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이후 한국 경제는 극심한 몸살에 시달려 오고 있다. 이번 경기침체에 대해 언론·정계·재계 등에서는 지난 1998년의 외환위기에 빗대 제2의 환란, 제2의 경제위기라며 긴장감을 한 껏 고조시켜 왔다. 이 같은 경제위기는 지금도 진행형인 상태. 그리고 전 세계에서 불어 오고 있는 경제한파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부는 재벌 편향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재계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면서 사기를 진작시키는가 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러시아·미국·유럽·동남아 순방 때 재계 총수들과 대동하여 직접 세일즈 외교에 나서기도 하고, 갖가지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 같은 정부와 재계, 국민들의 노력은 각종 거시 경제지표들이 전해주는 희망 섞인 메시지로 화답받고 있다. 이와 관련, 증권업계의 한 애널리스트는 “일선 기업의 입장에서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아직 받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거시지표 등에서는 긍정적인 신호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정부의 경제회복 노력의 일환으로 최근 회생해야 하는 기업들에 투입됐거나 투입계획을 잡고 있는 공적자금이 부실 책임이 있는 경영진 등과 정부와의 신경전 속에서 방향을 잃고 있는 지적이 있다. 세계적 금융위기라는 혹한의 환경을 겪은 한국의 기업들은 현재 겉보기와는 달리 내부적으로 상당히 곪아 있는 상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각 그룹의 채권은행을 통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주문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하지만 국민의 혈세로 조성한 공적자금 투입의 우선순위에 둔 기업은 GM대우와 쌍용자동차. 이들은 국내 완성차 업계라는 점, IMF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대표기업이었으나 지금은 외국 자본에 의해 매각됐다는 점. 지역경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점, 현재 정부에서 국민의 혈세를 투입해서라도 반드시 살려야 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 등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정부의 GM대우 회생계획 현재 정부는 GM대우에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라도 반드시 회생시킨다는 의지를 다졌다. 정치권도 4월 29일 치러진 재보선에서 GM대우 회생 공약이 쉽게 나왔다. 그런데 정부·청와대·정치권의 GM대우를 향한 적극적인 의지표명과 추진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실제로 GM대우를 직접 관리감독하고 있는 제너럴모터스의 래리 영 부사장 겸 최고재무책임자는 4월 27일 미국 본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국 정부가 먼저 GM대우에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는 한 우리가 투여할 자금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날 영 부사장은 “GM대우의 경영권을 포기할 수도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의에 “가능성이 있다”고 분명하게 답변했다.
하지만 정부는 GM대우는 엄연히 제너럴모터스가 최대주주로 있는 민간회사인 만큼 소유주가 먼저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답변이다. GM대우에 정부의 공적자금이 지원될 경우 창구 역할을 감당하게 될 산업은행은 “GM대우가 제너럴모터스의 해외 지사인만큼 본사 차원의 구조조정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며 GM 측의 엑션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GM 측의 반응은 느긋하기만 하다. GM은 “우리가 해외에 자금을 집행할 경우 미국 재무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우리가 투입할 수 있는 돈은 현재로서는 단 한 푼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GM의 이 같은 입장에 대해, 사실상 대우를 버린 것이라는 주장보다는 한국 정부의 공적자금 조기투입을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4월 29일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GM대우를 살리기 위해서는 공적자금 투입이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GM대우 스스로 그리고 책임주주들의 적극적인 자세가 우선돼야 한다”면서 “그런데 GM대우의 최대주주인 제너럴모터스사의 최근 자세는 올해 초에 ‘반드시 GM대우를 지켜내겠다’던 입장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너럴모터스사의 이 같은 태도변화와 관련, “대통령을 포함해 현 정권·정부가 GM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너무 자세히 표현한 것이 문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너럴모터스로서는 공적자금의 투입을 통한 회생이 사실상 정해진 마당에 회생을 위해 추가로 자본을 투입하기 보다는 한국 정부의 움직임을 지켜본 후 열매를 나누는 방법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산업은행 측은 GM대우를 살리기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더라도 GM의 경영권만 더욱 높여줄 뿐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경우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한국 경제와 인천의 지역경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GM대우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까지 회생시켜야 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국민의 혈세를 투입해서 회생한 GM대우의 소유권은 여전히 제너럴모터스에 있다”며 “자신들의 노력 없이 한국인만의 세금으로 자기 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GM도 자신의 계열사를 되살리기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에 적극적인 화답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GM대우, “정부·GM 싸움에 주저앉을라” 하지만 GM과 한국 정부 간에 “먼저 액션을 보이라”며 사실상 어떠한 조치도 받지 못하는 와중에 선물환 만기도래, 부채증가 등 GM대우의 상황은 점차 악화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GM대우에서 발행한 선물환 중 8억9000만 달러가 5월과 6월 사이에 만기 도래하게 된다. 선물환이란 대금지급 등의 이유로 외환거래를 해야 하는 시점에서 환차손이 예상될 경우 앞으로 일어날 외환 거래를 현재의 환율로 미리 함으로써 환율 리스크를 헷지하는 거래행위다. GM대우는 지난해 결제대금 일부를 선물환 증권으로 처리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차입금 유입의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내달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선물환에 대해 GM대우는 전혀 지급능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만기시 지급을 요구받은 선물환에 대해 결제를 하지 못하게 되면, 현행법에 의거해 부도와 파산 절차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국내 주채권은행이자 GM에 이어 GM대우의 2대주주인 산업은행과 GM대우 측의 노력에 힘입어 만기가 도래한 선물환 8억9000만 달러 중 4억5000만 달러에 대해 3개월 연장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기간 안에 GM과 한국 정부 간 합의를 통해 공적자금 및 신규 회생자금이 투입되지 않을 경우, GM대우의 회생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입장 이와 관련, 산업은행은 “GM이 자사의 회생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GM대우에 추가자금 투입이 어렵다면 경영권을 우리가 인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적절한 가격으로 협상이 타결된다면 GM도 자사 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고 우리도 GM대우를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양쪽이 만족할 수 있는 좋은 방안 중 하나라고 여겨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GM대우와 관련, 정부·청와대·산업은행의 이 같은 입장 표명에 대해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GM과의 협상력을 오히려 떨어뜨리고 있다며 보다 느긋하고 안정적인 움직임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청와대의 이 같은 성급함은 시기가 조금씩 늦어질수록 GM대우의 회생 가능성이 그만큼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4월 2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산업은행이 2008 회계연도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GM대우의 재무구조를 평가한 결과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산업은행의 이번 재무구조 평가는 금융감독원을 중심으로 은행권이 자신의 주채무계열 기업들에 대한 전반적인 재무구조 평가 과정에서 행해진 것이다. 이번 재무구조 평가에서 GM대우를 포함해 13개 그룹이 불합격 판정을 받아 고강도 구조조정을 벌여야 한다. 이 때문에 재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GM대우의 회생을 위해서는 외부 자본 유입이 필수적이다. GM대우의 도산을 염두에 두지 않는 한 GM 및 정부 간 기싸움 할 시간도 아까울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쌍용자동차 공적자금 투입 다음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회생 노력을 언급한 곳은 쌍용자동차. 쌍용자동차는 이번 금융위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몇 안 되는 기업들 중 한 곳이다. 일반적으로 한 기업의 경영난은 환율대란, 경쟁력 저하, 노사갈등, 정치권의 음모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쌍용자동차의 현재 어려움에는 이 같은 요소들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쌍용자동차의 경영난 및 자금압박은 2006년 동사를 인수한 상하이기차에 의해 자초된 셈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에 따르면, 중국의 상하이기차는 지난 2006년에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후 R&D센터의 중국 이전, 쌍용자동차의 전사적 경영관리 시스템 상하이기차 연동, 수년 간 개발한 완성차 설계기술을 상하이기차에 헐값 매각 등 기술유출에만 혈안이 됐을 뿐 약속했던 자본투입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이를 위해 상하이기차는 완성차 기술을 지키려는 초기 경영진을 모두 물갈이했다. 쌍용차의 완성차 기술을 모두 가져간 후 상하이기차에서 파견 나온 쌍용자동차의 중국인 이사진은 매각 가능 자산을 현금화하는 일에 주력했으며, 결국 지난해 파산신청을 통해 일방적으로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 이와 관련, 쌍용자동차 노조 및 투기자본감시센터·경제정의실천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쌍용자동차는 살려야 하지만 상하이기차의 경영권이 회수되지 않는 한 불가능 한 일”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와 관련, 쌍용자동차 노조의 한 관계자는 “상하이기차를 대주주 경영진으로 그대로 둔 채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민의 세금을 상하이기차에게 들어 바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