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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노래로 행복한 사회 만드는 사회복지사 가수 임부희

“노래가 없었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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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5호 ⁄ 2008.02.25 16:40:02

여기 ‘노래의 위대한 힘’을 굳게 믿으며, 21년째 사회봉사 활동에 여념이 없는 가수가 있다. 90년대 초 SBS 개국과 함께 제1회 TV 가요경연대회에 출전하여 연말 결선에서 당당하게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임부희(60)는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 스타는 아니지만, 가요계 종사자나 가수들 사이에서는 이미 실력과 능력을 고루 갖춘 가수로 인정받고 있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인 재능과 끼가 넘쳐난 그에게 많은 곳에서 가수 데뷔 제의가 들어왔지만, 교육자였던 엄격한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굽혔다. “그 당시만 해도 연예인 하면 ‘딴따라’라는 인상이 강했어요. 교육자인 아버지는 당연히 반대하셨죠”라며 당시의 힘겹던 일을 회상하듯 눈가가 촉촉해졌다. 어린 나이에 중매로 결혼한 그는 시골에서 유학 온 시동생의 학업 뒷바라지와 육아, 가정 살림으로 정신없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남편의 사업실패로 어려운 시기를 맞기도 했다. “어떻게 견뎌 냈느냐”는 질문에 그는 “노래가 날 살렸다”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어릴 때부터 봉사하는 일이 몸에 밴 임부희는 결혼 후 동우대학교에서 행정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또 경동대학교에서 관광경영학을 공부하고, 동국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는 등, 배움에 대한 열망이 유달리도 남다르다. “이왕에 하는 봉사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다. 노인복지·사회복지·유치원 봉사 등 늘 힘든 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능력이 있다면, 강당을 하나 지어 나이 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 가수들과 함께 노인들을 모시고 즐겁게 공연을 하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다. 유치원 봉사도 해서 어려운 아이들도 도와주면 좋겠고….”

임부희는 현재 한국연예예술인협회 가수분과위원·가요창작위원, 한국가요저작권협회 위원, 한국가수협회 위원,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 동우대학교 명사 특강, 동국대학교 사회교육원 가요 전문 지도사 지도교수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최근 20년지기 콤비 가수 정향숙 씨와 함께 ‘은방울자매’의 신화를 계승하자는 의미로 ‘두리자매’를 결성, 불후의 명가요라는 이름으로 CD 음반을 출시하여 중·장년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매년 소년원·교도소·복지관·병원·사찰 등에 공연을 다니며 ‘노래로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실천 중이다. 현재 법무부 종교지도위원으로 소년원·교도소 등에서도 위문 공연을 하고 계신데요. 처음에 무섭지는 않았는지, 또한 자신의 노래 봉사가 이들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봉사를 했어요. 거지가 밥을 얻으러 왔었죠. 그때마다 내 밥을 주며 “다음에 또 오세요”라는 말을 잊지 않았어요. 이런 일들이 습관이 되어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는 두려움이 없어요. 내가 선한 마음으로만 다가가면, 그들도 알아요. 거기(소년원·교도소 등) 들어갔다고 다 나쁜 사람은 아니거든요. 억울한 사람도 정말 많아요. 그래도 ‘인과응보와 자업자득’이란 말은 꼭 합니다. 재범은 있어선 안되니까요. 교도소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주로 강당에 재소자들을 모아놓고 음식을 제공하고, 법문을 읽고, ‘노래 한마당’이라는 무대를 만들어 노래도 부르고, 영치금도 드려요. 어느 날 어떤 분이 편지를 보냈는데, 저에게서 영치금을 받은 60세가 넘은 재소자였어요. 그날이 그 분 생일이었는데, ‘영치금을 받고 행복했다’는 메시지였어요. 그리고 소년원에서는 4월과 8월 초 일 년에 두 번 검정고시 시험이 있어요. 특히 8월 초는 여름 휴가기간이지만, 봉사하는 분들이 휴가를 반납하고 찾아가 아이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시험을 치르러 들어가면 해산해요. 이때가 굉장히 힘들지만, 보람 있어요. 소년원에는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도 많고, 형제가 나란히 들어온 경우도 있어 안타까워요.” 사회복지사로 노래 봉사활동을 하느라 굉장히 바쁘실 텐데요. 상대적으로 가정 일은 소홀해질 것 같습니다. 남편과 자녀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남편 사업이 위기를 맞자, 건강도 나빠지고 우울증세까지 와서 정말 힘들었어요. 그때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려고 대학교가 있는 속초까지 통학하면서 차 안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그때마다 속이 후련해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구요. 노래가 없었으면 전 아마 죽었을 거예요. 제가 가요경연대회 연말 결선에서 대상을 타니깐, 업소에서 월 200만원을 줄 테니 출연 해 달라는 등 제의가 많이 들어왔어요. 하지만, 남편이 업소출연은 절대 안된다고 해서 여태까지 업소출연을 한 적은 없구요. 단지, 봉사활동 일은 남편도 아이들도 좋아하고 자랑스럽다는 말을 해요. 특히, 7년 동안 동국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가요 전문 지도사 지도교수로 가요 지도사를 배출하고 있으니 ‘교수엄마’라고 좋아하죠(웃음). 지금 하는 활동이 순전히 봉사 일이기 때문에 보수는 없지만, 남편이 많이 원조해주고, 저도 행사와 강단을 통해 번 돈으로 충당하죠. 행사가 많아져서 더 많은 분들을 도와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남편이 충남 보령에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주말 부부라 가사에 문제는 없어요. 아이들도 다 시집 장가 보냈구요. 지금까지 아내와 엄마로서 가족을 위해 살았다면, 이젠 내 인생을 위해 살고 싶기도 하구요(웃음).” ‘아버지의 반대’로 가수의 꿈을 접었지만, 현재 사회복지사로 노래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수’의 꿈은 이룬 셈이군요. “노래 부르는 일은 정말 즐거워요. 다행히 부모님께 물려받은 타고난 목소리와 노래실력으로 노래 부르는 일에 어려움은 없어요. 그리고 제 노래로 노인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드릴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또 작사도 직접 하고 있는데, ‘모래성’, ‘눈물 나는 날에는’, ‘빈 배’ 등은 제가 정말 힘들었을 때 넋두리로 적었던 시로 만든 곡이거든요. 지금까진 애절한 가사밖에 쓰지 못했지만, 앞으로 경쾌한 느낌의 가사를 써볼 생각이에요. 하지만, 가수가 된 지 20여 년. 아직 변변한 히트 곡이 없기 때문에 가수의 자존심으로서 참 부끄러워요. ‘저 가숩니다’라고 인사해도 상대방이 ‘무슨 곡요? 처음 듣는데…’ 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거든요. 올해는 꼭 ‘이 노래? 임부희 곡이잖아’라고 할 만한 히트 곡을 부르고 싶어요.” 2008년에 특별한 계획이 있습니까? “예전에 공연장 가는 길에 터미널에 서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넋두리를 하며 미나리를 다듬는 모습을 보고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흘렀던 적이 있어요. 노래를 잘하느냐 못 하느냐를 떠나서 그 사람의 노래에는 혼이 실려 있었어요. 저도 앞으로 더 많은 분들에게 제 혼을 담은 노래를 불러 들려드리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방송에 나가 팬들과 공감하고 싶습니다. 올해 방송 활동할 기회가 꼭 닿았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우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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