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人事)는 만사(萬事)다.” 1993년 2월 25일 제 14대 대통령에 취임한 YS는 문민정부를 함께 이끌어갈 행정부의 요직 인사를 단행하면서 이같이 일갈했다. 인재의 적재적소 중용이 모든 일에 우선한다는 평소의 지론을 피력한 발언이었다. 여기서 굳이 YS의 철학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사가 만사임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해 온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거대기업의 CEO와 서울시장을 역임하면서 인사의 중요성을 절절이 절감했을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만사’의 진리를 모를 리 없다. 그 이명박 대통령이 새 정부를 꾸려 갈 인재 등용에서 헛발을 짚어 곤욕을 치르고 있으니,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왜 이런 사단이 불거졌을까? 한마디로 인사검증 시스템의 부실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옥석을 세세히 가려내야 할 검증 시스템에 숭숭 구멍이 뚫리지 않고서야 이런 황당한 일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는 미국이 예와 견주어 볼 때 극과 극으로 대비되어 낯을 들기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미국의 경우, 의회의 인준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차관보급 이상의 요직이 무려 550개나 된다. 그 자리에 지명된 내정자들은 그 인준청문회에서 까다롭고도 혹독한 질문공세를 치러야 한다. 추궁에는 여야가 따로 없으며, 혼자서만 청문회 자리에 앉는 것도 아니다. 필요하면 증인들은 얼마든지 불러낸다. 한 사람의 내정자 검증에 90명의 증인이 불려나온 청문회도 있었다. 2004년에 열린 국토안보부 장관 내정자 케릭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무려 4일이나 계속되는 진기록을 남겼다. 그만큼 사소한 흠결까지도 치밀하게 걸러내는 장치가 미국의 인사청문회다. 그 끈질긴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고 케릭은 인준에서 탈락하고 만다. 그러나 청문회보다 더 혹독한 절차는 청문회에 앞서 진행되는 FBI와 국세청의 조사이다. 내정자와 그 가족의 신원·사생활·재산·납세실적 등등이 낱낱이 파헤쳐져 내정자는 알몸으로 발가벗겨진다. 그야말로 투명하기 그지없는 유리알 검증이다. 한국인 여성으로서 부시 행정부의 노동부 차관보로 발탁된 전신애 씨는 “FBI와 국세청이 내 지인들을 50명도 넘게 조사하고 다녔다”고 훗날 술회했다. 이명박 참모진의 인사검증 시스템의 부실에 더하여, 인사기준의 혼선과 관련자들의 무신경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 잘하면 되지 재산 많은 게 무슨 문제냐?”는 한나라당 관계자의 발언은 우리의 귀를 의심케 한다. 현실 인식의 수준이 이러하니, 인선결과를 놓고 ‘강부자(강남에 사는 부자)’라느니, ‘강금실(강남 금싸라기땅 실소유주)’이라느니,‘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이라느니, ‘오사영(5대 사정기관장 영남 출신)’이라느니 하는 비아냥을 듣는 것이다. 인선의 조급성과 폐쇄성도 인사를 망치게 한 요인이었다. 2만 5000명이나 되는 인재 풀에서 1차로 5000명을 추린 다음 그 중에서 다시 십수 명을 골라내는 방대한 작업을 두 달도 안되는 기간에 몇 명이서 해치웠다니,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다. 게다가, 인선을 거들겠다고 나선 참여정부 민정수석실의 자청을 거절하고 밀실에서 인선을 단행한 폐쇄성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이 모두가 국민의 정서와 눈높이를 무시한 오만과 자만의 결과이고 보면, “국민을 섬기겠다.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다짐은 새 정부 출범 초부터 실없는 허언으로 귀결된 셈이다. 그 바람에 이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을 스스로 깎아내린 형국이 되었다. 인재를 고르는 이 대통령의 안목에 국민은 실망과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번 인선 파행에 대한 국민의 질책을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여 옷깃을 여미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 결과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4월총선에서 표심으로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