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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없는 인생에 한 줄기 빛 있느니…

영화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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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44호 이우인⁄ 2009.11.17 11:07:59

일본의 유명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백야행>이 영화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이하 백야행)로 11월 19일 개봉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외딴집>의 미야베 미유키, <밤의 피크닉>의 온다 리쿠와 함께 ‘일본 미스터리 3인방’으로 꼽히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일본에서 이미 큰 인기를 끌었다. 그가 쓴 소설 60여 편 중 14편이 영화나 드라마로 이미 제작됐기 때문이다. 2000년에 출간된 <백야행>은 당시 4주간 서점 집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으며, 2006년에는 야마다 타카유키, 아야세 하루카 주연의 드라마로도 방송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원작의 이런 인기 때문인지, 이번에 개봉되는 한국 영화는 30대 초반 신인 감독이 연출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제작 단계에서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여기에 한국 영화의 대들보 제작자 강우석의 제작 참여와 한석규·손예진·고수 같은 톱스타의 출연으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백야행>에는 뭔가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커진 것이다. 이처럼 큰 관심을 끈 <백야행>이 11월 10일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처음 공개됐다. <백야행>으로 걸어 들어가보자. 겉은 밝아도 속은 어두운 여인 ‘白’ “내 인생에 태양은 없었어. 언제나 밤뿐이었지.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가느다란 빛 한 줄기가 있었으니까. 그 빛은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미호(손예진 분)는 성공한 자신의 인생을 부러워하는 직원에게 이같이 말한다. 미호의 이 대사는 영화 전체를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백야행>은 살인 용의자의 딸 미호와 피해자의 아들 요한(고수 분)의 운명적이지만 슬프고 외로운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언제나 밝은 곳에서 따스한 빛을 받고 있지만 슬픈 과거 때문에 내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미호. 미호의 가느다란 빛이 되어주기 위해 어둠 속에서 살게 된 요한. 두 사람은 각각 백(白)과 야(夜)로 대비된다.

영화는 어두운 곳에서 무자비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요한과 온통 하얀 방에서 다른 남자와 격렬하게 섹스를 나누는 미호가 교차되는 첫 장면부터 궁금증을 자아낸다. 살인을 저지른 뒤에 스치는 요한의 슬픈 눈빛과 섹스를 마친 뒤에 번지는 미호의 알 수 없는 표정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무엇이며, 이들은 왜 이런 모습으로 살게 된 것일까? 그러나 관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는 이 궁금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들의 정체와 사연은 아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여기에 동수(한석규 분)와의 관계, 미호를 관찰하는 시영(이민정 분)의 마음, 그밖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상황을 이해해야만 미호와 요한을 알 수 있다. 보는 내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구조이며, <백야행>의 가장 큰 매력이다. 제작자 강우석 감독은 <백야행>을 이렇게 소개한다. “범인이 누군지는 알겠는데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범인을 쫓아가는 일반적인 추리라면 후반부에서 허한 느낌이 있지만, <백야행>은 범인을 노출하고 ‘왜 그랬을까’에 포커스를 둔 영화이기 때문에 스릴러 영화로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연기파 한석규가 <백야행>을 택한 이유 <백야행>은 연기파 배우 한석규의 17번째 작품이다. 극 중 한석규는 형사 동수로 나온다. 동수는 미호와 요한을 가장 많이 알고 이해하는 이 영화의 핵심 인물이다. 한석규는 자신감에 차 있는 30대의 젊은 형사, 그리고 좌절감에 젖어 있는 50대 늙은 형사의 모습을 적절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한석규보다 손예진과 고수에 관심이 쏠린다. 영화는 동수를 중심으로 흐르지만, 왠지 그가 관찰자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점을 노련한 배우 한석규가 모를 리 없다. 한석규는 <백야행>의 출연 제의를 두 번이나 거절했다. 박신우 감독이 한석규의 캐스팅을 ‘삼고초려’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 영화에 한석규가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박 감독이 쓴 장문의 편지를 읽고 출연을 결정하게 됐다”는 그는 “내게 캐스팅 제안을 할 때부터 그리고 <백야행>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연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많이 느꼈다”고 박 감독을 칭찬했다. 감독의 열의가 한석규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백야행>은 한석규에게 전작만큼의 스포트라이트를 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석규의 연기를 보면서 감독이 왜 “동수는 한석규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손예진·고수, 만나지 않는 사랑을 연기 미호와 요한은 서로 사랑하지만, 14년 전 사건 때문에 만날 수 없는 운명이다. 영화 속에서 손예진과 고수가 접촉하는 장면 역시 없다. 때문에 연기 호흡이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러나 두 배우 모두 “상상력으로 가능했다”고 입을 모았다. 군 제대 뒤 <백야행>으로 영화에 처음 출연한 고수는 “연기는 상상력을 현실로 표현하는 것이어서 굳이 만나지 않아도 가능했다”며 “요한은 어떤 생각을 하고 미호와는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을까 하고 시나리오 밖으로도 상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요한과 있다고 상상하면서 연기했다”는 손예진은 “전작에서는 남자 주인공과 대사를 주고받고 애정 연기를 하고 절절한 사랑을 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대화할 때도 전화로 하거나 벽을 사이에 두고 해야 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러나 “감정 유지를 위해 일부러 서로 이야기도 줄였다”면서 “요한과 미호가 맴도는 사랑을 나눈 것처럼 고수 씨와 나도 맴도는 사랑을 연기했다. 상상 속에서 사랑을 그리는 것도 나름대로 좋았다”고 말했다. <백야행>에서 고수와 손예진의 정사 신과 노출은 또 다른 재미다. 물론 두 사람은 이 영화에서 한 번도 만나지 않기 때문에 정사 신의 상대도 ‘사랑의 대상이 아닌’ 다른 배역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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