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행복을 느끼고 움직이고, 동물과 사람이 함께하는 ‘동행’ 동물원을 보여주자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올해 개원 100주년을 맞아 지난 1일 선진국형 신(新)유인원관(Ape Jungle)을 새로 연 서울동물원 윤정상 동물기획팀장의 말이다. 그가 말하는 ‘동행’의 의미는 세 가지다. 동물이 행복을 느끼도록 한다는 동행(動幸), 동물이 자유로이 행동한다는 동행(動行), 인간과 동물이 더불어 산다는 동행(同行)이 그것이다. 이런 개념으로 만들어진 신유인원관에 들어선 사람들의 입에서는 “와~”하는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유리창 건너편의 고릴라·개코원숭이와 코를 맞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여성 관람객은 바로 코앞에서 느긋하게 움직이는 고릴라를 보면서 “이렇게 가까이서 고릴라를 보는 건 처음”이라며 “무서워”를 연발했다. 새 유인원관의 특징은, 종전처럼 좁은 공간에 갇힌 유인원들을 사람들이 멀리서 구경하는 게 아니라, 유리창을 통해 ‘코앞에서’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런 형태의 동물원은 선진국에는 많지만 한국에선 드물다. 윤 팀장은 “동물원이 사람 중심의 ‘관람형’에서 동물 중심의 ‘생태형’으로 바뀌는 것은 오래된 추세”라고 설명했다. 예전에 동물원이 사자·호랑이·기린 같은 동물 종을 그저 보여주는 데에 그쳤다면, 요즘은 각 동물이 고유의 행동과 야성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원숭이는 나무를 타고, 치타는 뛰고, 미어캣은 땅을 파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꾸며주고 있다”고 말했다. 1983년에 과천 서울동물원이 개원한 이래 처음으로 신유인원관을 대규모로 개조한 이유도 이런 추세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북극곰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테크노 춤’을 추거나 코끼리가 코를 들었다 놓았다 반복 행동을 하면 재미있어 하지만, 사실 이때 동물들은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이다. 사람이 아무 할 일이 없을 때 다리를 흔들고 손가락을 책상에 두드리듯,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런 ‘정형행동’(욕구불만으로 나타나는 비정상적 행동)을 하게 된다. ‘슬픈 동물원’이라는 책은 서울동물원 유인원관에서 쇠창살에 갇힌 채 시멘트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원숭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기존 동물원은 비참한 정형행동만을 관람객들에게 보여준 꼴이었다. 창살·시멘트벽 없어지고 특수유리 등장 달라진 모습은 신유인원관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동물원’이라면 연상되는 쇠창살과 시멘트 바닥이 사라지고, 흙과 나무로 이뤄진 보다 ‘자연스런’ 공간에서 이들이 노는 모습을 특수유리를 통해 또는 높은 관람대에 올라가 볼 수 있다. 대나무로 둘러싸인 신유인원관에 들어서면 용기 있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누비스개코원숭이가 방문객을 반긴다. 이어 사바나원숭이 마을이 나타난다. 천방지축 뛰어다니기를 좋아하며 낮은 나무 위 생활을 즐기는 사바나원숭이를 위해 나무 횃대와 폭포수가 꾸며져 있다.
신유인원관 한가운데에 도달하면 어린이들의 탄성이 터진다. 알락꼬리여우원숭이 꼬리를 만질 수 있는 방사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꼬리를 만져봐”라는 주문에 “무서워서 못 만지겠어”란 대답, 코앞에 나타난 낯선 동물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알락꼬리여우원숭이의 민첩한 동작만큼이나 사람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이어 나타나는 것은 오랑우탄 관. 침팬지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왔지만 최근 침팬지 뺨치는 지능을 가진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 오랑우탄은 성격이 유순하기 때문에 어린 오랑우탄의 재롱을 보는 재미가 있다. 오랑우탄 관에서는 사람과 이들이 눈을 서로 마주치게 되는데, 사람과 유전자가 거의 같다는 이들 유인원의 눈동자에는 많은 생각이 담겨 있는 듯하여 자신도 모르게 눈으로 대화를 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이들을 구경하는 것인지, 이들이 사람을 구경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침팬지 우리에는 높이 8m의 정글짐 타워가 만들어졌다. 나무 타기를 좋아하는 침팬지를 위한 시설이다. 동물원 측은 이 타워를 내년에 20m까지 높일 계획이다. 현재 가장 높은 침팬지 정글짐은 일본 교토영장류연구소의 16m짜리라니, 가장 높은 침팬지 타워가 과천에 들어서는 셈이다. 또 나무 동전을 넣어 침팬지가 먹이를 ‘사’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자판기도 침팬지 우리에 설치됐다. 윤 팀장은 “연구를 통해 침팬지의 뛰어난 지능,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이 증명돼 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도 다양한 시설을 도입하여 사람 버금가는 침팬지의 지능을 관람객들이 느끼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서울동물원에 있는 로랜드고릴라는 마운틴고릴라와 달리 나무 위에 오르기를 좋아한다. 나무 막대를 이용해 개미집 모양의 꿀집에서 꿀을 찍어 먹는 모습도 볼 수 있도록 했다. 과거에 인간의 정의가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었다면,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고 그러한 ‘문화’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침팬지·고릴라의 능력이 확인되면서 인간의 정의마저 흔들리고 있다. 수컷 고릴라는 상대방이 눈을 빤히 쳐다보면 도전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동물원 측은 사람 눈이 사시처럼 보이도록 하는 특수 관람용 안경을 끼고 고릴라를 보도록 권장하고 있다. 윤 팀장은 “지금은 나무 위에 오르는 로랜드고릴라를 볼 수 있지만, 내년엔 세계 최초의 고릴라 타워를 짓고 고릴라가 좋아하는 허브 식물도 심어 보금자리를 만들어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물들이 자연스럽게 놀 수 있는 환경이 중요 윤 팀장은 이번 신유인원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참고한 해외 사례로 일본의 다마 동물원, 우에노 동물원, 아사히야마 동물원, 미국의 애니멀 킹덤, 부시 가든 등을 들었다. 이들 시설을 방문하고 자문을 받으면서 새로운 동물원 개념을 빌려왔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동물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여주는 ‘행동전시’를 처음 시도했다. 펭귄 풀장 밑에 터널을 뚫고 펭귄이 이 터널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하고, 오랑우탄이 좋아하는 시설을 만들어 밀림 속처럼 놀게 해준 것이다. 윤 팀장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의 동물원 꾸미는 방식엔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가짜 바위와 나무를 설치하는 등 외관 치장에 신경을 쓰고, 일본에선 외관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시멘트 벽과 철골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일본식이 외관은 볼품없어도 동물에게는 더 좋은 놀이터가 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벽화를 잘 그려놔도 바닥이 시멘트면 동물들에게는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며 “동물들이 좋아하는 놀이 시설과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환경을 만들려면 많은 연구와 돈이 필요하다. 이번에 신유인원관을 꾸미는 데 30억 원 정도가 들었지만, 윤 팀장은 “이 정도 금액은 미국 동물원에서 한 가지 동물을 위한 시설 비용도 안 된다”고 말했다. 열악한 국내 환경이지만 그래도 전문가들이 동물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발 동물에게 음식 주지 마세요” 윤정상 팀장은 “시설이 선진화된만큼 관람문화도 선진화돼야 한다”며 “특히 관람객들이 오랑우탄·침팬지·원숭이를 보면 음식을 거의 자동적으로 던져주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귀엽고 사랑스러워 음식을 주지만 사실 관람객이 이런저런 음식을 주는 것은 동물에게는 고문밖에 안 된다는 설명이다. 동물원에서 음식을 할 일도 없고 먹이를 구할 필요도 없는 동물들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심심풀이로 음식을 먹게 된다. 이러다 보면 쉽게 비만이 되고 배탈이 나기도 한다. 가둬놓고 쉴 새 없이 음식을 먹도록 하는 게 바로 고문이다. 선진국의 동물원에서는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동이 엄격히 통제되고, 먹이를 주다가 적발되면 벌금을 물리는 등 강력한 처벌을 한다. 그래서 먹이를 주는 관람객이 거의 없다. 서울동물원 신유인원관에도 ‘음식을 주면 동물의 배가 아파요’ 등의 문구가 쓰여 있기는 하지만, 글자 크기가 너무 작아 사실상 효과가 없는 점이 아쉽다. 귀중한 재산인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동물원 측이 더 적극적으로 음식을 못 주게 하는 홍보 활동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