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4천 년 강토와 5백 년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생령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 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중략>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기자 이래 4천 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 동포여 !’ 황성신문 발행인이었던 장지연 선생이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문’에 쓴 사설의 일부다. 사설의 주된 내용은 침략의 앞잡이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비난하고 을사오적을 우리 강토와 국가를 남에게 바치고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려는 ‘매국의 적(賊)’이라고 비난하면서, 이 조약은 고종황제가 승인을 거부했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 논설 외에도 잡보(雜報)란에 ‘오조약청체전말'(五條約請締顚末)’이라는 제목으로 조약을 강제 체결하게 된 정황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 비분강개의 논설이 실린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은 평소보다 많은 1만 부가 인쇄되어 이른 새벽에 서울 장안에 배포되었고, 신문이 배포되자마자 장지연은 같은 날 오전 5시 한양골의 사옥에서 체포되어 경무청에 수감되었다. 또한, 인쇄기계와 활자가 강제로 봉인되었고, 마침내 무기 정간령이 내려졌다. 103년이 흐른 지금 장지연 선생의 글이 다시 떠오른다. 종이 신문에 이어 온라인 매체, 무가지 신문 등 다양한 언론시장을 형성, 무수히 많은 정보를 쏟아내면서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10년 만에 정권이 바뀐 지금, 언론시장은 권력의 시녀이자 나팔수로 변모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언론의 자유는 공공재다. 그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이나 우리를 억압했던 언론이나 누구나 평등하게 누리는 재원인 것이다. 이제 언론이 언론자유를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을 좌파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언론의 혜택을 톡톡히 본 사람이다. BBK 등 대형 악재에서 언론이 제 기능을 못했다면 위태로웠을 것이다. 특히, 인터넷 매체들은 이 대통령에게 벌어지는 사건을 시시때때 온라인을 통해 전달한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오히려 인터넷 때문에 과거의 악재들이 다시 살아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10년 만에 정권을 교체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입맛에 맞는 언론과 기생하기보다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해야 한다고 본다. ‘보도지침’을 남발하던 지난 5공화국 때 시민들이 언론자유를 얻어놨더니 일부 언론은 무임승차해왔다. 일부언론은 5공화국 때 엄청난 팽창을 거듭해 ‘밤의 대통령’이라는 별칭까지 얻기도 했다. 그 동안 기자들도 엄청난 당근을 받아 먹었다. 지금 정치권력보다 언론권력이 더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수구언론 권력은 언론의 옷을 입고 있지, 내용은 수구적 정치세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우리 언론은 ‘자민족 중심주의’ 보도 역시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언론이 아시아 국가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크게 부족하며, 이에 따라 아시아 언론의 보도가 상호간에 부정적으로 이뤄지는 한편, 실제 보도가 아시아 국가보다는 미국 등 서방국가에 치우치고 있다는 여론이다.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언론은 우리 사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쓴소리를 해주고, 권력이 감추려 하는 이야기들을 캐내어 꺼내 놓아야 한다. 권력에 비판적인 언론이 필요하지, 권력을 만들고, 권력에 영합하고, 권력의 말을 받아 쓰는 언론은 필요 없다. 어느 나라에서건 미디어가 언론의 정도를 이탈해서 돈맛, 권력의 맛을 들이면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고 만다. 민주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론의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권력과 유착하지 않고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언론을 만드는 것은 언론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다시 103년 만에 장지연 선생의 ‘시일야방성대곡’을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