재개봉을 요구하는 등, 분명한 긍정의 요소를 남겨놓습니다. ■ 이명세가 참조하면 좋을 영화 <꿈>< /b> 구라사와 아키라의 <꿈>(1990)이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본인이 어린 시절부터 꾸었던 인상적인 꿈들을 에피소드 모음 형식의 영화로 제작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조지 루카스의 ILM까지 동원해야 했을 정도로 현란한 특수효과 이미지들이 필요했다고 하는데, 평가 자체는 일단 둘로 나눠집니다. “구로사와 식 휴머니즘의 결정판”이라는 것과 “너무 거장이 되면서 자기 독백과 자기 위안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것이죠. 저는 이명세 감독이 <형사-듀얼리스트>와 등을 연출하면서, 이 <꿈>을 깊이 받아들인 것이라는 판단도 듭니다. 비슷합니다. 독특한 스타일과 비주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줄거리가 모호해지면서’ 반응이 극단으로 갈리거나, 혹은 그럴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물론 구로사와 아키라는 여기에 거대한 이야기를 담아놓습니다. 본인이 수십 년 간 역설하던 휴머니즘과 문명에 대한 비판 등, 지극히 다양한 요소들이 담겼습니다. 하지만 이명세 감독은 아직 본인의 틀을 뛰어넘는 기색을 보이고 있진 않습니다. 아니, 아직 그럴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죠. <형사-듀얼리스트>를 연출하면서도 ‘사랑’을 강조했듯이, 그의 테마는 여전히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명세 감독은 ‘한국의 구로사와 아키라’로 나아갈 길을 스스로 열어놓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임권택 감독이 구로사와 아키라가 활용한 색감을 한국식으로 모방하면서 ‘거장’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임권택 감독은 ‘흐름 끊어먹기’ 식의 특유의 ‘각본상의 문제’가 있는 한, ‘한국의 구로사와 아키라’가 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이명세,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야기’를 가지고 노는 재능은 분명히 있습니다. <형사-듀얼리스트>와 < M >,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명세의 2가지 야심이 엿보입니다. 독자적인 마니아층을 거느리는 감독이 되겠다는 야심, ‘한국의 구로사와 아키라’가 되겠다는 야심입니다. 어설픈 흥행감독을 넘어선, 총체적인 ‘파워 감독’으로 부상하겠다는 뜻일 것입니다. , 그리고 이명세의 야심< /b> <형사-듀얼리스트>에서 엿보았듯이, 전자의 의도는 성공한 것 같습니다. , 논란이 된다면 <형사-듀얼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이명세의 팬’과 ‘팬 아닌 관객’들의 논쟁이 전개될 것입니다.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해 그 뜻에 공감하고 경탄하는 이들만 남겨놓겠다는 뜻이며, 앞으로도 그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일 것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설픈 흥행감독보다는 독자적인 마니아층을 거느린 감독의 위력이 더 센 법입니다. 다만, 여기서 ‘한국의 구로사와 아키라’가 되겠다는 야심이 느껴진다는 제 생각이 감독 본인의 의도와 맞는 것이라면 우려가 됩니다. <꿈>, 구로사와 아키라가 팔순이 다 돼 완성한 작품입니다. 그 이전의 구로사와 아키라는 ‘구로사와 아키라 팬 집단’을 넘어선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관심을 얻을만한 압도적인 힘이 있었습니다. <라쇼몽>이나 <7인의 사무라이>, 결코 마니아들만의 작품은 아닙니다. 전 세계 영화인들을 강타한 역사에 남을 역작들이죠. 이런 압도적인 전적을 남겨놓고, 그 전적을 배경으로 삼을 때만 ‘나만의 이야기’도 더 큰 관심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명세, 물론 평론가·영화기자 집단은 쉽게 비판할 수 있는 이름이 아닙니다. 하지만, 마니아층 전반에 퍼진 이름은 분명히 아니죠. 제 이야기는, 곧 그가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아직 그런 단계로 나아갈 때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 이명세, 아직은 더 ‘알려야’ 할 때< /b> 물론,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성과가 있었고, <매트릭스3>에서의 빗속 전투신이 할리우드에서 재탄생됐다는 성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이명세’라는 브랜드가 한국영화 대표 브랜드로 통할 수 있는 지름길로 작용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압도적인 성과’는 아니기 때문이죠. 거장은 ‘압도적인 성과’와 그 ‘성과’를 쉽게 풀어 대중에게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그의 영화세계는 명확합니다. 선이 굵죠. 평론가·영화기자 집단, 인터넷 보급과 함께 그 힘이 줄어들고 있는 집단이며, <디-워>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역할이 모호하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 집단입니다. ‘거장’이 되기 위해서는 그 틀을 넘어 더 많은 대중의 이해와 설득력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가능성을 보인 작품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본인이 마니아들과 ‘꿈’을 꾸고 나누겠다는 것, 굳이 태클 걸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을 통해 느낀 제 감상이 사실이라면, 아직 단계를 더 거쳐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 것입니다. <형사-듀얼리스트>는 어떻게 보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눈여겨봤던 관객 중에서 ‘일부’만 남겨놓은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물아일체의 영화’, 이룰 수 있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꿈’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룬 감독은 제가 볼 땐 전 세계에 단 2명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과 구로사와 아키라, 그나마 구로사와 아키라도 <꿈>에서는 ‘자기 독백’이라는 일부의 비난도 남겨놨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드러내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명세 감독은 <형사-듀얼리스트>에 환호했고 에 환호할 ‘이명세 마니아’의 틀을 뛰어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환호성’에 취하는 순간, 누구도 발전하지 못합니다. 이건 인간의 진리이자, 세상의 진리입니다. <박형준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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