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베의 그림에는 꽃을 든 여자와 남자가 많이 등장한다. 그에게 꽃은 인연의 끈을 맺고픈 마음일 수도 있고, 혹은 욕구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래서 케베의 꽃은 하나의 의미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프리카라는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기에 누군가가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꽃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지면 행복할 수 있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였다. 케베는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그린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형태와 주제가 단순하다. 꽃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춤을 추고, 키스를 한다. 순수한 아름다움이 보인다. 꽃을 매개로 하여 우리들의 삶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케베의 붓은 빠르고 거침이 없다. 무엇인가에 빨려드는 것처럼 원색의 캔버스 위를 미끄러지듯 붓질을 한다. 난을 치듯이 선을 그린다. 일상의 모습이 드러난다. 여러 모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망이 보인다. 꽃의 향기가 난다.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야 할 인간의 존재의미를 꽃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케베 그림 읽기 케베는 일상에서 인간의 희망과 행복을 이야기한다. 케베는 반복되는 시장의 일상을 통해 군중 속의 고독이나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그려낸다. 그러면서 순수함과 성실함을 담은 얼굴이나 대화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모습에서 삶에의 시선을 희망과 행복으로 돌린다. 인물들의 긴 목은 아프리카의 복잡한 심리를 담고 있다. 긴 목은 신 혹은 하늘에 가까워지고 싶은 종교적 의미를 이탈하고 있다. 개인의 존엄성 내지는 개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남의 주목 끌기를 좋아하는 아프리카 사람들 내지는 케베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케베는 색의 조화에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케베는 검은색과 흰색을 이용하여 색조를 변화시키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스타일은 마치 고갱이나 마티스가 색을 통해 자신의 그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아주 흡사하다.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의 문제도 결국 색조의 차이로 본다는 점에서 케베는 색의 다양한 결합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케베는 악에 대해서도 열린 시각을 지향한다. 케베는 선과 악에 대하여 닫힌 시각을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의 전통의식을 비판한다. 악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악을 비난하고, 선을 절대화시키기 위하여 악을 부정하거나 도구화하는 것을 경계한다. 사회적 희생양이 만들어지는 것도 결국 선악의 소통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 케베의 지론이다. 케베의 세계관은 인간성을 지향한다. 케베는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서로를 적대시하는 것을 반대한다. 절대적 가치를 강조하기보다 상대적 가치를 탐색하는데서 인간의 존재의미가 더욱 빛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전체를 중시하면서도 개체의 의미를 역설하고, 인간을 강조하면서도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케베는 아프리카의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