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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읽는 동화]은혜를 갚은 거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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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15호 편집팀⁄ 2009.04.27 14:10:39

이 이야기는 6.25 전쟁이 끝나고 휴전된 지 얼마 안 있어 일어난 부산 대화재 때의 실화입니다. 때는 1959년 11월 27일 초저녁이었습니다. 아침부터 항구를 휩쓸던 바람은 어두울 무렵에도 점점 거칠어 올 뿐, 조금도 쉬지를 않고 불고 있었습니다. “원, 무슨 바람이 그렇게 심한지, 사람이 정신을 못 차리겠어. 그러니 먼지는 여간 나야지. 철수야, 물 좀 떠 오너라. 세수 좀 하게.” 아버지는 종일 밖에서 일을 보다 들어오셔서, 이제야 한숨 돌리는 때였습니다. 이때 문밖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아, 불, 불, 불이다!” “불이야! 불야!” “아니, 저게 무슨 소리냐?” “아버지, 불이 났나 봐요. 밖에서들 야단법석이 났는데요.” “무엇! 불이 났어?” 아버지와 철수는 허둥지둥 문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앵…앵…오오옹, 앵…앵…오오옹! 이편에서도 소방차 달리는 소리가 납니다. 저편에서도 소방차 달리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펑, 펑, 후두둑, 후다다닥…! “아니, 저게 어디서 시작한 불이길래 저렇게 타나!” “이거 큰일 났소. 오늘 부는 바람이 이만저만해야지!” 사방에 자욱한 연기 속에 사람들은 서로 얼굴도 똑바로 알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어느덧 불길은 하늘을 찌르듯 시뻘건 꼬리를 흔들면서 바람 몰리는 대로 불똥 튀는 대로 이리저리 흩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고, 이걸 어쩌노, 세간을 하나도 못 꺼냈으니…아이고, 아이고오…!” 사람들은 저마다 살려고 허둥지둥 야단이 났습니다. 이불을 지고 뛰는 사람, 궤짝을 걸머메고 도망치는 사람, 아이들을 둘러업고, 혹은 두 손에 이끌고 달리는 사람들. 이리하여 불붙은 이 거리는 지옥과 같이 들끓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갈팡지팡하는 이 거리에는, 마침 때를 만난 듯이 도둑이 나타났습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난데없는 도둑떼들은 닥치는 대로 남의 물건을 들고서 달아나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시내에 있는 경찰관들이 모두 출동하고 헌병들도 출동하여 거리에 서서 도둑을 지켰으나, 이런 도둑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바람의 속도는 갈수록 거세졌으며, 함부로 뻗치는 불길은 아무리 물을 끼얹어도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산역이 불 속에 파묻히고, 다시 길 건너 부산일보사가 불꽃으로 화해버렸습니다. 보기에도 어마어마하고 무섭습니다. 창고에 쌓여 있는 지물이 활활 타기 시작합니다. 불이 붙은 종이는 바람이 치닿는 대로 이웃으로 이웃으로 훨훨 불덩이가 되어 옮겨져 갑니다. 이리하여 계단 쪽도 빨간 불바다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때였습니다. “얘, 어서들 이리 와! 빨리빨리 뛰어오란 말야!” “네, 네, 다들 모였습니다.” 어디서 몰려 왔는지, 거지들이 4,50명이나 떼를 지어 이리로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웬일인지 어느 조그만 음식점 앞에 서서 불이 붙어 오는 것을 지키는 듯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허둥지둥하면서도, 수많은 이 거지 떼를 바라보면서 속으로 은근히 걱정을 하였습니다. “저놈들이 또 무슨 흉한 짓을 하려고 저렇게 모여들었나?” “참 이상하이, 저게 모두 도둑질을 할 모양 아니야?” “글쎄, 꼭 그럴 것만 같으이!” 사람들마다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거지들은 그런 도둑들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이 조그만 음식점 하나를 무서운 불난리 속에서 구해 내려고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역전으로부터 불어오는 불길을 잠시 보고 있던 거지 떼들은 무엇이라 수군거리더니, 그 중에 한사람이 썩 나서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소용이 없소. 우리들이 은혜 갚을 때는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저 편으로 한 줄로 쭉 늘어서시오.” 그리고 다시 몇 사람을 불러서 이 조그만 음식점의 물건들을 들어내라고 말했습니다. 한 개의 물건이 들려 나옵니다. 그 물건은 다음 사람의 손으로 이내 옮겨졌습니다. 쭉 늘어선 거지들은 다음에서 다음으로 릴레이식으로 날랐습니다. 맨 나중에는 어린 아이들이 이 물건들을 에워싸고 지키고 있게 하였습니다. “아주머니, 염려 마십시오! 물건을 저희들에게 맡기십시오!” 음식점 아주머니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자기도 함께 나서서 물건을 날랐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전에 자기 집에 들르던 거지들이기 때문에 그 얼굴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인님, 한 푼만 적선하십쇼.” “마나님, 한 술 줍쇼.” 이렇게 거지들이 와서 구걸을 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본체만체합니다. 얼굴을 찡그립니다. 혹은 욕설도 합니다. “이놈아! 매일 오면 어떻게 한단 말이야? 내일 오너라. 내일 오면...!” 날마다 찾아오는 거지들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고, 주인도 손님도 거지들을 쫓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음식점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산역전 40계단 밑에 있는 작은 음식점, 이 집만은 언제나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저, 저녁 때 오시우. 알겠지? 그때에 꼭 당신도 대접을 할 테니까!” 주인아주머니는 언제나 반가운 얼굴로 만나는 거지들에게 똑똑히 일러주는 것이었습니다. “네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아주머니는 매일같이 손님에게 팔고 난 다음, 나머지 음식을 깨끗이 그릇그릇에 따로 담아 두었다가, 손님들이 그치는 시간이 되면 다시 따뜻하게 끓여서 거지들을 대접하였던 것입니다. 이날 밤, 온 시가가 불바다로 변한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도망치기에도 바빴습니다. 그렇지만 거리의 거지들에게 고맙게 대접을 한 이 음식점만은 그 거지들의 도움으로 온 세간을 건져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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