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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 효과, 연예계를 덮치다

자살이 자살 부르는 연예인들의 자살, 그 악순환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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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5호 김동희⁄ 2008.09.23 18:23:37

9월 8일 오후 서울 노원구 하계1동 골목에 일주일 넘게 주차되어 있던 검은색 카니발 자동차에서 신원미상의 시체가 지나가던 주민의 신고로 발견되었다. 당시 차 문은 모두 잠겨 밀폐되어 있었으며,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조대가 차 안에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 앞문 유리를 부수고서 차 문을 열자, 반팔·반바지 차림의 한 남자 시신이 뒷좌석에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누워 있어, 정확한 신원확인을 위해 노원경찰서로 옮겨졌다. 경찰 조사로 밝혀진 시체의 신원은 탤런트 안재환. 작년 11월 동료 연예인인 개그우먼 정선희와 결혼하여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어야 할 36세의 젊고 활기찬 연예인이 하루아침에 신원미상의 시체로 발견되자,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그 충격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경찰은 밀폐된 차, 타고 남은 연탄, 빈 소주병 등 발견 당시의 정황으로 미루어 ‘연탄가스 중독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에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반발한 유족들의 주장에 따라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하여 10일 오후 부검이 실시됐다. 그러나 17일 국과수의 공식발표 역시 ‘연탄가스 중독사’로 최종 마무리되었다. 혈액 분석 결과 안재환은 술에 취해 자살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안재환은 ETN에서 일일 연예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고정출연하며 사건 발생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밝고 활발한 모습으로 활동해 왔기 때문에, 그의 자살은 삽시간에 전국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안재환은 8월 21일 아내 정선희와 마지막으로 통화를 하고 “생각할 게 있으니 잠시 여행을 다녀오겠다”며 집을 떠났다고 한다. ■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당시 안재환은 사업부진으로 삼성동과 강남에 가지고 있던 사업을 정리하면서 부채 상환을 하려고 애쓰는 중이었다고 한다. 안재환은 정선희와 결혼한 직후 공동 투자하는 방법으로 세네린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고, H홈쇼핑과 연계되어 첫 방송에서 6000만 원, 첫 달 매출액 1억 원을 상회하는 이익을 내기도 했다. 공동 사업자로서 당시 아내 정 씨에게 알려준 안재환의 부채 규모는 약 5억 원. 끌어다 쓴 사채의 고금리가 문제가 되었다. 다만, 사업이 순풍을 타서 잘 되었다면 부채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5월 정선희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촛불집회 관련 발언’을 한 것이 ‘미국 쇠고기 관련 FTA 협정’에 불만을 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반감을 사게 되었다. 그녀의 팬들은 안티팬으로 돌아섰고, 온·오프라인에서 질타가 쏟아지며,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녀를 하차시켰다. 안재환이 서둘러 미니홈피를 통해 사과문을 냈으나, 성난 목소리를 잠재우긴 역부족이었다. 되레 안재환이 나서 그녀를 감싸준데 분노하며 정 씨가 모델로 나서 팔고 있던 세네린 화장품의 불매운동으로 번지게 되었다. H홈쇼핑은 서둘러 세네린 화장품의 방송을 연기했으며, 두 사람은 사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때부터 안재환은 주변에 조심스럽게 ‘5~6억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라고 힘들어하면서 돈을 융통하러 다녔다고 안 씨의 선배는 전했다. 빚이 35억 원을 넘어 점점 불어나자, 사채업자의 독촉은 그의 목을 졸랐고, 아내 정 씨도 사채 관련 협박성 전화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사채업자들은 “수십억을 빌려 놓고 갚지도 않는 연예인 부부가 있다고 언론사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하여 두 사람이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스트레스를 못 이긴 안재환은 집을 나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자살은 자살을 부른다 ‘베르테르 효과’란 ‘유명인의 죽음을 모방해 죽음을 선택하는 현상’이다. 1774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소설을 읽고 난 유럽의 젊은이들이 삶의 회의를 토로하며 소설 주인공을 모방하여 자살하는 기현상이 일어난 사건이 시초가 되어 ‘베르테르 효과’란 신조어가 생겼다. 동조자살(copycat suicide) 또는 모방자살이라고도 한다. 1996년부터는 한국 연예계도 이를 피해 가지 못했다. 1996년 1월 1일, 10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가수 서지원(21)의 자살 소식이 알려지면서 팬들은 동요한다. 서지원의 2집 앨범이 나오기 하루 전에 알려진 자살 소식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고, 이는 곧 2집 앨범의 폭발적 수요로 이어졌다. 그의 자살 원인에 대한 억측들이 나돌기도 했으나, 서지원의 유서에 ‘1집의 큰 성공에 무척 힘들었다’ ‘2집도 성공하면 안된다는 압박감에 힘들다’며 심적 고통을 토로한 것이 밝혀져 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어서 그해 1월 6일, 통기타 가수 김광석(36)이 목을 매 자살한 채 집에서 발견되어 큰 충격을 주었다. 고인이 생전에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에는 ‘우울증=자살’이란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 같은 현상은 비교적 젊고 촉망받는 연예인에게로 계보가 이어졌는데, 2005년 2월 영화배우 이은주의 자살이 그 후속이었다. 이은주는 2004년 MBC 드라마 <불새>의 큰 성공 이후 출연한 영화 <주홍글씨>의 흥행부진으로 전반적인 인기 하락세와 함께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병원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집에서 목을 매 자살함으로써 연예계에 ‘우울증이 불러온 또 하나의 자살’이라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2007년 1월에는 가수 유니가 자살한 채 집에서 발견되었는데, 그녀의 자살 역시 새 앨범 발매 직후 일부 네티즌으로부터 쏟아진 테러에 가까운 악성 리플(인격모욕성 글) 공격을 받아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앓다가 목을 맨 것으로 밝혀졌다. 그 뒤를 잇기라도 하듯, 같은 해 2월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로 선하고 발랄한 이미지로 유명해진 탤런트 정다빈이 남자친구의 집 욕실에서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되었고, 경찰수사 후 자살로 결론지어졌다. 연예인들이 자살 충동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전작의 엄청난 성공에서 비롯되는 차기작에 쏟아지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감이 주는 스트레스’가 1순위로 꼽힌다. 서지원도 유서에서 썼듯이, 가수들은 흔히 ‘전 앨범의 큰 성공 이후 다음 앨범도 성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압박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다른 연예인들 역시 ‘팬들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해 팬들의 사랑이 변하는 것을 견딜 수 없다’고 밝힌다. 팬들의 지나친 사랑과 기대에서 연예인들이 받는 두려움 역시 그들을 싫어하는 일부 ‘안티팬의 악플 공격’ 이상의 큰 공포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미 70년대 미국 연예계에서도 공공연하게 일어나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명명되어 있으며, 이 현상은 유명 스타들이 ‘과도한 팬의 사랑이 불러오는 자살의 충동’을 느끼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소포모어 징크스’로 연예인이 자살할 경우, 그 영향력은 그 사람의 인지도에 따라 보통사람의 자살보다 10배에서 100배까지 파급력을 가지고 전파되는데, 언론에서 이를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많은 사람이 그들의 죽음에 책임감과 안타까움을 느껴 그의 죽음에 동조하게 된다. 이와 같은 우려는 결국 추석 연휴에 현실이 되어버렸다. 9월 12일 오후 5시 20분께 강원도 국도 옆 공터에서 김모 씨(65·인천시)가 자신의 스타렉스 승합차 앞좌석에서 숨져 있는 것을 주민 박모 씨(65)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김 씨 역시 차량 뒷좌석에 연탄난로를 피우고 유서를 남겨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이틀 뒤인 14일 울산에서 김모 씨(32·여)가 차 안에서 연탄불을 피워 이산화탄소 중독으로 자살한 채 발견되었다. 차 안에서는 화덕과 연탄재, 그리고 ‘학원 운영이 안 되어 고민이 많았다. 불효를 하게 되어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돼 충격을 주었다. 같은 날 강원도의 D모텔에서도 김모 씨(36·인천시)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이미 숨져 있었으며, 객실에서는 타다 남은 연탄과 화덕이 발견돼 이 역시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한 자살로 결론이 났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이 있다.‘그렇게 죽을 용기라면 무슨 일인들 못하랴’하는 한탄이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세상 그 어떤 이유로도 자살은 결코 미덕일 수 없으며, 어떤 형식으로도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처럼 고귀한 가치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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