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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사랑과 영혼’ 뮤지컬 <미라클>

웃음과 감동 잃은 사람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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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6호 이우인⁄ 2008.09.30 15:09:37

<시카고> <갬블러> <캣츠> 등 해외의 유명 뮤지컬을 국내 버전으로 재구성해 공연하는 대형 뮤지컬이 스타급 배우를 기용하여 많은 홍보비용을 써가며 뮤지컬 시장을 압도하는 가운데, 이에 기죽지 않고 지난해 6월 1일부터 1년 넘게 대학로의 한 조그만 공연장에서 묵묵히 관객을 맞이하고 있는 아주 소박한 공연이 눈에 띈다. 서울 대학로 미라클씨어터 1관에서 공연 중인 ‘한국판 사랑과 영혼’ 뮤지컬 <미라클>(musical Miracle/ 작·연출 김태린)은 2003년 2월 초연한 이래 같은 해 7월 앵콜 공연을 치르며 인기를 누렸다. 대학로에서 <미라클>이 공연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였다. 대학로의 스테디셀러 공연으로 자리 잡은 <미라클>은 100석의 소극장에서 10번의 앵콜 공연과 2,000회가 넘는 공연 횟수로 5년 동안 10만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지난해 6월부터는 ‘제1회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 창작지원작으로 당선돼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미라클>은 오픈 런(OPEN RUN)으로 계속해 관객을 모을 예정이다.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웰메이드 뮤지컬 <미라클>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9월 24일 저녁 8시 반에 시작하는 공연을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 ■ ‘미라클’ 병원 사람들 “꼭 다시 살아나서 그녀를 안아보고 싶어” 전직 가수였던 식물인간 환자 김희동 역…전재민 가요 프로그램에서 3위까지 오른 곡 ‘식어버린 핫 초코’를 부른 인기 그룹 ‘핫바’의 멤버였던 김희동. 하지만, 교통사고로 지금은 ‘미라클’ 병원에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안타까운 신세이다. 낙천적인 성격의 희동은 꼭 다시 살아나 이하늬 간호사를 안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 “그의 영혼은 살기를 몹시 희망하고 있어요” ‘미라클’ 병원 새내기 간호사 이하늬 역…이수나 ‘미라클’ 병원에서 실무를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간호사이다. 식물인간으로 누워만 있는 희동에게 언제나 용기 있는 말로 희망을 주고 있다. 희동의 영혼과 만나게 되면서 그를 사랑하게 된다. “살 수 있단 희망은 버리는 편이 좋아” 식물인간 환자 4년차 홍길동 역…윤덕현 희동의 옆방 환자. 매일같이 희동의 방을 찾아 냉장고를 뒤지고, 희동의 팬레터를 훔쳐 읽고, 희동 대신 답장을 쓴다. 그런데, 그 역시 희동과 같은 처지. 4년째 식물인간의 생을 이어가는 길동에게는 젊은 아내와 유치원생 딸도 있다. 희동과 하늬가 만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나는 잘났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났어” ‘미라클’ 병원 변태 의사 닥터 변 역…김명 잘생긴(?) 얼굴·큰 키·좋은 학벌·의사라는 전문직업 등등, 자신이 엘리트임을 노래로 자랑하는 닥터 변. 하지만, 그는 하늬가 신다 버린 스타킹을 가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수시로 냄새를 맡는 변태 기질이 다분한 의사이다. “안 일어나면 확 뽀뽀한다” ‘미라클’ 병원 고참 간호사 미저리 역…최여진 희동의 마음을 어둡게 만드는 장본인. 희동은 그녀를 ‘미저리’라고 부른다. 그녀는 하루에도 수차례 희동에게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짝사랑하는 닥터 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맡는 비운(?)의 여성이기도 하다. ■ ‘미라클’ 병원 이야기 “나는 이하늬 간호사를 좋아해요” 인기 그룹 ‘핫바’의 멤버였던 희동은 교통사고를 당해 지금은 어두운 병실에서 찾아오는 가족 하나 없이 쓸쓸한 식물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희동은 자신의 정신이 육체와 떨어지는 유체이탈 능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감정을 느끼고 말하는 일만 가능할 뿐, 병실 밖으로 나갈 수도, 사물을 만질 수도 없다. 만약에 이대로 영원히 깰 수 없다면, 평소 좋아하던 이하늬 간호사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게 그의 마지막 소원이다. “하늬 씨, 당신을 사랑하는 제가 보이나요?” 매일같이 희동의 방으로 찾아와 희동의 음료수와 팬레터를 훔쳐가는 길동. 어느 날 희동은 길동이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졌음을 깨닫는다. 식물인간이 된 지 4년째를 맞는 길동은 곧 살아날 거라 확신하는 희동에게 희망을 버리는 편이 좋다고 말한다. 희동은 자신보다 높은 능력을 구사하는 길동에게 “이하늬 간호사에게 제 마음을 대신 전해주세요”라고 부탁하고, 길동은 희동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온갖 엉뚱한 방법을 다 동원한다. “기적은 이미 이뤄졌어요. 이렇게 당신과 만났으니까요” 하늬와 마주보고 대화할 수 있게 된 희동은 법적 대리인이 자신이 살아나기를 기다리는 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설상가상으로, 의지했던 길동마저 죽음을 맞이하여 먼 곳으로 떠나 희동의 마음은 점점 더 쇠약해진다. 하늬는 희동을 안락사시키지 말아달라며 닥터 변에게 간청하지만, 닥터 변은 “환자에게도 죽을 권리가 있다”는 말로 대신한다. 희동은 울며 매달리는 하늬에게 “다시 살아나는 기적은 없겠지만, 이렇게 당신과 만났으니, 기적은 이미 이뤄졌어요”라고 말하며 미소 짓는다. ■ 리뷰-소박하지만 강렬하게 다가오는 뮤지컬 <미라클> 평일 오후 8시 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한 블록 뒤에 위치한 <미라클> 공연장을 찾았다. 건물의 허름한 외관부터 “이곳이 뮤지컬 공연장 맞아?”라는 의구심을 줬다. 매표소 직원이 건네준 입장권도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싸구려 미용실 쿠폰처럼 촌스러웠다. 아무도 없는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20여 분이 지루할 것 같은 생각에 밖으로 나왔다. 공연 시간에 맞춰 다시 찾은 <미라클> 대합실에는 아까와 다르게 사람들로 북적였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좁은 대합실에서 공연장으로 입장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10평 남짓한 무대와 객석을 확인한 다음 또 다시 “뮤지컬 맞아? 연극으로 착각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3만 원밖에 하지 않는 저가의 뮤지컬이라지만, 해도 너무했다. 한눈에도 먼지가 소복이 쌓인 소품과 무대, 특히 곰 인형에 낀 검은 때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뮤지컬을 보고 나오면 먼지부터 털어야겠단 생각이 먼저 들 정도였다. 관객들도 미지의 세계에 끌려온 듯 요상한 표정으로 좌석을 찾았고, 사방에서 반신반의하는 대화들이 오갔다. 이런 관객의 의심을 단번에 믿음으로 바꾼 기적은 공연 전 안내 멘트가 흐를 때부터였다. 여성 안내원의 기지에 찬 멘트는 뇌리에 박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웃음 짓게 한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고, 맨발에 환자복 차림의 남자 주인공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 뒤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첫 신부터 노래를 하는 배우의 모습에서 이 공연이 뮤지컬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마에 마이크를 달았지만, 마이크 없이도 다 들릴 만큼 작은 공간은 배우들의 노래로 메아리쳤다. 좁은 공간이라는 이점 때문에 작은 찡그림, 흐르는 눈물 등 배우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배우들이 관객에게 수시로 거는 장난은 다른 사람의 즐거움이 아닌 자신의 즐거움처럼 가까이 있었다. 공연이 진행되는 100여 분 동안 시간이 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배꼽을 잡기도, 진지한 표정이 되기도 했다. 지나치게 작은 규모, 먼지 가득한 소품과 무대, 배우들의 허름한 의상, 카바레에서나 볼 법한 조명과 스피커 등등, 공연 전에 밀려왔던 불만은 어느새 사라졌다. 오히려, “촌스럽기 때문에 공연이 더 재밌었던 것이 아닐까”란 생각마저 들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박수 소리는 한동안 이어졌다. 관객들은 저마다 좋은 공연에 감사하는 표정을 지었다. 건물을 나서는 관객들의 목소리에도 행복한 기운이 감돌았다. <미라클> 입장권에 쓰여진 ‘본 티켓 소지 후 재관람시, 미라클 10,000원 할인’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웃음과 감동을 잊어버린 사람과 몇 번이라도 다시 보고 싶은 공연이었다.

공연명: 뮤지컬 <미라클> 공연기간: OPEN RUN 공연시간: 평일(화~금·월 휴관) 8시 반/ 주말ㆍ공휴일 4시, 7시 공연장소: 미라클씨어터 1관 관람등급: 12세 이상 러닝타임: 100분 티켓가격: 일반 30,000원 / 대학생 25,000원/ 청소년 20,000원 공연문의: 파마프로덕션 (02)742-7262 홈페이지: www.artpam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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