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흑석동의 모 의료기기 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직장인 윤석흥 씨(29)는 추석 전전날인 10월 1일 회사에 월차를 냈다. 윤 씨는 이번 추석 연휴에 친구와 3박4일 간 중국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추석 연휴를 왜 가족들과 보내지 않느냐는 질문에, 윤 씨는 “추석엔 사라지는 게 스스로 돕는 것”이라며, “친척들이 ‘결혼은 언제 하느냐’며 스트레스 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께도 죄송하다. 대목이라 비용은 많이 들지만, 여행을 다녀오는 편이 정신건강을 위해 좋을 것 같아 결심했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한남동에 사는 구직자 최용직 씨(28)는 추석 연휴에 충청도의 모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로 했다. “취업은 언제 되느냐”, “취업난으로 힘들지 않느냐” 등 듣기 싫은 친척들의 추궁(?)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그럴 바에야 이력서에 쓸 봉사활동 경험을 쌓는 편이 낫다며 최 씨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서울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김유리 씨(29)는 이번 추석에 고향(경상남도 통영)에 가는 대신 영화·연극 등을 보면서 문화생활을 즐기기로 했다. 추석 연휴가 개천절과 주말에 겹쳐 고작 3일뿐이기 때문. 그래서 김 씨는 느긋하게 보낼 수 있는 ‘나홀로’ 주말을 택했다. 김현주 기자 gain@cnbnews.com 구직자·직장인, “결혼·취업 잔소리 스트레스” 최근 한 취업 포털이 직장인 1,394명을 대상으로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추석을 앞두고 기대·설렘과 걱정·스트레스 중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을 묻는 질문에, 48.6%가 ‘걱정·스트레스’를 꼽았다. 그 이유 중에 결혼·취업 등에 대한 잔소리가 높은 비율을 차지해 눈길을 끌고 있다. 취업·인사 포털 인크루트는 구직자 836명, 직장인 674명 등 총 1,510명을 대상으로 ‘추석 스트레스’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구직자와 직장인들이 각각 ‘취업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비용부담’에 스트레스를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모 결혼정보회사가 최근 전국 미혼 남녀 497명에게 “추석 연휴를 가족·친지들과 보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묻자, 남녀 모두 “결혼은 언제 하느냐는 질문 때문”(남 48.1%, 여 50.9%)을 가장 많이 꼽았다. 싱글들이 이와 같은 명절 스트레스에서 탈출할 방법은 무얼까? 싱글들, 추석을 추억으로… 싱글들이 연휴에 가장 많이 택하는 대안(?)은 여행이다. 핑계로 둘러대기에 가장 적절하기 때문. 회원 수 27만6,000여 명을 보유한 포털 다음의 ‘일상탈출카페’에는 추석 연휴에 함께 여행을 떠날 동행을 찾는 글들이 많아 눈길을 끈다. 아이디가 ‘세부고고’인 한 회원은 “추석 때 친척들 잔소리 듣기 싫은 분들 함께해요”란 제목의 글을 올려 여행 친구를 찾고 있다. 또, ‘푸른 바다가 좋아’란 아이디의 회원도 “추석에 잔소리 듣기 싫은 분 같이 여행해요”라고 글을 올려, ‘친척들의 잔소리’가 추석 연휴에 집을 나서게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임을 느끼게 했다. 단 3일의 추석 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떠나려는 싱글들을 손님으로 잡기 위해 여행사가 내놓은 여행 상품들도 호황을 이루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인터넷 여행백화점 ‘넥스투어’에게 추석 연휴 싱글들을 위한 여행 상품에 대해 물었다. 넥스투어 측은 “싱글족은 추석을 ‘명절’이 아닌 즐거운 ‘연휴’로 받아들인다”며, 휴식·쇼핑·체험 등 다양한 추석 여행 상품을 소개했다. 넥스투어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청송 주왕산을 여행할 수 있는 ‘청송 주왕산 계곡 가을 단풍 트레킹’ 상품을 자신 있게 내놨다. 또, 단일 여행으로는 향긋한 커피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는 ‘왈츠와 닥터만 커피 박물관’, 눈앞에 펼쳐지는 이국적인 프랑스 ‘쁘띠프랑스’ 방문 등이 준비돼 있다. 이 밖에, 그동안 밀렸던 쇼핑을 연휴에 해치울 수 있도록 쇼퍼들의 천국 홍콩과 싱가포르 여행도 마련돼 있다. 추석은 싱글들에게는 문화생활을 평소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공연계는 이런 추석 연휴의 고객을 끌기 위해 할인 이벤트를 쏟아내고 있다. <연극열전2>는 현재 대학로 상명아트홀과 삼성동 코엑스 아트홀에서 동시 공연 중인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의 티켓 가격을 추석 연휴 관람객에게 43% 할인해준다. 또, 추석이 갖고 있는 나눔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현장 경품 이벤트도 마련했다. 공연 시작 전 관람자들과의 퀴즈 타임에서 정답을 맞힌 관객에게 호텔 숙박권, 레스토랑 식사권, 마사지권 등 푸짐한 선물을 제공한다. 추석 연휴인 10월 2일부터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 1관에서 1년여 만에 앙코르 공연을 시작하는 <웃음의 대학>도 추석 연휴기간에 티켓의 40%를 할인해준다. 또, 26일부터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는 창작 뮤지컬 <언약의 여정>도 추석 연휴인 10월 2일부터 4일까지 20% 할인 이벤트를 실시한다.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에서 추석 명절을 보내는 시민들을 위해 10월 3, 4일 이틀 간 전통공연 프로그램 <신명나눔>과 세종별밤축제 <달빛축제>를 준비했다. 이 밖에도, 봉사활동을 계획하는 봉사 정신 투철한 싱글, 여행과 여가생활을 즐기는 대신 연휴 성형으로 새로운 모습을 꿈꾸는 진보적(?) 싱글 등 연휴를 친척들의 잔소리에서 벗어나 보다 알차게 보내려는 싱글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