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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오페라의 유령’을 관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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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25호 편집팀⁄ 2009.07.07 15:05:33

이종구(이종구심장내과 원장·예술의전당 후원회장) 필자는 2006년 6월 10일 예술의전당에서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ioyd Webber)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의 내한 첫 공연을 보는 행운을 가졌다. 필자는 2004년에 제작된 영화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원작 뮤지컬을 볼 기회를 기대하고 있던 차에, 이 공연을 보고 역시 생동감 있는 무대 공연이 영화보다 더 감동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불후의 명박 ‘오페라의 유령’ 이 뮤지컬은 1910년에 출판된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의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유령의 이름은 에릭이다. 그는 흉측한 얼굴을 가지고 태어나 일생 동안 가면을 쓰고 살게 되어, 이웃들에게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집시들과 함께 유럽을 떠돌아다니면서 ‘살아 있는 송장’으로 전시되기도 하고, 페르시아의 왕(샤) 밑에서 고문자 노릇을 하며 올가미(Pujab Lasso)를 발명하여 이것을 항상 공포와 테러의 방법으로 가지고 다닌다. 건축과 음악의 천재인 그는 지하 호수 위에 건립된 파리 오페라 극장의 지하 수로를 만드는 계약을 따내고 그곳을 자기의 은신처로 만들어, 여기에 살면서 공포와 테러로 오페라 극장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 뮤지컬은 1986년에 런던에서 초연되었고, 1988년에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공연을 계속하고 있으며, 캐츠와 더불어 역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이루고 있다. 이 뮤지컬은 20개 이상의 국가에서 공연되었으며, 제작도 16개 이상이라고 한다. 관람객은 무려 1억 명이나 된다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6월 10일 본 공연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필자가 외국과 국내에서 본 많은 뮤지컬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흔히 순회공연사의 작품은 뉴욕이나 런던의 원작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으나, 이번 제작은 예외이다. 백억이나 되는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여 만든 <오페라의 유령>의 화려하고 눈부신 무대는 뮤지컬 전용극장보다 훨씬 큰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의 무대를 꽉 채우고도 남았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크리스틴의 노래는 물론 코러스와 무용은 관객들의 흥분된 가슴을 잠시도 가라앉힐 수 없게 했다. 특히 이번 공연의 유령 역을 맡은 브래드 리틀(Brad Little)은 뛰어난 노래와 연기력으로 관중들을 사로잡았다. 리틀은 브로드웨이에서 라울(크리스틴의 약혼자) 역을 맡았으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자칼과 하이드> <에비타> <미녀와 야수> 등 수많은 뮤지컬에 출연하였으며, 수많은 <오페라의 유령>의 투어에서 유령의 역을 맡았던 베테랑이다. 그런데 리틀은 유령처럼 난독증(독서장애)으로 인생의 고난과 좌절감을 충분히 체험하여, 유령의 역을 맡기에 준비된 사람으로 생각된다. 리틀은 미국 캘리포니아 태생이며, 부친은 연극 교수 겸 연출가였다. 난독증 때문에 초등학생 때는 바보로 왕따를 당한 그는 자신도 저능아라고 믿으면서 성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팝 오페라의 스타로 탄생한 것이다. 그는 고음과 저음을 모두 다 잘 소화해내는데, 특히 분노가 폭발할 때 나오는 저음은 마치 지옥에서 솟아나오는 괴음과도 같았다. 유령이 짝사랑하는 크리스틴의 역을 맡은 마니 라브는 젊은 배우인데, 아직까지 고정된 스타라기보다는 때때로 출연하는 보조적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 그는 아름다운 외모와 목소리 그리고 뛰어난 가창력으로 크리스틴 역을 잘 소화해냈다. 박애·사랑·자기희생의 상징 장발장 내가 본 많은 뮤지컬 중에서 최고의 감동을 준 작품으로는 웨스트엔드에서 본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과 <오페라의 유령>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뮤지컬의 내용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필자가 특별히 <레 미제라블>에 매력을 느낀 계기는 필자가 소년 시절에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책 <레 미제라블>을 읽고 그 책의 주인공 장 발장(Jean Valjean)이 그 시절 나의 우상이되었기 때문이다(나는 아직도 그처럼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장 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을 감방에서 썩은 후, 가석방을 어겼다는 이유로 경찰(자베르)로부터 끝없는 추적을 당하며 이 사회에서 버림받은 인생이 된다. 그러나 그는 은식기를 훔쳤다가 한 주교의 보호를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으로 변신한다. 그는 길가에서 죽어 가는 한 일꾼을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한 뒤, 그 일꾼이 경찰 자베르로부터 죄인 장 발장으로 오인받아 감옥에 갈 신세가 되자 자진해서 자기가 죄수임을 밝히고 또다시 도주자의 신세가 된다. 그러던 중 그는 그처럼 잔인하게 자기를 괴롭히는 자베르를 제거할 기회를 갖지만, 그를 풀어주고 또다시 도망 다니는 죄수가 된다. 후일 공장주와 시장이 된 장 발장은 이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한 창녀를 구제하고 그의 딸 코세트를 돌보아주다가 드디어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코세트에게 젊은 학생 애인이 생기자, 또다시 그의 생명을 구해주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자기 인생에서 유일한 사랑을 단념한 채 자기의 모든 재산을 넘겨준다. 장 발장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인간적 가치 즉 박애·사랑·자기희생을 상징하는 휴머니스트(인도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오페라의 유령>의 주인공 에릭도 단지 얼굴이 흉측하다는 이유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그는 이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 온갖 횡포를 부리지만, 유일한 사랑 크리스틴의 행복을 위해 자기의 사랑을 포기하고는 크리스틴을 라울에게 보내고 암흑의 세계로 사라진다. 즉, 가장 추하고 악한 자도 기회만 주어지면 선의 길을 택할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 뮤지컬이나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과 연기 그리고 무대가 제공하는 시각적인 효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작품이 제시하는 윤리적 교훈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예술은 우리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만족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간성과 감성을 한 차원 높이는데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입장료가 좀 비싸기는 했지만, 뉴욕이나 런던에 가지 않고 최고의 뮤지컬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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