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호 성승제⁄ 2008.03.04 09:49:41
지하철에 무가지 신문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버려진 신문을 모아 생계를 유지하는 고령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폐지업체의 한 관계자에 의하면, 서울에서 무료신문을 모으는 노인들은 작년 초에만 해도 30~40여 명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150명을 족히 넘는 것으로 예상했다. 연령대가 대부분 60~80대인 이 노인들이 이같은 신문수거로 얼마를 벌어들이고, 또 왜 노인들이 지하철로 몰리는지 동행취재를 했다. 서울 청량리 지역에서 5평 남짓한 쪽방에 살고 있는 이복희(70.가명) 할머니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 먼저 집안 청소를 하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마치면, 오전 7시께 며느리가 손자 녀석을 데리고 온다. 맞벌이를 하는 아들 부부는 출근시간과 손자가 유치원에 가는 시간이 맞지 않아 거의 매일 손자를 할머니에게 맡긴다. 오전 8시에 손자를 유치원에 맡긴 할머니는 목도리와 가방, 꼭꼭 접은 빈 마대 자루를 몇 개 들고 지하철 2호선으로 향한다. 오전 8시 30분께 지하철 2호선에 도착한 할머니는 사람들이 전동차에서 우루루 빠져나가면 그때부터 버려진 신문을 줍기 시작한다. 할머니가 신문 모으는 일을 한 지도 벌써 6개월째다. “집에서 놀면 뭐하겠어. 자식들이 월급쟁이라 주는 용돈이 빤한데…. 아직은 몸이 불편한 데가 없으니까 지금처럼 건강할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돈 벌면 반찬도 사고, 손자 녀석 용돈도 주고 그래. 힘이 왜 안 들겠어. 하지만, 아침 운동이라 생각하고 거의 매일 나와. 손자 녀석 용돈주면 마음이 뿌듯해.” 신문이 하나 가득 담긴 마대 자루를 손수레에 고무줄로 꽁꽁 묶으면서 할머니는 이같이 말했다. 비록 2~3시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할머니가 신문을 모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아 보였다. 가끔 신문을 승객 머리에 떨어뜨리거나 발을 밟기도 한다. 미안한 마음은 들지만 혹여 신문을 빼앗길까봐 사과도 제대로 못하고, 주섬주섬 신문을 챙겨 가방과 노란 마대 자루에 넣는다. 155cm의 작은 키 때문에 선반에 손이 닿지 않아 신문 꺼내는 일도 쉽지 않다. 결국 지하철 의자에 올라가 까치발을 하고 신문을 꺼낸다. 이러다 보니 지하철공사에 민원을 제기하는 손님도 늘어났다고 한다. 지하철 안에서 신문을 줍는 또 다른 노인들을 만나면 서먹서먹하기만 하다. 가끔 먼저 눈인사를 해오는 경우도 있지만, 경쟁상대로 의식하는지 상대 할머니·할아버지는 냉랭한 눈빛만 던질 뿐이다. 할머니는 이런 모습이 왠지 익숙하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힘들게 모아 놓은 신문을 누가 몰래 가져갈 때는 정말 속상하다고 토로한다. 이날도 반대 방향에서 신문을 줍던 한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수북이 모아 놓은 신문을 몰래 들고 가다가 들켜 다툼이 벌어질 뻔했다. 할아버지는 몇 장의 신문만 바닥에 내던지고 재빨리 도망갔다. 할머니는 혼잣말로 “나보다 키도 크고 힘도 강한 영감탱이가 더 많이 챙겼으면서 왜 내 것을 빼앗아 가누” 하고 투덜댔다. 그러고도 속이 안 풀렸는지 “얌체 같은 할아범”이라고 기어이 큰소리로 내뱉었다. 더 힘겨워 보이는 것은 하나에 20~30kg은 족히 넘어 보이는 마대 자루 3개를 옮기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좀 도와줬는데, 지금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아. 비슷한 일을 하는 할아버지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거 같아. 그래도 어쩌겠노. 돈 벌려면 해야지.” 할머니는 사람들의 곱지 못한 시각에 대해 이렇게 푸념했다. 기자도 자루를 옮기는 할머니를 도왔지만, 힘에 부칠 정도였다. “요령이 없어서 그래.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할머니는 무거운 자루를 충정로역 승강장 밖으로 끌어내리면서 희미하게 웃었다. 오전 11시 30분. 가방에 하나 가득, 그리고 마대 자루 3개에도 꽉꽉 눌러 담은 신문을 할머니는 충정로역 승강장에 모아놓는다. 충정로역에서 노약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가면 신문지를 구입하는 용달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동행 취재한 2월 21일, 충정로역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새벽부터 모아 놓은 신문 마대 자루가 긴 행렬을 이루었다. 충정로역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노인들은 창피하고 힘들기는 했지만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땀으로 가득 찬 얼굴에 표정이 밝아 보였다. 조금 전에 신문을 슬쩍 하다 들킨 할아버지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할머니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할머니를 따라 충정로역 엘리베이터를 타고 용달차가 있는 곳을 찾아가 봤다. 할머니는 “1kg에 150원 정도 받는데, 오늘은 6000원 정도는 번 것 같다”면서 “하루 평균 4000~5000원 받는 날이 많은데, 오늘은 많이 주웠다”며 뿌듯해했다. 신문이 담긴 자루를 용달차까지 옮기면, 대개 오전 11시가 조금 넘는다. 총 3시간 일해서 6000원을 번 셈이다. 저울에 무게를 달고 돈을 받는 노인에게서는 조금 전의 지친 기색은 간 곳 없고 밝은 모습이 역력했다. 노인들이 가져온 폐지를 사는 아하자원 소속의 주재현 씨는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차를 대기하고 있다”며 “(노인들이 모아온 신문은) 하루 평균 5t 분량이며, 1kg당 150원을 쳐 준다”“고 설명했다.
작년 6월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는 그는 “운동 삼아 일하는 분도 있지만, 생계를 위해 시작한 분들이 대부분”이라며 “부부가 같이 일하는 노인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신문 폐지를 팔아 살아가는 분들은 대개 일자리가 없고 자녀들 때문에 정부 지원금도 나오지 않아 이처럼 힘든 일을 계속하고 있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노인복지 문제를 꼬집기도 했다. ■일자리 없는 노인들 “먹고는 살아야지” 이복희 할머니처럼 지하철에서 폐지로 연명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30여명 안팎이었던 노인들은 최근 150여 명으로 5배 가까이 급증했고, 지금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고령에도 아직까지 충분히 일할 수 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할 일 없이 공짜 지하철을 타고 서울에서 천안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2000원짜리 점심 한 끼로 하루를 때우던 노인들이 요즘 신문 수집으로 새 활력을 찾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작년 10월에 국회 보건복지위 고경화 의원이 발표한 ‘보건복지부의 노인 일자리 유형별 참여인원 현황’에 따르면, 노인들의 일자리 절반 이상이 교통질서·주차계도 등의 공익성 일자리였고, 취업기간은 최대 8개월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8월 말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는 총 11만7837명이다. 이 가운데 공공이익을 도모하는 공익형(거리·자연환경 지킴이, 방범순찰 등)이 54.3%(6만3979명)였고, 거동불편 노인 돕기, 보육 도우미 등의 복지형(26.6%·3만1349명), 숲 생태·문화재 해설사 및 전통문화 지도사 등의 교육형(10.6%·1만2464명)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에, 간병인 사업, 지하철 택배, 실버 용품점, 전통공예·문화상품 제작 판매 등의 소규모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시장형은 6.8%(8099명)에 불과했다. 식당보조원, 주유원 등의 인력 파견형도 1.7%(1946명)였다. 일자리 참여기간도 6개월 미만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공익형 일자리 참여자 10명 중 3명은 3개월도 일하지 못했으며, 8개월 이상을 일한 사람은 0.3%에 그쳤다. 이러한 현실 때문일까. 노인들에게는 매일 쏟아지는 400만 부의 무가지가 ‘효자’라는 의견도 있다. 흔치 않은 벌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백kg의 폐지를 모아 나르는 고강도 노동에 비해 품값은 턱없이 적고 시민들의 반발도 제기되고 있어 노인들은 불안한 마음뿐이다. 폐지를 수집해 생계를 이어가는 박정수 할아버지 부부는 둘이 3시간을 일해 1만4000원을 벌었다. 한 사람당 시급 2000원도 안되는 셈이다. 현행 법정 최저시급 3480원보다 2000원 이상 적은 돈이다. 그나마 일감이 줄까, 지하철에서 쫓겨날까, 걱정이 크다. 벌이를 찾아 지하철 타는 노인이 늘며 폐지 선점 경쟁도 치열해졌다. 게다가 ‘미관상’ 혹은 ‘혼잡해서’ 싫다는 시민의 민원이 늘어나고 있어 지하철 회사의 고민도 깊다. 실제로 “나이 드신 분들이 대부분이라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으나, 사람을 밀치고 발을 밟는 등 불편을 주고 있다”며 단속을 요구하는 글이 서울메트로 고객의 소리 게시판에 잇따라 게시되고 있다. 도시철도공사의 관계자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고려하면 무가지 업체들이 뭔가 해법을 내놔야 하지만 강제할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니 난감하다”며 “노인들을 고용할 수도, 매몰차게 내보낼 수도 없다 보니 ‘내일부턴 우리 역에서 폐지 옮기지 마세요’ 하고 만다”고 토로했다. 또, 이들이 ‘노인’이라는 점과 ‘생활고를 해결하려 한다’는 당위성을 들며 단속에 항의하는데다,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지하철측의 단속에 호의적이지 않은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는 것.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혼잡시간대를 피해 수거해 달라고 계도하고 있지만, 경쟁이 치열해 일부 수거자들이 시민 불편은 외면한 채 출근시간대 혼잡한 전동차에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는 “노인 일자리는 경제성장 동력확충과 사회복지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만큼 정부는 더욱 안정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자리 창출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