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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 작가의 세계

“내가 원하는 것,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게 좋다”
사라져가는 옛것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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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43호 김대희⁄ 2009.11.10 11:47:44

“아직도 나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이 작가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점이라 생각합니다.” 가을 하늘이 드높던 11월 어느 날 평창동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집을 찾았다. 누가 봐도 심상치 않을 정 작가의 집 안팎으로는 조각 작품들이 놓여 있다. 특히 꽤 커다란 몸집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집 앞의 조각은 마치 정혜진 작가의 집을 찾아오기 위해 힘들게 언덕을 올라오는 방문자의 심정을 헤아리듯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힘들던 순간도 잠시 오히려 미소를 안겨준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아니나 다를까 역시 조각 작품들이 여기저기서 손님을 맞이한다. 정 작가는 조각뿐만 아니라 드로잉, 사진, 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을 해 왔다. 정 작가는 “나의 작업은 인생의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며 “그 사람들의 직업과 환경들에서 포착되는 것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행을 갔는데 그곳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모두 카메라(사진이나 비디오)에 담아오는데 그런 것들이 사진 작품과 영상 작품 그리고 조각이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정 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이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사진까지 섭렵했다. 하지만 이미 그 전부터 여러 가지를 붙여서 구성하는 콜라주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정 작가는 “내 작업들이 어느 장르(사진이나 회화 혹은 조각)에 속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원하는 작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능력을 총 동원해서 만들어 낼 뿐”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 작가의 작품은 조각 작업이 주를 이루는데 그간 사진 작업의 영향이 조각 작업에도 적용되고 있었다. 정 작가는 “그간에는 주제가 다소 무겁게 진행됐었는데 조각에서는 조상의 순장 장례에서 볼 수 있는 문화적 얼을 유쾌하게 풀어내고자 했다”며 “그건 아마도 상처받은 예술가 저 자신으로 경쟁에 지친 현대인들에 대한 자화상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가장 아쉬운 것은 우리다운 현대 미술이 빈약하다는 점”이라며 “어느 날 우리 조상들의 무덤에 순장된 목조각들과 대면하게 되면서 거기에 우리의 역사와 뿌리, 혼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느끼고 거기서 조각의 뿌리가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이를 계기로 정 작가는 그동안 해오던 사진과 회화의 완결을 조각이 대변해 줄 것이라 확신했으며 이후 조각에 매진하며 그간 해오던 작업 내용과 연관시키려 한다. 정 작가는 사라져가는 옛 문화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옛것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을 통해서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이 최선이라며, 그리고 언제나 시작이라며 환한 웃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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