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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유년의 기억

할머니의 용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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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98호 편집팀⁄ 2008.12.23 13:46:36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40일이 지나고 나서야 할머니는 당신이 쓰시던 작은 세간살이를 정리해 우리 집으로 오셨다. 할머니는 오셔서 한마디도 할아버지에 대한 언급을 안 하시고, 사랑채에 발걸음조차 끊으셨다. 마루 한쪽에는 할아버지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어머니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할아버지의 영정 앞에 따뜻하게 지은 밥과 국, 살아생전에 좋아하시던 굴비며 고사리나물 등으로 정성껏 하루를 거르지 않고 세 끼 식사를 꼬박꼬박 올리셨다. 우리 형제자매는 돌아가며 할아버지께 문안 인사 겸 식사 당번을 했다.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보면 인자하게 웃고 계셔서, 영혼으로나마 나와 우리 가족을 지켜보시는 것 같아, 나는 영정 앞에서 더 조신하게 행동을 했다. 찬밥이 많아 밥을 지을 필요가 없을 때조차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위해서 한 그릇의 따뜻한 밥과 국을 만드시는 효부였다. 어느 날 나는 할아버지의 식사를 들고 나오다 정지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 토방에 모두 쏟아버리고 말았다. 그때 할머니가 달려 나오셔서 쏟아진 밥그릇과 찬그릇을 치우며 한마디 하셨다. “잘혔다, 악아! 할애비 오늘은 굶겨라. 한 끼 굶는다고 죽은 사람이 또 죽겄냐? 악아 어디 안 다쳤어?” 어머니도 한마디 하신다. “어머이는 참! 돌아가신 양반 엔간이 미워혀셔라오. 난중에 가셔서 만나면 어쩔라고 그랬쌌오. 아버이가 어디 어머이 싫어서 그러셨소? 아버이도 억지로 그리 되셨어라오. 인자 그만 미워헐 때도 되았고만, 그래 싸시네!” 할머니는 쟁반에 주워 담은 찬그릇을 찬장 살강에 휙 던져 놓으시고 뒷마당으로 나가시며 어머니에게 쏘아붙이셨다. “니가 어찌 내 속을 알겄냐? 애비 같은 신랑 만나서 사니께 아무 것도 모르지. 내가 죽어서 그놈의 영감을 왜 만나! 저승 문턱에서 기두려도 안 본다, 안봐!” 어머니는 더 이상 할머니께 말대꾸하는 게 무리라는 듯 내 머리만 한 대 쥐어박았다. “지지바야, 조심 좀 허지! 벌써 몇 번째여?” 할머니는 한이 너무나 깊으셨다. 가끔 부엌에서 불을 때실 때 쇠로 된 부지깽이로 솥뚜껑을 내리치면서 울기도 하셨고, 한없이 넋두리를 하실 땐 할아버지가 정말 뭔가 크게 할머니한테 잘못하신 게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해 추석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할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곱게 동백기름을 발라 머리를 쪽 짓고, 평소 잘 안 입고 아끼시던 옥색 치마저고리를 화사하게 차려입으셨다. 칠순 선물로 서울 작은어머니가 사 드린 금비녀도 꽂으시고, 옷고름에 노리개도 다셨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표정이 심상치않게 굳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할머니의 변화에 놀라, 때때옷을 입고도 뒷전에서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고만 있었다. 아직 1년 상을 치르지 못했다며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상복을 입고 계셨다. 그런데 할아버지 산소에 할머니는 그 차림으로 가시겠다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아무리 말려도 가시겠다고 따라 나선 할머니와 나는 손을 꼭 잡고 성묘를 가게 되었다. 나는 왜 할머니가 그런 차림으로 가시면 안 되는지 어렴풋이 알았지만, 그저 속으로는 좋기만 하였다. 원래 돌아가시고 1년이 지나야 영정도 없애고 탈상을 하는데, 아직은 1년이 채 되지 못해서 상복을 입고 언행을 조심하고 의복도 화려하게 입을 수 없다 하여, 어른들은 산소에 갈 때도 삼베옷을 입으셨다. 할아버지의 성묘는 나도 처음이었다. 산소까지 가는 길은 집에서 대략 오 리는 되었는데, 햇살이 투명하고 길옆에서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위에 빨간 고추잠자리가 맴돌고 있었다. 나는 뭐가 그리 좋았는지 폴짝거리다 넘어져, 하늘색 스타킹에 구멍이 나 어찌나 속상하던지 지금도 그 기억만큼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할아버지의 둥근 무덤엔 아직 잔디가 많이 자라지 않았고, 군데군데 황토 흙도 보였다. 삐죽이 돋아난 이름 모를 풀들과 그 사이를 바지런하게 기어다니는 개미들도 보였다. 할아버지의 산소 옆에는 평소 좋아하시던 단풍나무가 큼직하게 자라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놓아 보기에도 좋았다. 정남향의 무덤 아래쪽으로는 퍼런 호수가 제법 크게 펼쳐져 있었다. 6.25때 폭발로 움푹 패여 만들어진 호수라는데, 물이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얼굴이 비칠 정도였다. 이 묏자리는 고을 최고의 지관이 잡아준 명당을 할아버지가 손수 장만해 놓으셨다고 했다. 그때 몇 발짝 주춤거리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무덤 앞에 주저앉으며 대성통곡을 하셨다. “아이고! 아이고오! 내가 어디가 그년만 못혀서…날 버렸느냐, 이 못된 인간아~! 어서 나와 말 좀 혀봐, 이놈에 영감아!” 그때 나는 보았다. 무덤에 엎드려 잔디를 부여잡은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우리는 모두 숨죽여 할머니가 통분을 삭히시게 거들었다. 이윽고 일어나신 할머니는 술 한 잔을 정성껏 따라서 묘 위에 휘휘 뿌리시고, 삐죽이 돋아난 풀들을 손수 뽑아내시며 아버지를 향해 조용히 말씀하셨다. “…애비야, 니 애비 봉분 새로 혀야 쓰겄다, 비 오면 씻기고 안 좋겄어…. 돈 좀 들어도 작은아랑 상의혀서 될 수 있으면 싸게싸게 (빨리)혀라!” 비로소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용서하신 것이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할아버지 영정 앞에 손수 식사를 준비해 올리시기도 하고, 가끔 중얼거리며 대화도 나누셨다. 어느 날은 여전히 토라지셔서 쌀쌀맞게 영정 앞을 지나치기도 하셨지만, 어쩐지 영정 속 할아버지의 표정은 한층 더 밝아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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