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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선진국에서 인권후진국으로 전락할 것인가

국가인권위원장 사퇴…국제엠네스티 잇단 경고 “한국 인권 후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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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26호 박성훈⁄ 2009.07.14 15:33:36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시위대와 공안이 정면충돌한 것이다. 공안 측의 발포 및 폭력진압이 있었고, 이번 유혈사태로 하루 만에 156명이 사망하고 1080명이 부상당했다. 이에 대해 유엔인권위원회(UNHRC)의 내비 필라이 위원은 “만 24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숨진 사람 수라고 보기엔 너무 많다”며 “인간은 누구나 평화롭게 시위를 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티베트 독립운동 지역의 유혈진압, 이란의 반정부 시위 등과 관련한 소식을 보면, 아시아 지역의 전반적인 인권상황은 몇 년 전보다 더욱 악화되었다는 게 중론이다. 인권침해의 외형은 다양하다. 이를 대략 일반화하자면, 인권침해가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서 벌어지는 사례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제3세계의 나라에서는 군부 통치로 인한 민간인 불법 체포·구금·고문·살해 등이 여전히 자행된다는 사실을 외신을 통해 종종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수십 년 전만 해도 개발시대를 거치면서 군부통치하에 갖가지 인권침해를 겪어 오기도 했다. 그러다, 1980년 5월 광주의 민주항쟁과 87년 6월항쟁 등을 거쳐 우리나라는 마침내 군부통치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이뤄냈다. 이에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은 한국의 현대사를 민주화의 모델이자 인권 교과서로 삼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01년에 세워진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 후진국은 물론 인권 선진국으로 일컬어지는 나라에게도 새로운 모델로 반향을 일으켰다. 이 같은 ‘아시아의 인권 선진국’이라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엠네스티, 표현·집회의 자유 침해 등 인권침해 지적 7월 1일 세계 최대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가 영국 런던의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에서 개최한 발표회에서는 한국의 인권후퇴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전개됐다. 앰네스티 동아시아 지역의 노마 강 무이코 조사관은 “최근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침해받는 등 인권 상황이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을 가했다. 구체적 사례로 공안 당국이 지난해 촛불시위 진압 명령에 반발해 부대 복귀를 거부한 혐의로 이길준 의경을 기소하고,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 씨를 기소한 점 등이 예시됐다. 그는 또 “한국에서 최근 언론의 자유가 침해받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앰네스티는 지난 4월 YTN 등 언론사에서 언론인 해고에 따른 인권침해 여부 등의 현장 조사를 벌인 바 있다. 그 결과, 대통령 측근 인사의 YTN 사장 임명 후 격화된 언론 노사갈등으로 언론인 4명이 경찰에 체포되고, 광우병 문제를 보도한 MBC PD수첩 제작진 6명이 검찰에 기소된 점을 언론인 인권침해 근거로 들었다. 국제앰네스티는 한 달 전인 6월 2일에도 ‘2009 국제앰네스티 연례보고서’를 통해 “지난 1년 간 한국의 인권상황은 실질적으로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지난해 1월부터 1년 동안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경찰의 과도한 무력사용, 이주자의 권리침해, 표현·집회·결사의 자유 침해 등을 지적했다. 앰네스티는 한국 경찰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반대하는 촛불시위에서 시위자들을 구타하고, 근거리에서 물대포를 발사하고, 구금 중인 시위자들의 의료조치를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주노동자 22만여 명을 출국조치하고, 이들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한 사건이 늘어났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엠네스티는 또 한국방송공사(KBS)·한국방송광고공사·아리랑TV·스카이라이프·YTN 등의 수뇌가 현 정부 인사들로 교체된 데 대해 ‘표현·집회·결사의 자유’의 침해를 우려했다. 국가보안법도 인권침해 사례로 꼽혔다. 2008년 현재 최소 9명이 국가보안법의 모호한 조항들로 기소돼 구금 중이라는 것이다. 검찰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오세철 교수 등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이 범죄소명 부족을 이유로 두 번이나 기각된 사례가 제시됐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달 조사관을 파견해 3개월 간 한국의 인권상황을 조사할 예정이다. 통상 3주 정도 해 오던 조사기간이 대폭 연장된 것인데, 한국의 인권상황 후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미 국무부는 2월 25일 발표한 인권보고서에서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인권이 전반적으로 존중되고 있지만, 여성과 장애인·소수자들이 사회적 차별에 직면해 있으며, 강간·가정폭력·아동학대·인신매매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가보안법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행위를 한 것으로 정부가 판단한 사람들에 대한 체포와 구금·억류에 폭넓은 권한을 주고 있다”며 “국보법이 금지행위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조항이 있다”면서 “폐지나 개정을 계속 요구하는 비판론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문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우리나라 관련 내용은 예년과 같은 수준”이라며 “앞으로 법무부·여성부·노동부 등과 협의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오류가 있을 경우 미국에 시정조치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축소된 인권위, 결국 사퇴한 안경환 위원장 현 정부 들어 인권이 크게 하락했다는 비판은 정부가 국가인권위원회 축소를 추진하면서부터 제기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 기관의 인권정책과 일반 국민들의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적극적인 시정과 권고를 함으로써 인권의 지평을 넓혀 왔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지난해 이 정권이 출범하기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국가인권위를 대통령 산하기관으로 편입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한 바 있다. 이에 수많은 인권단체와 언론에서 인권침해 지적을 쏟아내 결국 무산됐다. 하지만, 정권 출범 이후 안경환 인권위원장은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단 한 차례도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정부와 소원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다가 정부는 인권위의 업무량에 비해 조직이 비대하다며 조직 축소를 추진했다. 3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인권위의 정원을 208명에서 164명으로 21.2% 줄인 ‘국가인권위원회와 그 소속기관 직제 전부개정령안’을 심의·의결한 것이다. 이 같은 정부의 조치에 안 위원장은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처사”라고 비판하면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등 강력히 반발했다. 하지만 결국 5본부 22팀 4소속기관 체제 정원 208명이었던 인권위 직제가 4월부터 164명 정원의 1관 2국 11과 3소속기관 체제로 축소됐다. 7월 8일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이 현 정부의 인권 무시를 비판하며 전격 사퇴하면서 현 정부에 대한 인권후퇴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은 10월 29일까지였던 임기를 불과 4개월 남겨두고 사퇴했다. 인권위 내부 문제로 임기 도중 사퇴한 전임 위원장의 후임으로 취임한 당시, 그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제게 주어진 3년의 법정임기를 채우겠다”며 “결코 중도하차하는 위원장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사퇴라는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 안 위원장은 이임식에서 “인권의 길에는 종착역이 없다” “정권을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말을 남기며 “우리들 가슴 깊은 곳에 높은 이상의 불씨를 간직하면서, 외롭지만 떳떳한 인권의 길을 의연하게 걸어가자”고 말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안경환 위원장의 사퇴는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압박의 결과”라며 “정권 코드에 맞는 인물이 국가인권위원장을 맡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인권위 축소, 인권위 기능 심각히 제한할 것” 우리나라의 인권 후퇴현상은 통계상으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08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집시법 위반죄로 기소된 사람은 470명으로 참여정부 시기인 2007년의 318명에 비해 47.8%가 증가했다.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기소된 사람도 6671명으로, 2007년에 비해 23.7% 늘었다. 서울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올 4월까지 집회불허는 164건으로 지난해 총 불허 건수인 149건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한길리서치와 내일신문이 지난 6월 8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3.1%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했다’고 답했다. 최근 방한한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 마리아 고메스 부위원장은 “한국 정부 측에 인권위 축소에 대해 따지겠다”고 밝혔다. 아시아 지역 28개 인권단체는 지난 3월 제니퍼 린치 ICC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 정부의 인권위 축소 조치는 독립적이고 효율적인 국가 인권기구 역할을 해 온 인권위의 기능을 심각하게 제한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시아 인권 선도국을 자부했던 한국이 이제는 버마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지원과 동정을 받는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국내 인권 상황이 악화되면서, 확실시되던 ICC 회장국 선출도 불투명해졌다. 8월 3일부터 요르단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인권기구 포럼(APF)’ 연례총회에서 ICC 회장과 회장국을 선출하게 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회장국을 맡기로 돼 있어 한국 인권위원장의 회장 선출이 기정사실화돼 있었다. ICC 회장국 선출도 불투명 그러나 인권위 축소와 안 위원장의 전격 사퇴라는 ‘변수’가 발생하면서 오리무중으로 빠지고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국제적 역량이 없는 인사가 인권위원장으로 올 경우 영어권 국가에서 회장국을 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현재로는 ICC 회장국 수임 여부를 전망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은 이임사에서 이러한 말을 남겼다 “강자와 다수자에게 생길지 모르는 약간의 불편을 무릅쓰고라도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민주국가·인권국가·법치국가의 본령입니다. 힘없는 자의 분노를 위무하고, 가난한 사람의 한숨과 눈물을 담아내는 일에 인색한 정부는 올바른 정부가 아닙니다. 흔히 소수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다수자의 인권이 더욱 중요하다고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은 인권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부족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은 다수결이 아닙니다. 사회의 모든 기재가 다수자와 강자의 관점과 이해를 옹호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인간 세상의 자연적 속성이기에, 인권의 본질은 강자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보호함으로써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괴롭히는 이 분노와 아픔은 보다 밝은 내일을 위한 작은 시련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다지자”는 그의 일성은 현재의 인권상황에 대한 개탄을 머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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