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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퍼를 슬프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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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2호 김맹녕⁄ 2008.09.02 16:06:26

골퍼가 친 공에 맞아 한쪽 다리를 절며 먹이를 달라고 졸졸 쫓아 다니는 오리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넓은 연못 가운데 골퍼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가짜로 만들어 놓은 백조가 외롭게 늘 한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은 우리를 처량하게 만든다. 어느 비 오는 가을날 잣나무 위에서 `구구구` 하며 울어대는 산비둘기의 구성진 소리는 왠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어느 가을날 갑자기 쏟아진 비에 머리와 옷이 흠뻑 젖어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여성 골퍼의 모습은 가련해 보인다. 골프 코스에서 얼굴 탄다고 오징어 마스크를 하고 다니는 여성 골퍼는 지탄의 대상이다. 일곱 번째 프로 테스트에 불합격하여 짐을 싸 들고 클럽하우스를 힘없이 나오는 낙방 예비 프로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팔순이 넘은 노인 골퍼가 오늘 라운드로 골프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선언한 뒤 의연한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인생의 슬픔을 느낀다. 내기 골프에서 스코어를 속였다고 멱살 잡고 싸우는 시니어 골퍼는 왠지 추해 보인다. 아주 무더운 여름날 OB 난 공을 찾아오라고 숲속으로 캐디를 보내는 억대 골프장 회원님은 왠지 밉살스럽게 보인다. “집 나간 마누라와 OB 난 볼은 찾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은 하면서도 공을 찾으러 들어가 벌에 쏘여 혹을 붙이고 나오는 골퍼나, 언덕에서 미끄러져 다리를 절고 나오는 골퍼는 위선자이다. 젊은 여성 골퍼를 대동하고 코스에 나온 나이 많은 영감님이 `나이스 샷!을 연발하며 딸 같은 애인에게 알랑 떠는 모습은 정말 꼴불견이다. 캐디에게 추근대며 휴대전화 번호 알려 달라고 애원하는 높으신 관리를 볼 때면 사무실의 그 근엄한 모습은 한낮 위장자로만 보인다. 보스에게 `회장님, 회장님` 하며 `나이스 샷, 굿 파, 나이스 아웃, 오케이를 연발하는 어느 재벌 회사의 60 가까운 대머리 임원을 볼 때면 샐러리맨의 비애를 느낀다. 골프가 생각대로 잘 안 된다고 골프채를 집어던지는 후배, 드라이버를 꺾어버리는 친구, 재수 없는 공이라고 풀 속으로 날려 보내는 선배, 퍼터로 그린을 찍어버리는 사업가… 이들은 정말 잘난 골퍼들이다. 무더운 여름날 티셔츠를 바지 밖으로 길게 내놓은 배뚱뚱이 골퍼, 이슬이 차인다고 바짓가랑이 접고 다니는 꺽다리 골퍼, 허리 뒤에 흰 수건을 차고 나타나는 토목 건설 회사 사장님, 짧은 치마에 껌 씹으며 검은 선글라스 쓰고 되지도 않는 영어를 내뱉는 골퍼, 모두들 정말 밥맛없는 골퍼이다. 캐디가 알려준 핀까지의 거리가 틀려 벙커에 빠졌다고 성질 부리는 영감님, 알려주는 퍼팅 브렉이 틀렸다고 중얼대며 쌍욕을 해대는 젊은 친구, OB가 연속 3번이 나 화가 난 나머지 돌아가겠다고 골프백을 챙기는 어느 회사의 중견 간부… 이들은 모두 골프 칠 자격이 없는 골퍼이다. 쓰리 퍼팅을 했다고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입이 돼지처럼 나온 모 대학 교수님 , 술좌석에서나 강의시간에 골프 매너에 유난히 신경을 쓰라고 후배나 초보자들에게 강의하는 이들이야말로 위선자들이다. 삶에서 가장 즐거운 때나 가장 괴로울 때가 바로 골프를 칠 때라고 본다. 이런 기회를 감사하지 않고 스코어가 나지 않는다고 얼굴에 화난 얼굴을 하고 성질을 내는 골퍼야말로 인생의 낙오자라고 본다. 골프장의 이 모든 것들은 골프를 슬프게 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그 모습과 정다운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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