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단풍이 짙어진 설악산 대청봉에 올 들어 벌써 첫 얼음이 선을 보였다는 소식이다. 때문에 올해는 가뜩이나 살인마 같은 신종플루 공포증에 떨고 있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더욱 움츠리게 하고 있다. 그러나 날로 차가워지고 있는 날씨와는 달리, 올 하반기 정국은 이번 국정감사 기간(4일~24일) 내내 뜨겁게 달궈져온 ‘세종시 논란’이 어쩌면 메가톤급으로까지 폭발력이 커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로 뜨거움을 더해 가고 있다. 한마디로, 세종시 원안 ‘추진’이냐 ‘수정’이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이는 상반기 정국의 뇌관이었던 미디어법 등과는 차원이 다른 현안이기 때문에 그 어떤 현안들보다도 폭발력이 클 수밖에 없다는 진단들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지역감정’이 걸린 탓에 민감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직접적 이해 당사자도 많아 ‘표’와의 상관관계가 다른 어떤 현안들보다 밀접해 있다. 게다가 정당 간 이해관계까지 첨예하게 얽힐 수밖에 없어 더욱 그렇다는 얘기들이다. 때문에 여권의 주요 인사들이 계속 “원안처리가 당론”이라거나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 고 발뺌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10월 17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예사롭지 않은 통 큰 발언을 했다. 이에 자극된 충청 지역과 야권은, 해당지역 연기군수가 단식투쟁에 돌입한 가운데, ‘국민저항’이니 ‘불복종운동’이니 하는 거친 목소리를 내며 저항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알려진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는 적당한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 고 강조하고 “정권에는 도움이 안 될지라도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한때 오해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택해야 한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즉시 “특정 정책을 겨냥한 발언은 아니다”라고 해명하고 나섰지만, 최근 논란이 계속되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수정 문제와 관련해, 9부 2처 2청의 정부 기관을 충남 연기·공주 지역에 옮기도록 하는 원안을 대폭 수정할 의지를 강력하게 내비친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들이 적지 않다. 그것은 청와대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 특별법을 고쳐, 세종시를 대학·기업·연구시설 등이 어우러진 과학비즈니스도시나 녹색도시 개념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11월 초 ‘대통령과의 대화’ 생중계방송을 통해 국민에게 직접 세종시에 대한 청와대의 견해를 명확하게 밝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이 전했다는 보도까지 나온 상황이다. 이는 “논란이 되고 있는 뜨거운 이슈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서 가닥을 잡아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돌이켜 보면, 세종시 문제의 근원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걸어 자신의 대통령 당선에 기폭제 역할을 단단히 해낸 ‘수도 서울 충청권 이전’ 공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당시 수도가 대선공약대로 충청권으로 이전됐으면 지금의 세종시 논란은 아예 생기지도 안았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말하자면 수도 서울 이전의 불발탄이 연기·공주 지역으로 마치 유탄처럼 변질된 탓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환도를 뜻하는 서울 이전이나 지금의 세종시 논란의 원제는 국가 백년대계를 실현 가능성보다는 정치성 공약으로 시도한 돌이킬 수 없는 오류 때문에 두고두고 논란거리로 남을 공산이 짙다.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들은 물론, 국민 모두의 고통스러운 마목으로 뿌리 박히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따라서 이제는 모두가 남의 탓이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현명한 솔로몬의 지혜를 모아 조속히 해법을 찾는데 주력하는 게 상책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