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윤영상 며칠 전, 서울 압구정동의 한 무대에서는 다소 특별한 공연이 펼쳐졌다. 영등포구 당산동에 위치한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셋넷학교’ 아이들이 손수 만든 노래극 <다르거나 혹은 같거나, 내일을 꿈꾸며!>가 바로 그것이다. 제목처럼 우리들과 다르지도, 같지도 않은 탈북 청소년들. 그들을 만나는 시간은 미래의 통일한국을 미리 만나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셋넷학교’는 필자가 얼마간 자원봉사를 했던 학교이기도 하다.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눈물과 웃음을 삼키며 정착을 시도해 나가고 있는 아이들 30여 명이 함께 공부하는 작은 학교이다. 이미 우리 주위에는 2만 명 가까운 북한이탈주민(탈북자)들이 살고 있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 먼저 손을 내밀지는 못 하고 있기에, 셋넷학교의 아이들이 먼저 공연을 통해서나 또는 다양한 캠프와 행사들을 통해서 세상 속으로 한 발짝 한 발짝 걸어 나와 우리에게 고사리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북한이탈주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대 후반의 어느 북한이탈주민이 음주 후에 중학생 5~6명과 시비가 붙어 경찰에 연행되는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기사보다 가관이었던 것은 그 아래 달린 네티즌들의 댓글 내용이었다. “남한 사람이 남한 경찰한테 맞았으면 경찰 잘못이지만, 탈북자가 남한 경찰한테 맞은 것은 정당!” “탈북자들이 맨날 적응 어렵다고 노래 부르는데, 그렇게 적응 안 되면 다시 북으로 올라가라!” “빨갱이 XX들아, 좀 조용히 살아라. 우리는 뭐 배부른 줄 아냐? 니들 때문에 일본에는 흔한 돔구장 하나 못 짓잖아!” “술 처먹고 중학생들이랑 시비나 붙으려고 가족과 친척·친구들을 죽음의 벼랑 끝까지 내몰고 남한에 왔나!”
이것이 그날 캡처해두었던 뉴스 기사의 댓글들이며, 이것이 그들을 향한 우리 시선의 단편들이다. 그날 이후 필자는 북한이탈주민들을 수소문해서 만나보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 관심을 이어오고 있다. 그들을 향한 냉소적인 시선은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탈북 청소년들은 평균 3년 이상의 시간을 탈북의 여정으로 보내기 때문에, 남한에 와서는 같은 학년의 친구들에 비해 3살 이상 나이가 많은 것이 보통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에 있을 때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여 또래에 비해 체구도 작고, 학업 수준 역시 남한 교과과정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한 청소년들과 탈북 청소년들이 함께 어울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많은 학생들은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여 셋넷학교와 같은 대안학교에 들어가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검정고시 합격 후에 다시 일반 학교에 진학한다 하더라도, 적응하지 못하고 금세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몇 해 전의 조사에 따르면, 탈북 청소년들의 중학교 취학률은 49.1%, 고등학교 취학률은 6.6%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한 그들 중에는 부모와 가족 모두 함께 정착한 경우가 드물고, 운 좋게 부모와 함께 정착했다 하더라도, 탈북 과정에서 겪은 극심한 고생과 정치범 수용소에서 당한 모진 고문으로 부모나 자신이 병을 얻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학생들은 가정과 학교 안팎에서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것이 통일 후 또는 북한 개방 후에 남한과 북한 사회에 찾아오게 될 시급한 현실이기에, 우리에게는 북한이탈주민들을 통해서 남과 북이 하나 되는 예행연습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셋넷학교의 박상영 교장과 인터뷰를 하면서 다시 한 번 느낀 소감은 북한이탈주민들은 남한과 북한 주민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필자는 북한이탈주민들을 보며 성경 인물 요셉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도 요셉이 되고 싶어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요셉은 형제들의 핍박을 못 이겨 고향을 떠났지만, 새로 정착한 땅에서 총리대신이 되어 창고에 곡식을 쌓아두었다가, 가뭄이 들고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 창고를 열어 동족들을 기근에서 구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흩어졌던 형제와 가족들도 다시 하나가 되었었다. 우리의 마음과 북한이탈주민들의 마음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면, 이제는 그 마음과 마음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할 시간이다. 나와 셋넷학교 아이들의 마음 사이에, 지역주민과 셋넷학교 사이에, 지역과 북한이탈주민 사이에, 그리고 남한과 북한 사이에 이제 다리를 놓아야 할 시간이다. 다리를 놓아야 한다/우리가 사는 일은 다리를 놓아야 한다/너와 나의 마음에 다리를 놓자/휴전선 위에/서울과 평양에/가로세로 거미줄 얽히듯/하늘에 별이 얽히듯/이렇게 다리를 놓아가면/언젠가는 하나가 되리/우리는 하나가 되리.(이인석의 시 ‘다리’) “탈북자들에 대한 편견 걷어냈으면…” 미니 인터뷰…박상영 셋넷학교 교장
셋넷학교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예산 부족이 가장 시급한 고민이다. 고정적인 지원금이 거의 없고, 기부금 역시 턱없이 부족해서, 공모사업 등을 통해 학생들과 돈을 벌어야 겨우 학교를 유지할 수 있다. 지난 몇 해 동안은 남북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남북 간의 민감한 이슈인 북한이탈주민 문제를 다소 쉬쉬해온 것이 사실이다.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를 정부에서 운영해준다면 가장 좋겠다. 서울에는 셋넷학교처럼 종교단체나 개인이 운영하는 대안학교들이 그나마 있지만, 지방에는 이마저도 없다. 지방의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대비책도 절실하고, 셋넷학교도 기숙사를 지어 지방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당면 과제이다. 셋넷학교의 아이들에게 늘 당부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답게 살자’는 것이다. 남한 친구들과 비교하지 말고 당당하게! 그러나 우리 사회가 어디 그런가. 우리 먼저가 서로를 비교하고 있는데…. 우리가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가져야 할 시선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어떤 새로운 시선이나 마음을 갖기에 앞서, 지금까지 갖고 있던 편견들을 먼저 걷어냈으면 좋겠다. 반공교육이 낳은 무분별한 적대감이라든지, 가난에 대한 멸시라든지, 우리에게 쌓인 다양한 편견들이 존재한다. 셋넷학교, 또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통일을 결혼에 비유하곤 한다. 결혼해서 돈을 많이 가져다주는 것이 행복한 결혼 생활은 아니다. 부부 사이에도 그렇고, 북한이탈주민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이탈주민들을 통해서 먼저 통일을 배워 나가고 미래를 꿈꿔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통일 후에는 북한 주민들이 자기들보다 먼저 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들을 통해서 남한 사회를 배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