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성적 최하위권인 고3생이었는데 각종 경시대회에 참가하고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도록 했다. 면접 준비를 위해 현직 CEO와 매달 만나도록 주선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유학원에서 밝힌 입학사정관 전형 컨설팅 사례다. 이 학원에는 하루 10명 정도의 학부모가 상담하러 오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입시 컨설팅’ 업체들은 한 달에 150만 원 정도를 받고 각종 경시대회 정보를 제공하거나 모의 면접을 하는 등 학생이 지망하는 대학의 입학사정관 전형에 대비한 ‘맞춤형 서비스’를 한다. 전문가 “입학사정관제 취지는 동의, 국내 입시문제 해결은 힘들어” 이명박 대통령이 “입학사정관제를 100% 확대하겠다”고 밝히면서 현 정부 교육개혁의 핵심과제인 입학사정관제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교과성적만이 아니라 잠재력과 소질 등을 고려해 신입생을 뽑자는 입학사정관제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이 제도로 국내 입시문제를 해결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한다. 주요 대학들이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뽑는데 골몰하는 현실에 비춰볼 때, 되레 특정 고교 학생들을 우대하는 제도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2010학년도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로 선발되는 학생수는 47개 대학 2만690명으로, 지난해(4555명)보다 4배 이상 증가했다. 이들 대학들이 내세우는 ‘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학생들의 부담이 적지 않다. 숙명여대의 입학사정관 전형인 ‘글로벌인재전형’의 서류전형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는 물론, 토익·토플·텝스 등 공인 영어 성적표와 교류협력기획서, 상장, 봉사활동을 입증할 수 있는 서면자료까지 요구한다. 서류전형에 합격하면 2단계 심층면접을 본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서류전형에서 학생부 비교과 영역 증명서와 자기소개서, 추천서와 함께 수능 2~3개 영역 2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중앙대와 한양대는 여기에 개인 포트폴리오도 요구한다. 입학사정관제, 사교육 줄이려다 오히려 키워 입학사정관제가 대폭 확대되면서 이에 따른 맞춤형 사교육을 제공하는 업체들이 새로이 사교육을 과열시키고 있다. 기존의 학원들은 한 강사가 여러 학생을 담당하는 시스템에 익숙해 입학사정관 전형에 맞춘 1대1 서비스로 바꾸기가 쉽지 않아, 특례입학이나 해외유학을 담당하던 업체들이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또, 기존 입시제도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한 그 전형에 맞춘 시장이 존속하는 만큼, 수능시험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면 학부모들은 이중고를 겪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입학사정관제가 오히려 학부모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가 예고되는 것이다. 교육업체 이투스 유성룡 입시정보실장은 “주요 대학들이 서류전형은 물론 심층면접까지 치르고 있어 입학사정관제 실시로 학생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며 “오히려 지금처럼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입학사정관제를 대폭 확대할 경우, 대학들은 수능이나 영어성적 등 계량화된 점수를 통해 공정성 시비를 없애려 할 것이 분명해 사교육이 늘어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 컨설팅 업체, 20시간에 350만 원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한 입학사정관제 전문 컨설팅 업체는 8월 3∼14일에 휴일을 뺀 열흘 동안 대입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2010학년도 입학사정관 전형 합격을 위한 단기 컨설팅’을 진행한다. 한 차례에 2시간씩 모두 10차례에 걸쳐 1대1로 진행되는 이 컨설팅에 드는 비용은 학생당 350만 원에 이른다. 컨설팅 내용은 ‘자신의 비전을 업그레이드하는 텍스트 컨설팅’(전공독서이력·스펙 선별하기), ‘입학사정관 전형에 맞춘 심층면접 컨설팅’(개별·집단면접)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업체에서 입학사정관 전형 컨설팅 사업을 시작한 배경은 올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독려해 ‘시장’이 커질 것이란 전망 탓이다. 이 업체는 앞으로 입학사정관제가 대폭 확대될 것이 확실한 만큼, 초·중학생들도 장기적인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학생의 경우 관심사가 비슷한 두세 명이 일주일에 한 차례씩 상담을 받는 비용이 한 달에 60만 원이고, 1대1 컨설팅을 원하면 혼자 그 비용을 모두 부담하게 돼 있다. 중학생 대상 프로그램에는 ‘출판 및 특허 코칭’, ‘공모 및 대회 코칭’ 등이 포함돼 있다. 입시업체 가운데에서도 입학사정관제를 겨냥한 특화 컨설팅업으로 업종을 전환하는 곳이 적지 않다. 수험생 한 명당 1년에 700만 원가량을 받고 학습 및 입시 관련 컨설팅을 하는 한 업체는 최근 입학사정관제 전문 컨설팅을 새롭게 준비하고 있다. 다른 입시 컨설팅 업체도 에세이 전문가, 면접 전문가 등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며 ‘입학사정관제 맞춤형 사교육’에 나서고 있다. 일부 고교 입학사정관제 준비 미흡 학부모들의 불안과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다. 중학생 자녀를 둔 유모 씨는 “입학사정관제 자체가 워낙 불확실한 전형이라 학부모들의 걱정이 되레 커지는 분위기”라며 “주위에서 다들 앞으로 입학사정관제 컨설팅이 필수 코스가 될 것이라고 얘기한다”고 걱정했다.
특목고 전문학원인 하늘교육의 임성호 이사는 “지금처럼 별다른 가이드라인도 없이 정부가 무작정 입학사정관제 확대만 강조하는 분위기에서는 입학사정관제 사교육이 더 늘 수밖에 없다”며 “이런 형태의 컨설팅 업체들이 상당히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고생 자녀를 둔 이모(51.서울 송파구) 씨도 “학생들이 수능에 대비하는 것은 물론 ‘경력’도 관리해야 하는 상황 아니냐”며 “학교가 입학사정관제에 맞는 진학지도를 해주지 못한다면 학부모는 학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선 고교의 입학사정관제 준비는 아직 부족하단 우려가 나온다. 오랜 시간 동안 학생의 적성을 파악하고 잠재력을 평가할 만한 교사가 없고, 이 제도에 대한 교사들의 이해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입학사정관 전형을 준비하려 K 어학원에 다니는 이모(19.서울 강남구) 양은 “어학원에서 매일 논술을 첨삭 지도해주고 모의 면접·토론 등을 실시해 장단점을 분석해준다. 학교는 이런 부분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학교를 상대로 돈벌이에 나서는 업체도 나오고 있다. S 유학원 김모 원장은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우리의 풍부한 진학지도 경험을 전수하는 ‘스쿨 컨설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내 H고와 K고가 관심을 보였으나 연간 2억 원이라는 금액이 부담됐는지 불발됐다”고 말했다. 교육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입학사정관제가 올바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수업을 맡지 않고 대입 관련 업무만 전담하는 진학지도교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투스 입시정보실장 유성룡 씨는 “대학별로 천차만별인 입학사정관 전형에 대해 정통한 전문 교사가 없다면 학부모들은 입시기관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 C고 구모 교사는 “입학사정관 전형에는 추천서, 포트폴리오 등 많은 서류가 필요한데 이를 담임교사 혼자 준비하기는 불가능하고, 학생을 맡은 지 몇 달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도 어렵다. 고교 3년 동안 학생을 꾸준히 지켜보며 입시전략을 세워줄 진학전담 지도교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교별 특성 반영, 고교등급제 정당화하겠다는 뜻” 고교등급제 등 부작용 우려데 대해서도 교육과학기술부는 그동안 “입학사정관제는 자율형 사립고 설립 등 고교 다양화 정책과 맥이 닿아 있다”며 “미래형 교육과정 등을 통해 학교별로 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해지는 만큼 이를 대입에 적극 반영하도록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교과부의 이런 설명은 입학사정관제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다수 몰리는 자사고나 특목고를 우대하는 ‘고교등급제’를 정당화하는 장치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강윤봉 인간교육실현 학부모연대 공동대표는 “지난해 고려대가 고교등급제를 실시했다는 의혹을 받는 등 대학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학교별 특성을 반영하겠다는 말은 곧 고교등급제를 정당화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대학들이 생각을 바꿔 고교 내신평가에 대해 100% 믿음을 갖지 않는 이상 고교등급제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대학이 입학사정관 재교육에 힘쓰는 등 전문성을 확보하고, 사정 결과를 공개하는 등 투명성을 높여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입학사정관제 전면 확대까지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양성관 건국대 입학사정관실장은 “대학들이 학생들의 잠재력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하는 비교과 영역 평가 등을 간소화하고, 복잡한 사정관 전형을 몇 가지로 통합하면 학생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또 입시가 끝났을 때 전형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특정 학교 학생들이 유리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실장은 또 “지역·계층·학교 유형 등에서 편중되지 않게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대학들이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며 “입학사정관제 확대 여부는 이런 식으로 3년 이상 시범실시를 해본 뒤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김승정 가톨릭대 입학사정관은 “입학사정관 수를 늘리는 것 못지 않게 제대로 된 재교육 프로그램 마련이 중요하다”며 “각 대학의 입학사정 시스템을 정교하게 만들어 사정관들이 기준에 맞춰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