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11월 5일,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이날 새 대통령으로 당선됨에 따라, 향후 한반도의 정치·안보·외교 지형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김영삼 정부에서 외무부 장관을 지낸 한승주 전 주미 대사를 비롯한 외교안보 전문가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갖고 내년 초에 들어설 미국의 새 ‘오바마 정부’에 대비해 외교·통일·국방 정책 전반에 관한 자문을 구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향후 한미관계 및 남북관계 구상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 중동정세 평가 ▲한반도 주변 주요국들과의 협력관계 ▲북핵문제 접근 등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하면서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인과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닮은 꼴”이라고 자평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밝혔다. 이날 오찬에 참석한 인사들은 “오바마 당선인 측의 인맥과 신뢰관계도 중요하지만, 어떠한 정책협의를 통해 한미 협력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오바마 당선자와 옷깃이라도 스친 인연이 있으면 붙들고 조언을 구하고 싶을 정도로 오바마 인맥에 대해 전무한 실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 “오바마 캠프에 한인 출신 많아 문제없어” 특히, 정부 내에서도 오바마 당선자와 직접적인 친분 관계를 쌓은 외교부 인사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고민을 더해주고 있다. 1996년 일리노이 주 의회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오바마 당선자는 2005년 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중앙 정계에 뛰어들었고, 다시 2년 만에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 ‘신인 정치인’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오바마가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이겼을 당시만 해도 첫 흑인 대통령 탄생을 반신반의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즉, 오바마 당선자의 짧은 정치 경력과 ‘파격적인’ 대통령 당선, 외교 경험 부재 등의 조건은 그와 개인적 친분을 쌓을 만한 시간적 여건과 기회를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평가였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오바마 당선자의 정치 경력이 많지 않아 직접적으로 특별한 관계를 구축한 정부 인사는 많지 않다”며 “외교부 내에도 미국 민주당보다는 공화당 인맥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해 이 같은 고민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오바마 진영의 참모진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인사들과 오마바 캠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한국계 인사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한인 동포들 중 오바마 캠프에서 활약한 인사들과의 관계 유지에도 특별히 신경을 쓴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한인의 정치 참여가 신장되고 있고 오바마 캠프에서도 간부 등으로 활동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있다”며 “그들의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충분히 지원하면서 관리·주시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정부는 전·현직 외교 안보 라인과 정부 관계자 중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인연의 끈이 닿았던 사람들을 물색하는 등 ‘오바마 인맥 재정비’에도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과 신혜경 국토해양비서관이 오바마 당선자와 하버드대 로스쿨 동문이지만 특별한 인연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으나, 주미 대사관 참사관 및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을 지낸 유명환 외교부 장관과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 요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북미통’ 고위 당국자들의 역할에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당선자가 외교안보분야에서 경륜이 쌓인 인사라는 점과 한국 인맥이 두텁다는 점도 기대감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청와대는 5일 오바마 후보의 당선과 관련해, 바이든 부통령 당선인과 이명박 대통령의 ‘인연’을 강조하여 눈길을 끌고 있다.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 관계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이 대통령께서 오바마 당선인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다”면서 “외교 분야에서는 오바마 당선인보다 바이든 부통령 당선인이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칠 텐데, 이 대통령과 바이든 당선인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소개했다. ■ MB-바이든 부통령 당선자 인연 기대 지난 2월 미 의회가 이 대통령의 당선축하 결의안을 채택하는 과정을 주도한 인물이 바이든 당선인이다. 당시 바이든은 향후 한미동맹 강화를 최우선 정책으로 삼겠다는 뜻을 밝히며 결의안을 제출했다는 것이다. 이례적으로 특정 국가의 대통령 당선에 대한 결의안이 채택된 만큼, 두 사람이 이를 계기로 돈독한 관계를 쌓아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6일 바이든 당선인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미국민들이 오바마 당선인과 귀하를 선택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 본인의 대통령 당선에 대한 미 의회의 축하 결의를 기억한다. 이제 당신이 본인의 진심어린 축하를 받을 차례”라며,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등 고마운 감정이 ‘뚝뚝’ 묻어났다. 오바마 당선인에게 보낸 서한이 “파트너십의 힘을 강력하게 믿는다” “두 나라의 협력이 21세기 한미 전략동맹을 향한 올바른 방향” 등 다소 딱딱하고 업무적인 내용으로 채워진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대통령 당선인인 오바마에게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외교적 결례를 우려, 다소 ‘깍듯한’ 표현을 사용한 반면, 자신의 당선축하 결의안을 성사시킨 바이든 당선인에게는 한층 친밀한 표현으로 애정을 드러낸 셈이다. 그리고 청와대는 이 대통령과 오바마 당선인이 ‘가난’과 ‘불안정한 가정환경’으로 모두 순탄치 않은 유년기를 보내는 등 적잖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먹을 게 없어서 술을 담그고 남은 ‘술 지게미’로 배를 채우고 학교에 갈” 정도로 가난했으며, 특히 총명했지만 늘 학비를 걱정해야 했고, 때로는 재래시장에서 과일 행상을 하는 어머니를 도와야 했기 때문에, 이때의 경험은 훗날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교육정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미 캔사스 주 출신의 백인 어머니와 케냐 출신 유학생인 흑인 아버지사이에서 태어난 오바마는 2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가 인도네시아 유학생과 재혼하는 바람에 고향인 하와이를 떠나 인도네시아로 갔지만, 어머니의 두 번째 파경으로 13살 때 고향인 하와이로 돌아왔다. 오바마는 외조부가 살뜰하게 챙겨줬지만, 잦은 환경변화와 인종차별로 인한 상처는 청소년기의 방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대통령처럼 어린 시절의 서러운 기억을 생산적으로 승화시켜 모호한 정체성과 아시아에서의 어린 시절을 토대로 다양한 문화와 인종을 포용하는 능력을 키웠고, 이는 문화와 인종을 초월한 ‘하나의 미국’이라는 모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두 사람이 ‘강한 어머니’를 둔 것도 공통점이며, 명문대 진학 이후 뒤늦게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점도 두 사람의 교집합 중 하나라는 것이다. 아무튼, 이 대통령은 7일 오전 오바마 당선자와 전화통화를 기진데 이어, 오는 14일 오후 G20 다자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는 길에 워싱턴에서 미극 브리킹스 연구소의 주선으로 오바마 당선자의 외교안보 참모진들과 간담회를 갖고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비롯한 양국 간 현안 조율에 본격 나서기로 한 것으로 전해져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미국 민주당의 대표적인 싱크 탱크로 민주당의 정책에 깊숙이 간여해 왔으며, 향후 오바마 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산실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알려진 연구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