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근 연세대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심장내과 임상연구 조교수 술…신의 물방울? 양날의 검! 술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는가? 한국 사회에서 술이 갖는 위력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거래·우정·사랑·사업…. 도대체 술이라는 ‘신의 물방울’이 없었다면, 삶이 얼마나 팍팍했을까? 하물며 건강에 좋기까지 하다면야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최근 술에 대한 의학적 관점이 점차 호의적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심혈관 질환에 있어, 적당량의 술은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적절한 양의 술을 규칙적으로 먹는 습관이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고 이로 인한 사망률을 낮춘다는 조사 결과가 여러 연구들에서 반복적으로 밝혀진 바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술은 심장에 독성을 가지는 대표적인 위험인자라는 사실이다. 즉, 술을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한 번에 몰아서 먹는 나쁜 습관은 무엇보다도 심장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술은 심장에게는 ‘양날의 검’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칼날은 마치 면도날처럼 날카로워서, 잘 사용하면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으나, 잘못 사용할 때에는 매우 깊숙하게 베일 수도 있다. 프랑스인들에게 나타나는 ‘프렌치 패러독스’ 의학적으로 술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30년 전부터이다. 1980년대 프랑스의 역학자들은 프랑스인들의 심혈관 질환을 연구하면서 독특한 현상을 발견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매우 기름진 식사를 하는데, 그 중에서도 심장 건강에 나쁜 것으로 알려진 동물성 지방과 포화지방산의 섭취량이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사람들의 심혈관 질환 유병률과 그로 인한 사망률은 매우 낮다. 이는 매우 역설적인 현상이었으므로, 소위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라고 불리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왜 일어나는가? 제시된 가설은 바로 프랑스인들이 식사 때마다 한두 잔씩 마시는 포도주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세월이 지나고 의학적 연구들이 거듭되면서, 술-그 중에서도 술의 주성분인 에탄올(ethanol) 자체 때문에 프렌치 패러독스 현상이 나타났음이 인정되고 있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로는 남자의 경우 하루 2잔, 여자의 경우 하루 1잔 정도의 술을 규칙적으로 마시는 것은 심혈관 질환의 유병률과 사망률을 분명히 감소시키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술의 종류에 관계 없이 나타난다. 술은 왜 심장 건강에 좋은가 심혈관 질환에 술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좋은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째, 혈액 내의 좋은 콜레스테롤을 올려준다. 이런 효과는 먹는 술의 양에 비례하지만, 술을 지나치게 많이 먹는다고 하여 좋은 콜레스테롤이 계속 올라가진 않는다.
둘째, 혈소판의 과도한 응집을 막아서 병적인 혈전 형성을 억제한다. 이는 물론 제한된 연구 결과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 심혈관 질환의 위험도가 감소할 수 있다. 셋째, 염증 수치를 떨어뜨려준다. 심혈관 질환에서도 결국 우리 몸의 염증반응이 중대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술의 이러한 항염증반응 또한 심장 건강에 도움이 된다. 넷째, 인슐린 민감도를 올려주어 궁극적으로 혈당을 감소시킨다. 이는 특히 식사와 함께 한두 잔 정도를 마시는 이른바 ‘반주’일 때 가장 효과적이다. 위에 언급한 효과들은 술의 알코올 성분 자체의 효과에 기인한다고 생각되고, 따라서 술의 종류에 관계 없이 이러한 효과들을 기대할 수 있다. 좋은 음주 습관을 갖자 여러 의학적 연구들이 증명하다시피, 술은 심혈관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대한 점은, 결국 많은 양의 술은 심장뿐 아니라 우리 몸 전체의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경고이다. 따라서 하루 2잔 정도의 적절한 양의 반주는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남자의 경우 하루 4잔(소주 반 병 이상), 여자의 경우 하루 2잔 반을 넘으면 술의 해로움이 이로움보다 크다. 또한 술에 대한 연구는 주로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으므로, 이러한 연구 결과가 인종 간의 차이를 넘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술에 대한 연구가 대규모로 여러 번 수행되기는 하였으나, 그러한 연구들은 잘 통제된 무작위적 연구가 아니어서, 심장 질환의 치료에 술을 약으로 사용하는 근거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있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라도 그러한 연구 결과들이 과음이나 폭음을 정당화하는 이유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