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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 유년의 기억

만두를 만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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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94호 편집팀⁄ 2008.11.25 12:01:58

내 기억에 고향 호남평야 쪽에서는 만두를 그다지 즐겨 만들어 먹지 않았던 것 같다. 대신, 집집이 거의가 논 스무 마지기는 넘어서 겨우내 찹쌀이나 쌀로 빚은 다양한 간식을 풍족하게 즐겼다. 어느 해 겨울, 옆집에 읍내 교장 댁이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그 집의 주식은 밀가루로 만든 만두나 국수·튀김들이어서 우리 집과는 사뭇 다른 입맛의 먹거리를 만들어냈다. 그 집에 나와 동갑내기 여자 재희라는 예쁘장한 아이가 있었다. 나와 곧 친하게 된 재희는 함께 다락에 올라가 커피를 타서 먹고는 했으니, 내가 처음 커피 맛을 알게 된 것도 그 친구 때문이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덤으로 먹는 고소한 커피 프림은 그 당시 학교 급식으로 가끔 먹었던 가루우유와 맛이 비슷하게 고소했다. 그날도 친구와 내가 다락에서 커피를 즐기며 언니들이 보는 성인 잡지(여성지)를 보고 있었다. 그때 전주에서 대학교에 다니는 친구의 언니가 다락으로 올라와, 나와 친구에게 커피를 즐겨 먹으면 안 된다고 여러 가지 설명을 했다. 카페인이라는 것이 들어 있어서 중독이 된다느니, 너희들처럼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어린이는 키가 잘 자랄 수가 없느니 하고 겁을 주면서, 언니들처럼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먹어야 된다고 곁들여 자상하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그토록 구수하고 맛있는 커피에 그런 성분이 있다는 설명에 깜짝 놀라, 그날 이후로 이십대가 되기 전까지는 아예 커피를 입에 대지도 않게 되었다. 친구 재희와 내가 다락에서 몰래 마시던 커피도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그 집에는 위로 딸이 일곱에 밑으로 아들 둘이 있었다. 장장 아홉 아이를 데리고 겨울을 보내자면 정말 교장 사모님의 손과 발은 닳고 닳았을 터이지만, 위의 언니가 아래 동생들을 하나씩 책임지면서 오히려 우리 집 일곱 형제자매보다 더 체계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날 해질 무렵, 대학교에 다니는 언니들과 내 친구가 논 가운데서 모닥불처럼 뭔가를 태우고 있었다. 마치 썰매를 타다가 젖은 옷을 말리거나 재미로 짚불을 태우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 이상하게도 고소한 냄새가 그 논 가운데서 우리 집에 까지 번져왔다. 나는 이내 궁금증이 나서 참지 못하고 논으로 달려 나갔다. 불기가 뜨거운 짚불 속에서 친구의 언니는 고구마 형태와 같은 크기의 까맣게 탄 것을 끄집어내어 그 몸에서 하얀 살을 뜯어내 먹었다. 언니는 그 까만 것이 참새라고 했다. 친구 언니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하얀 참새고기를 한 입 넣어주었다. 닭고기 비슷한 고소한 맛이 났다. 언니들이 내 표정을 살피면서 맛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했다. 대학 다니는 언니들은 수인이가 맛을 제대로 안다면서 자꾸만 주었다. 나는 언니들과 같이 참새고기를 맛있게 먹은 다음, 남겨진 뼈는 불 속에 넣고 다시 지푸라기를 더 태웠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언니들이 논에서 구워준 참새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했다. 엄마와 오빠는 “요즘 참새 잡기가 힘들 텐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때 친구가 대문에서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대문 밖에서 친구가 들고 있는 것은 쟁반에 가득한 빵이었다. 동글동글하면서 흡사 빵과 같은 모양의 밀가루로 빚은 음식인데, 내가 처음 보는 배가 불룩한 하얀 빵이었다. “이게 뭐야?” “음, 만두라고 하는데…. 넌 몰라?” “응, 난 처음 봐…이게 만두야? ” “치이…니는 쥐도 모르더라. 어디 그게 참새니? 오늘 네가 먹은 거 쥐고기야!” “뭐야?…쥐고기를 먹었다고? 내가 언제?…그 드러운 쥐를 먹었다고 그래?” “오늘 우리 집 논에서 구운 거, 그거 쥐야. 것 봐, 만두도 모르고….” 나는 받아 든 만두 쟁반을 그 친구 앞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던져버렸다. 그리고 씩씩대며 집으로 들어가 방문을 걸고 엉엉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어찌나 충격적이고 부끄럽던지, 다시는 그 친구를 만나지도 않을 것이며, 그 집 언니들을 용서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만두 하나 만들지 못하는 엄마가 은근히 창피하고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우리 집에도 그 당시 전주에서 대학에 다니는 큰오빠가 있었는데, 오빠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서 나에게 위로의 말을 했다. “수인아, 쥐가 얼마나 깨끗한지 모르지? 쥐는 그렇게 더러운 동물이 아니야. 물론 까맣고 무지 징그럽지. 수채구멍 같은 곳을 들락거리니 더럽기도 하고. 하지만, 농촌 쥐는 깨끗한 벼나 쌀 같은 것만 먹고 살아서 책에 나오는 도시 쥐랑은 달라.” “오빠, 쥐가 그 무서운 페스트도 옮기는 더러운 동물이라는 거 나두 학교에서 실과 시간에 배웠어. 엉엉엉… 나두 잘 알어. 쥐는 드럽고 나뻐. 난 이제 페스트에 걸렸는지도 모른다구. 엉엉엉….” 나는 내가 정말 모르고 먹은 그 고소한 고기가 쥐고기였는지 언니들에게 묻고만 싶어졌다. 언니들도 분명 맛있게 같이 먹었는데…. 그렇다면 놀리려고 나만 먹인 것은 아니니까 무슨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하고 생각하며 오빠의 말을 위로 삼아 다소 충격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만두도 모른다는 그 말은 정말 억울해서 엄마에게 대뜸 따졌다. “엄마는 재희 엄마보다 잘하는 게 뭐야? 만두도 하나 못 만들고. 맨날 찰떡에, 호박고지에, 인절미에, 떡만 입에 물리고, 재희 엄마처럼 튀김이나 냉면이나 만두는 왜 못 만드는 거냐구! ” 엄마는 정말 미안한 표정과 겸연쩍은 얼굴이 되어 내게 말씀하셨다. “지지배…쥐고기 먹고 엄마한테 화풀이는…. 엄마가 만두 하나 못 할 것 같어? 그려, 내일은 만두를 만들어보자꾸나.” 다음날 아침 일찍 엄마는 읍내에 나가서 장을 보아다가 만두피에 만두속까지 깔끔하게 만들어 놓았다. 우리 가족이 처음 만두를 빚어본 것이 아마 그날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만두를 만들다가 피식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그 친구와의 추억 때문이다. 글·이수인 (작가·시낭송가) <유년의 기억>이란 주제로 격주연재 수필을 담는 이수인 시인은 서울예대에서 극작을 전공하고, MBC·KBS 드라마 과정을 수료하였다. <시문학>을 통해 등단한 뒤, CBS TV에서 시낭송을 진행했다. 저서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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