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순 자유기고가 sys5602@hotmail.com 필자는 인왕산이 권력의 산물이니 아픔의 역사를 지니고 있느니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저마다 순교자이고 애국자인 척하는 이중인격자들로부터 골치 아픈 말은 많이 들었지만, 도심 한가운데 이처럼 기괴하면서도 멋있는 전망대를 가지고 있는 인왕산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정상에 오르면서 그 참맛을 알 수 있었다.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볼 때 성곽이 이어져 있는 모습과 기괴한 바위들, 서울의 중심부 등을 보면 신기할 정도이다. 처음 인왕산을 갈 때는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까? 다양한 코스가 있어 입맛대로 골라 갈 수는 있지만, 필자는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코스를 추천하려 한다. 독립문 쪽으로 가야 재미있고 기괴스러운 바위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시고…. 힘들지 않아 가족이나 연인 코스, 간단한 단체 코스로도 좋다. 출발~! ‘인왕산’ 이름에 얽힌 변천사 이성계가 경복궁을 주궁으로 정할 당시에는 인왕산을 서봉 또는 서산이라고 불렀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태조 이성계가 1395년 2월 ‘서봉(西峰)’ 아래의 사직단 공사 현장을 방문했으며, 정종 1년(1399년 4월)에 “큰비가 내려 서산(西山)에서 큰 돌이 무너져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다가 세종대왕 때 인왕산(仁王山)이라 개명하게 되는데, ‘인왕(仁王)’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의 다른 이름이다. 게다가 궁궐에서 가장 가까운 서산 기슭에다 절을 짓고 인왕사라 하였으며, 산 이름도 이때 인왕산이라 개칭하였다. 조선왕조를 불법을 통해 수호하려는 뜻에서 나왔던 것으로 보인다. 숭유억불(崇儒抑佛)의 기치를 내걸고 조선을 열었지만, 서민들에게는 형식에 치우친 유교보다는 위아래가 없는 불심이 강했는데, 서산이 인왕산으로 바뀌는 배경을 보면 왕실에서도 불교로 다시 회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중종 32년에 명나라 사신 공용경이 조선을 방문하자, 경회루에서 잔치를 크게 베푼 다음 인왕산의 이름을 하나 잘 지어 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중종의 청탁을 받은 공용경은 인왕산의 이름을 필운산(弼雲山)으로 개칭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필(弼)은 돕는다는 뜻이니, 조선 왕실을 돕는 좋은 구름이 피어나는 산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통치하면서 창씨개명뿐만 아니라 국토의 지명도 여러 군데 바꾸어버리려고 했다. 인왕산의 한자도 임금 왕(王)에서 왕성할 왕(旺)으로 바꾸어놓았는데, 일본이 조선의 왕을 누른다는 뜻보다는 분리해서 읽으면 ‘일왕(日王)’이라고 읽힌다. 일본 강점(强占)도 실상은 당파싸움에 정신없던 정치인들 때문이었는데, 지금도 입으로만 국민을 외치면서 국민을 무시하는 작태는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지 않은가? 인왕산에 서려 있는 일화와 사건 인왕산(仁王山, 338m)은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특이하고 기괴한 암석과 웅대한 암벽을 자랑한다. 조선 초에 도성(都城)을 세울 때, 북악산을 주산(主山), 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을 좌청룡(左靑龍), 인왕산을 우백호(右白虎)로 삼았다. 그 중에서도 인왕산은 경치가 아름다워 이를 배경으로 한 산수화가 많은데, 특히 정선(鄭)의 <인왕제색도>는 국보 216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왕산의 정상에 서면 청와대는 물론 서울 중심가가 한눈에 보이는데, 성곽이 쭉 이어져 서대문구의 홍제동과 종로구의 무악동·누상동·옥인동·부암동에 걸쳐 있고, 멀리 남산·북악산·북한산 등이 보인다. 정말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인왕산 하면 두 가지의 유명한 일화가 전해온다. 첫 번째는 호랑이인데, 조선시대 인왕산의 호랑이가 민가와 왕궁까지 출몰해 소란을 피우는 통에 조정에서 군대를 동원하여 호랑이를 잡을 정도였다. 인왕산 호랑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오는 모양이다 믿거나 말거나 호랑이가 나오는 전래 동화가 있다. 옛날 서울 장안에서는 인왕산에서 호랑이가 해만 저물면 내려와 사람을 해치는 바람에 조정에서는 골치가 아팠다. 그런데 어떤 고을의 군수가 호랑이를 쫓아내겠다며 인왕산으로 들어갔다. 군수가 인왕산 중간쯤에 올라, 반석 위에 누워 있는 늙은 중을 깨워 무슨 글을 쓴 종이를 보여주자, 그 중은 벌벌 떨었다. 군수는 “당장 네 새끼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지 않으면 몰살시켜버리겠다”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늙은 중은 커다란 호랑이로 변했다가 다시 사람으로 변신한 후 압록강으로 떠났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는 무장공비사건이다. 1968년에 북한의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인왕산 옆 산길로 질러 왔다. 그 사건 뒤로 출입이 통제되었다가 1993년에 해제되었으나, 산행 시간이 일출 전과 일몰 후에는 제한되어 있고,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 다음날에는 출입이 통제된다 인왕사와 국사당과 선바위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1-2번 출구 쪽으로 방향을 잡다보면 독립문역 안에서만 볼 수 있는 벽화가 있다. 요즘은 배우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서 배웠던 <기미 독립선언서> 내용이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야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하고, 차로써 자손만대에 고하야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 그때는 무조건 외워야 했는데, 요즘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1-2번 출구로 나오면 선바위길 이정표가 보이고, 높은 고갯길을 이리저리 오르다보면 세란병원 뒤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벌써부터 숨차다 숨차). 아~, 저기 종로구 무악동 산2-9의 인왕사 일주문이 보인다. 근데 인왕산과 인왕사라는 지명도에 비해 볼품이 없어보이는 것은 웬일일까 ? 유명한 절과는 달리, 산 위에 가정집이 있고 그 가정집 안에 대웅전을 세운 것처럼 아기자기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인왕사는 과거 세종대왕 때의 인왕사와는 다른 130여 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 전통 사찰이라는 점이다 인왕사 중턱에 계단으로 된 길이 이리저리로 갈라져 있는데, 석불각·관음전·기원정사·천안사 등 15개의 절들이 하나의 연합체처럼 붙어 있고, 선바위 바로 아래에 인왕사 대웅전을 만날 수 있다. 그 대웅전도 이상야릇도 하고…. 지금의 인왕사 주지는 혜원 스님인데, 아주 오래 전부터 가족 친지가 스님으로서 사찰을 이어 왔다고 한다. 위치적인 특징 때문인지, 규모는 100평 남짓하지만 기도객은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다. 인왕사 대웅전 뒤 계단으로 올라가면 그 유명한 국사당이 보인다. 국사당은 조선시대에 남산을 신격화한 목멱대왕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어서 목멱신사로도 불렀다. 사당 안에는 중요민속자료 17호로 지정된 무신도가 걸려 있는데, 그 솜씨가 다른 무신도에 비해 뛰어나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1788~1856)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책에는 국사당이란 명칭과 함께 현존하는 무신도의 기록이 있다. 국사당은 원래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남산에다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국사당을 1925년에 지금의 위치인 무악동 산2-12번지로 옮겨 지었다고 한다.
필자는 선바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누구든지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선바위로 가는 계단 위에는 ‘서울시 문화재 인왕사 석불각’이라는 간판이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듯하다. 위로 올라가보니 여신도 3명이 좌식 기도공양에 빠져 있다. 선바위의 위치는 ‘종로구 무악동 산 3-4’이다. 아이를 갖기 원하는 부인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많이 하여 기자암이라고도 불리운다. 바위의 모습이 마치 스님이 장삼(長杉)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여 참선한다는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고 부르는데, 이 바위가 태조와 무학대사의 상(像)이라는 설화와 태조 부부의 상이라는 설화가 함께 전한다. 일제가 남산에 있던 국사당을 이 바위 곁으로 옮긴 뒤부터는 이 바위와 국사당이 함께 무신을 모시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커다란 선바위의 모양을 보면 정말 신기하다. 어쩜 저런 모양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절로 탄성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바위가 오랜 세월 동안 침식과 풍화를 거듭하다보니 저런 기괴한 모양이 탄생한 것인데, 역시 자연의 힘은 위대하다! 인왕산의 기괴한 바위와 신기한 바위 이름 인왕산이 수많은 기괴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인왕산의 명성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도 이번에 느꼈다. 청계산이나 북한산 등의 인파에 비하면 여기는 절간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다. 인왕산 등산 강추! 가다 보면 생수가 금방 떨어지지만, 등산객들은 걱정 뚝! 인왕산에는 인왕천 약수터가 있는데, 건강수로서 만점이다. 공짜이니 얼마든지 받아 마시길 바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인왕산에는 이상한 바위들이 많은데, 신기하게도 이름을 잘 지었다. 근데 보는 위치에 따라 바위 이름이 달리 불리우기도 한다는 것이다. 인왕산 등산로 입구에서 공공근로를 하는 노인 한 분을 만나 설명을 들은 바위 명칭은 다음과 같은데, 인왕산 바위 이름 종합판이다. o 선바위는 스님이 장삼을 입은 모습을 하고 있다. o 돼지바위는 남릉 중간쯤에 돼지가 코를 들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o 코끼리바위는 코끼리의 긴 코같이 생겼는데, 남근처럼 보이기도 한다. 성기바위? o 달팽이바위(일명 손가락바위)는 정말 달팽이 모습으로 삿갓바위 위에 위치하고 있다. o 자라바위는 인왕산 정상 밑 동면 구릉에 자리한 바위로서, 자라가 목을 내놓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o 범바위는 호랑이굴이 있는 남릉 정상에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형상이다. o 매부리바위는 동면에 위치하고 있는 바위인데, 하늘로 쭉 뻗은 매의 머리를 하고 있다. o 말안장바위는 인왕산 정상 한가운데 있는데, 사각모자처럼 생기기도 했다. o 펭귄바위는 펭귄과 흡사하게 생겼는데, 물개나 돌고래 주둥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o 해골바위는 동면 인왕천 약수터를 지나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면 왼쪽에 위치한 바위이다. 생김새가 사람의 두개골과 흡사하게 생겼으며, 인왕산의 대표적인 바위 중 하나이다. o 장승바위는 매우 큰 바위 사면으로 3개의 장승이 나란히 누워 있다. o 치마바위는 정상 근처에 넓게 펼쳐진 바위로서, 여인의 주름치마를 펼쳐 널어놓은 듯한 바위이다. 중종과 폐비 단경왕후 신 씨의 애틋한 전설이 서려 있다. o 부처님바위(얼굴바위, 아슬바위)는 남릉을 오르다 정상 부근 왼쪽으로 높게 솟아 있는 바위이다. 부처님바위라고도 불리우는데, 얼굴(머리) 부분이 곧 떨어질 것같이 아슬아슬하다. o 책바위는 정상에서 자하문 방향으로 북릉을 향해 내려가다 보면 왼쪽 능선에 있는 바위로서, 책을 펼쳐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 교통편 교통은 아주 편리하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사직공원), 아니면 삼청공원,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과 무악재역 등에서도 산행을 할 수 있다. 등반시간은 2~3시간이면 족하지만, 기괴한 암석들을 다 보려면 산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므로 5~6시간은 잡아야 한다. 그리고 청계산이나 북한산에 비하면 한적하다고 느낄 정도로 등산객이 많지 않다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그렇지만 등산 체험 값어치는 200%이니 가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