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부터 24일까지 3주 동안 16개 상임위별로 478개 기관에 대하여 실시한 2009년 국회 국정감사가 막을 내렸다. 이번 국감을 통해 세종시 수정론, 4대강 사업, 효성그룹 축소수사 의혹, 정운찬 총리 검증 등 많은 현안이 짚어져 나름대로 의미 있는 국감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20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감사를 하다 보니 감사의 전문성과 집중도가 떨어지고 ‘몰아치기식 국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특히 이번 국감은 10.28 재보선을 앞두고 열려 정치성이 짙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야의 첨예한 대립과 정쟁으로 일부 상임위가 잦은 파행을 겪었으며, 재보선 때문에 맥 빠진 감사가 된 경우도 있다. 피감 기관은 제대로 자료를 내놓지 않고, 의원들은 주어진 자료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벼락국감을 하는 고질병도 재연됐다. 결국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감시 기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국감 개혁론’과 ‘국감 무용론’이 다시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이다. 올해로 22년째를 맞는 국정감사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행정부를 감시하는 장이지만, 대부분 국정감사장이 여야 간의 치열한 정치 공방으로 치닫고 있어 개선론이 거세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정책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국감’이 아니라 정쟁의 도구로 국감을 활용하는 ‘정치국감’의 행태이다. 교과위, 5차례 파행 끝 형식적 국감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는 정운찬 총리 관련 의혹을 민주당이 제기하면서 10월 7일부터 내리 사흘 간 다섯 차례나 파행을 겪다가 끝났으며, 10월 8일 경기도교육청 국감은 아예 기관장 업무보고도 받지 못한 채 헛돌았다. 10월 9일 정무위의 예금보험공사 국감에서도 예보 자문위원 활동 내역을 파악하기 위해 정 총리를 증인으로 부르자는 민주당과 이에 반대하는 한나라당의 입씨름으로 한때 회의가 중단됐다. 또한 이날 오후 3시 국회 행정안전위 국정감사장에서는 원래 오전 10시에 시작됐어야 할 국감이 여야의 충돌 때문에 계속 늦춰지는 바람에 대기하던 소방방재청 직원들의 표정엔 불만이 가득했다. 민주당은 전날 서울시 국감 때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이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유력 정치인(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해 사실을 왜곡해 흠집을 내고 있다”고 주장한 것을 문제삼아 사과를 요구하며 회의를 보이콧했다. 결국 장 의원이 해명을 하고 회의가 시작된 시점이 오후 3시45분이어서, 국회의원들이 중앙 119 구조대를 방문해 소방헬기 시승하기에 위한 행사를 소방방재청 직원들이 며칠 전부터 준비해왔으나 현장 시찰은 취소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 의원 보좌진들은 올 들어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와 미디어법 원천무효 투쟁, 인사청문회 등에 따라 국감을 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측면도 있다. 이는 한나라당 의원 보좌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인지 국감 때면 나오는 ‘한 방’을 터트리는 의원은 거의 없었던 편이다. 피감기관 자료 미비 및 도마위에 올라 피감기관의 자료 제출 미비와 부실 자료도 단골 레퍼토리로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 백원우 의원은 10월 9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의 국민건강보험공단 국감에서 “공단 측이 자료심의위원회를 구성해 고의로 자료 제출을 방해한다는 소리가 있다”고 지적하는 바람에 국감을 두 차례나 실시하기도 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피감기관은 자료 요청을 받은 지 10일 안에 자료를 제출해야 하지만, 피감기관들은 준비 기간을 이유로 감사 직전에 자료를 제출하는 등의 ‘잔꾀’를 부려, 야당뿐 아니라 여당 의원들까지 항의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민주당은 정부가 4대강 사업이나 정 총리 관련 자료를 제대로 내놓지 않는다고 항의했으며, 한나라당 조문환 의원도 10월 6일 정무위 국감장에서 “128페이지짜리 자료를 어젯밤 11시에야 보내주면 어떻게 읽어보란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10월 22일 교과위에서는 자료 부실에 대한 야당의 비판으로 서울대 감사가 한때 중지되기도 했다. 피감 기관장의 막말과 성의 없는 답변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에 대한 감사에서 4대강 사업의 위법성을 지적하면서 “장관, 정신 좀 차리십시오”라고 핀잔을 줬고, 이만의 장관은 “정신 멀쩡합니다”라고 맞받아쳤다. 정쟁이 비교적 없다는 지식경제위원회에서도 10월 20일 임인배 전기안전공사 사장이 자료 제출 요구에 대해 “담당한테 물어보시라”고 배짱을 부리는 통에 감사가 중단됐다. 일단 불러놓고 보자는 식의 증인 채택도 국감의 고질병이다. 10월 7일 디지털방송 전환 정책 관련 참고인으로 문방위에 출석한 경원대 정인숙 교수는 오후 2시부터 밤 11시40분까지 국감장에 앉아 있었지만 단 한 번 1분 간 답변을 했을 뿐이다. 이에 고흥길 문방위원장도 미안했던지 회의를 마칠 때쯤 14명의 증인에게 “한 번도 발언 안 한 분 계시냐”고 묻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감의 한계를 제도적으로 극복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올해 초, 국회의장 직속으로 있는 국회운영제도개선자문위는 ‘상시국감’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최근 “정부에 대한 감시 및 감사라는 본연의 기능 외에 과도한 경쟁 양상이 벌어지면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들이 노출되고 있다”며 “국정감사가 그간 많은 성과를 냈지만 형식화되는 측면이 있다”는 말로 상시국감 체제로의 전환을 언급했다. 김 의장은 상시국감 체제로의 전환에 대해 “지금처럼 전 상임위가 20여 일 동안 일제히 국감을 벌이는 게 아니라 위원회별로 1년 중 국감 기간을 미리 정해놓고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