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30일 오후 2시. 이날 이 시각은 한국 헌정사에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검은 돈’을 챙겼다는 혐의로 검찰에 소환되어 직접 조사를 받기 시작한 불행한 기록을 남기게 된 날짜와 시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로 시작된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의 검찰조사가 노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수사로까지 비화, 급기야는 노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이번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조사는 1995년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이어 14년 만에 세 번째로 기록되게 된 것이다.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출발지인 경남 김해 봉화마을에서 대검 청사가 있는 서울 서초동까지 400km의 길을 경찰기동대와 청와대 경호팀의 경호 속에 청와대 의전 버스를 타고 도착한 노 전 대통령과 변호인 등 일행은 검찰의 직접조사에 임해, 서로가 명운을 걸고 진실공방에 돌입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혐의가 ‘포괄적 뇌물죄’에 해당한다고 보는 반면,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진술 전체를 거짓으로 몰고 가면서, ‘포괄적 방어’에 심혈을 쏟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검찰은 그 동안 숨겨 놓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는 등 화력을 집중적으로 쏟아 부을 기세인 반면에, 방어자인 노 전 대통령도 한 방의 ‘카운트 펀치’를 노리고 있는 눈치다. 따라서 이번 노 전 대통령 소환조사의 핵심 쟁점들을 간추려보면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다. 첫째로, 검찰은 태광실업 박 회장이 2007년 6월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노 전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에게 건넨 100만 달러를 ‘뇌물’로 규정하고 노 전 대통령이 알았는지를 추궁할 태세이다. 검찰은 돈이 건네진 2007년 6월 말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의 휴대전화 통화기록 등을 정황증거로 들이밀 계획이라는 귀띔이다. 하지만 토론의 달인인 노 전 대통령은 “후원자였던 박 회장에 대한 안부 전화”라고 주장하면서 빠져 나갈 공산이 짙다는 관측들이다. 또한, 박 회장이 지난 2008년 2월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철호 씨에게 건넨 500만 달러도 공방이 예상되고 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재임기간 중 봐준 편의와 특혜의 대가로 박 회장이 500만 달러를 줬다고 보고 있다. 그 뒤 돈은 타나도 인베스트먼트사 - 엘리쉬&파트너트사 등으로 이어진 복잡한 돈세탁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아들 노건호 씨에게 전달됐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호의적 투자’라고 항변하지만, 돈의 성격상 ‘뇌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 검찰의 결론적 판단이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청와대 특수활동비 12억5000만 원 횡령도 노 전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다고 여기고 있다. 검찰은 구속 중인 정 전 비서관이 처음에는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에 쓰려고 혼자 했던 일”이라고 말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횡령액이 5억 원을 넘으면 종신형을 살 우려가 높다는 최근의 형량기준 설정 움직임에 자극되어서인지 진술상의 변화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노 전 대통령은 ‘모르쇠’ 전략으로 방어 기세를 더욱 강화할 눈치라는 것이다. 또 검찰은 박 회장이 2006년 8월에 건넨 3억 원도 노 전 대통령 소유로 판단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아내가 받아 빚을 갚았다”고 해명했지만, 그 3억 원은 지금까지 뭉칫돈으로 남아 있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아울러 검찰은 정대근 전 농협회장이 전달한 3만 달러와 박 회장의 1억 원대 스위스제 명품시계 등 회갑선물도 뇌물로 보고 집중 추궁할 태세를 강화해 나가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대한 문제는 이번 검찰과의 법정 다툼 이전에 노 전 대통령은 이미 ‘패가망신’해버린 전직 대통령이라는 오욕의 기록을 지우기 힘들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