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감사의 힘> 번역한 김용남 법무부 장관정책보좌관
“번역서 아닌 내 이야기 쓰고 싶어요”
지난해 1월 국내에서 출간된 <감사의 힘>은 미국의 대표적인 심층 뉴스 TV 프로그램 <인사이드 에디션>(Inside Edition)의 진행자로 유명한 데보라 노빌(Deborah Norville)의 자기계발서이다. 이 책은 삶을 살아가는 가장 큰 에너지가 ‘감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저자가 감사의 에너지를 통해 기적을 맞이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심리학적 근거를 제시해, 독자들로 하여금 사소한 생각의 변화로 일상에 얼마나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특이할 만한 점은 이 책의 번역자가 현직 검사라는데 있다. 전문 번역가에서부터 아나운서·연예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번역에 뛰어들고 있지만, 현직 검사가 번역서를 낸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게다가 처음 시도한 번역서가 15만 부나 되는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경이로울 정도이다.
정부 과천청사 법무부 사무실에서 김용남 검사를 이 만났다. 1평 남짓, 좁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그의 사무실이 현직 검사에 걸맞는 정확하고 날카로운 인상을 준다. 반면, 한쪽 벽면에 붙어 있는 세계지도와 회화 작품은 딱딱한 법률 업무로부터 돌파구를 찾으려는 김 검사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검사로서 번역서를 내기까지의 결심과, <감사의 힘>을 번역한 후의 에피소드를 들어본다.
번역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지인으로부터 번역을 해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는데, 읽어보니 책의 내용이 정말 좋았어요. 하지만, 막상 번역을 하면서 후회를 많이 했죠.
영어 원서를 번역하려면 영어 실력은 물론이고, 외국에서의 생활 경험도 필요할 텐데요. 외국에서 생활하신 경험이 있습니까?
사법시험 합격 후에 국가에서 공부하라고 영국에 보내준 1년이 전부입니다. 제 생각에는 번역은 실력도 중요하지만, ‘엉덩이와의 싸움’인 것 같아요. 번역은 통역과 달리, 오래 앉아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작업이죠. 아내가 외국에 오래 살다 와서, 모르는 건 물어봤구요.
번역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전문적으로 영어를 다루던 사람이 아니어서 많이 힘들었어요. 물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덕분에 문법적으로는 제법 탄탄했습니다만, <감사의 힘>과 같은 부류의 책은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쓰여 오히려 번역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미국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 말이죠. 단어보다 표현이 어려웠어요. 그럴 땐 집사람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첫 번역서가 15만 부나 팔렸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에도 ‘감사의 힘’이 작용했다고 보십니까?
지난해에 촛불사태가 없었다면, 아마 더 많이 팔렸겠죠? 하하. 다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태여서 <감사의 힘>이 바람을 덜 일으켰던 것 같아요.
번역서를 내신 후, 직장 내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오던가요?
번역서를 냈다고 소문을 내진 않았어요. 왜냐면 일은 안 하고 딴 짓 했다고 할까 봐서요. 하하하. 같이 근무하는 분 몇 분에게만 책을 선물했는데, 그분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습니다.
검사가 되신 계기가 궁금하군요.
법학과는 전공의 특성이 뚜렷한 과여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법학을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시 준비를 했고, 판사보다는 비교적 동적이면서 다이내믹한 면이 있을 것 같아 검사를 택하게 됐죠.
맡으신 사건 가운데,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을 소개해주십시오.
전라도 광주지방검찰청에서 근무할 당시 환경 전담이었는데, 그때 지리산 밀렵 단속, 오폐수 배출업체 단속, 산업폐기물 방치 등의 환경사범 단속을 열심히 했습니다. 제 자랑 같지만, 환경업무에 대해 국내 최초로 대통령표창을 받았었죠.
특별히 어려운 사건이 있었나요?
종교단체를 수사한 적이 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제일 무서운 것은 신념에 찬 사람들입니다. 검찰청 앞에도 봉고차를 세워 놓고 제가 몇 시에 출근하고, 몇 시 몇 분에 점심을 먹는지, 24시간 따라다니면서 감시하더군요. 신기한 점은 어떤 종교 단체든 사회 각계각층에 신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검사’ 하면, 드라마 <모래시계>의 주인공 검사처럼 악의 무리로부터 협박을 당해도 굴하지 않고, 위에서 어떠한 압력을 가해도 헤쳐 나가는 강한 이미지가 느껴집니다. 검사님도 상사로부터 압력을 받은 경험이 있었습니까?
그런 일은 옛날에 소위 ‘게이트’ 이름이 붙은 사건들에나 있던 매우 드문 일입니다. 그런 일도 주임검사가 중심을 잡고 무시하면 아무리 권력자라도 막을 방법이 없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극적으로 만든 이야기일 뿐, 그런 일은 만 건에 한 건도 안 될 겁니다. 그런 일이 많다면 우리나라 큰일 나겠죠? 허허.
법무부 안에서 통하는 별명이 궁금합니다.
법무부 안에서는 바빠서 확인해보지 못했는데, 제가 영국 유학을 다녀와서인지 일선 청에서 근무할 때는 후배들이 ‘영국신사’라고 하더군요.
법조인 출신의 정치인 등 각계각층에 법조인 출신 파워가 대단한데, 다른 일을 하실 계획은 없으신지요.
평생 검사를 할 순 없겠죠. 하지만, 지금은 현업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나중 일은 그때 상황을 봐야 알 것 같아요. 하지만 너무 외부의 변화에 뒤떨어지면 안 되니까, 신문·책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일을 좋아하는데, 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다른 업종에 눈을 돌릴 기회도 생기지 않을까요? 허허.
말씀을 듣다 보니, 참 활동적인 분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네. 활동적인 편입니다. 최근에는 취미로 등산을 다니기 시작했구요. 바빠서 자주 다니진 못 하지만, 여행도 아주 좋아합니다. 5대양 6대주 대륙은 한 번씩 다 밟아본 것 같군요. 영국 유학생활 동안에는 유럽 여행을 자주 다녔습니다. 영국에는 저가 항공사가 매우 발달돼 있어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여행을 하곤 했습니다.
현재 번역 혹은 집필하고 있는 책이 있다면요?
당장은 없지만, 나중에 제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더 경험이 쌓이고 연륜이 묻어나올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겠지만요.
자서전을 쓰려면, 특별한 성장과정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요즘 미국의 오바마가 쓴 자서전을 읽고 있는데, 정말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더군요. 사실 저는 오바마처럼 극적인 삶은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아주 말을 잘 듣는 모범생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누구나 그렇듯이, 청소년기에는 기존 세대 등에 대해 불만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누구나 성장하면서 사고(思考)도 함께 형성되는데, 그런 이야기를 담고 싶은 거죠.
빨간 넥타이와 하얀 와이셔츠가 도저히 권위적인 검사라고는 생각할 수 없게끔 김용남 검사는 인터뷰 내내 호탕한 웃음을 보이며 상대방의 긴장까지도 풀어준다. 5살 난 딸과 4살 난 아들을 둔 아빠인 김 검사는 자녀 교육도 특별할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벌써부터 말을 안 들어요. 어쩌죠?”라면서 눈을 찡그려 보였다. 그 모습에 폭소가 절로 난다.
1970년 수원 출생
1988~1993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사법학과 졸업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 합격
2001~2002년 영국 University of Cambridge
객원연구원(Visiting Scholar)
1998~2000년 서울지방검찰청(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2000~2001년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 검사
2001~2004년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2004~2007년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검사
2007~2008년 수원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2008~2009년 1월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2009년 1월~현재 법무부 장관정책보좌관
이우인 jarrjee@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