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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기억

빨간 빤쓰 대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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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05호 편집팀⁄ 2009.02.17 13:58:10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닷짝꿍놀이(지금은 공기놀이라고 함)의 천재인 공순이라는 영특하고 예쁘장한 여자 친구가 있었다. 닷짝꿍놀이의 마지막 순서에 솥걸기가 있는데, 세 개의 공깃돌을 반듯하게 모아놓고 그 위에 솥처럼 공깃돌 한 개를 살포시 올려놓는 묘기가 단연 재미있었다. 솥걸기의 천재인 공순은 단 한 번도 솥단지를 떨어트리지 않고 공부 일등인 현화의 기를 죽여 가며 우리를 부럽게 만들었다. 공순은 돌멩이 두 개로도 솥걸기를 하는 유일한 아이였다. 한 까불, 두 까불, 세 까불, 네 까불도 모두 통과하는 공순을 보면 마치 신(神)의 손처럼 여겨져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고무줄치기·해바라기살이·땅따먹기·공놀이, 심지어 자치기까지, 놀이란 놀이는 모두 잘해 종류를 넘나들며 한계가 없었다. 그 중 오재미치기(지금의 주머니놀이)가 있었는데, 오재미(콩주머니 또는 모래주머니) 세 개를 한 손으로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리기를 마치 마술사가 공중에서 접시돌리기하듯 공순은 쉽게 해냈다. 그런 공순 기죽고 애타는 사연이 하나 있었다. 남학생들이 예쁘장한 공순을 끊임없이 ‘공달’이라고 놀려댄다. 이름의 유래인즉 윤달에 태어났다 하여 공순이 된 것인데, 그런 공순을 공장공순이·달님이·공달이라고 짓궂은 남자 아이들이 놀리고 놀렸다. 그런데 그날 공순의 또 다른 별명거리가 생긴 일이 벌어졌다. 우리가 놀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봉규·석기·재석이랑 말타기놀이를 함께 한 것이 화근이 됐다. 공순은 집안 형편이 여의치 못해 줄곧 언니들의 헌 옷을 기워서 물려 입곤 하였는데, 문제는 그날따라 언니들의 빨간 생리 팬티를 입고 온 공순이 석기의 말 등에 올라탈 때 짓궂기로 유명한 봉규가 살짝 공순의 치마 속을 훔쳐본 것이 탈이었다. 그 다음날부터 남학생들은 떼를 지어 “얼래리 꼴래리~, 얼래리 꼴래리~, 빨간 빤쓰~, 빨간 빤쓰~!”하며 합창하듯 단체로 놀리고 다니는 것이었다. 학교가 온통 “빨간 빤스” 소리로 시끄러워지자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지는 바람에 우리는 단체 토끼뜀으로 운동장을 두 바퀴나 도는 벌까지 받았다. 한 성격 하는 공순은 매일 한 아이씩 돌아가며 붙잡아 혼찌검을 냈지만, 소문은 쉽게 재워지지가 않았다. 하루는 소문의 원조인 봉규가 공순을 보고 도망가다 그만 논 옆 개골창에 빠져버렸다. 공순은 기회는 이때라는 듯 책보를 내게 휙 내던지고 고무신을 벗어 양손에 한 짝씩 쥐고는 번개처럼 달려가 개골창에 빠진 봉규의 가슴팍에 올라타 깔고 앉았다. “너, 이눔자석! 한 번만 빨강 빤쓰라고 더 놀려봐! 이 바지 벳겨벌팅게! 나 검정 빤쓰 입었어. 어데 니 눈에 이게 빨강 빤스로 보이냐?” 급기야 치마를 훌떡 올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 웃음보가 터지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 남학생들은 유달리 여학생들의 속옷이나 나올 듯 말 듯한 가슴 봉오리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 시절의 공순은 지금도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맥주라도 한 잔 들어가면 반드시 봉규를 불러 “봉규야~! 지금도 내 팬티 색 궁금하냐?” 하며 너스레를 떨 때는 그 시절의 공순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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