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아 논란이 됐던 형법상 ‘혼인빙자간음죄’가 56년 만에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11월 26일 “부모님께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이라고 소개하겠다”고 거짓말을 한 뒤 수 차례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A 씨를 비롯, 남성 2명이 낸 “혼인빙자간음죄를 규정한 형법 304조는 위헌”이라는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재판관 6대 3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선고했다. 즉, 결혼을 빙자해 여성의 순결을 빼앗은 남성은 사회적 비판은 받을지언정 형사처벌은 받지 않게 된 것이다. 재판부는 “남녀평등의 사회를 지향하고 실현해야 할 국가의 헌법적 의무에 반하는 것이자 여성을 유아시, 여성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재판부는 “목적과는 달리 혼인빙자간음 고소 및 그 취소가 남성을 협박하거나 위자료를 받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폐해도 종종 발생, 국가의 공형벌권이 정당하게 행사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개인의 내밀한 성생활 영역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남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 법익의 균형성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강국·조대현·송두환 재판관은 “해당 조항이 남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으며, 남녀를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반대 의견을 냈으나, 소수 의견에 그쳤다. 이 사건의 쟁점은 ‘왜 남성만 처벌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외에도, 헌법상 보장된 행복추구권과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였다. A 씨 등은 “형법이 개인의 사생활 영역까지 규제해서는 안 된다”며 “남녀 간의 자유의사에 의한 성관계를 처벌하는 우리나라와 같은 입법례도 거의 없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여성부도 “혼인빙자간음죄는 여성을 성적 예속물로 보고 있다”면서 “여성을 비하하고 정조·순결을 우선시하는 관념에 기초한 것”이라며 위헌 의견을 냈다. 반면, 법무부는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제한되지만 기본권을 침해한다거나 평등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맞서왔다. 유죄판결 받은 사람들 재심 통해 무죄 받을 수 있어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결정으로, 1953년 법 제정 이래 56년 간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이 모두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당장의 수혜자는 그리 많지 않을 전망이다.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되는 사건은 한 해 수백 건에 이르지만, 실제로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는 사례는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11월 26일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혼인빙자간음죄 고소 사건은 2004년 784건, 2005년 703건, 2006년 764건, 2007년 601건, 2008년 559건, 올 들어 7월 말 현재 285건이었으나, 이 중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최근 3년 간 34건·25건·16건에 불과했고, 재판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도 같은 기간 6건·8건·3건에 그쳤다. 더욱이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의 대부분도 사기사건 등과 병합돼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로서, 단순히 혼인빙자간음죄만으로 처벌받은 경우는 극소수인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도 유부남이 미혼이라고 속인 경우나 동거하면서 다른 여자와 결혼한 경우 정도만 죄를 인정하고 있다. 남자가 내세운 결혼 의사가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한편, 검찰은 위헌 결정에 따라, 최근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경우에는 공소를 취소하고, 현재 조사 중인 고소 사건도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릴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 형법에 ‘혼인빙자간음죄’가 등장한 것은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였다. 현행 형법 304조는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僞計)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해 간음한 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했다. 쉽게 말해, 순진한 여자를 결혼 등 갖은 감언이설로 꼬드겨 순결을 빼앗은 남자를 처벌하겠다는 취지로서, 1975년 3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만5000환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로 한 차례 개정됐고, 1995년에 현재의 모양새을 갖췄다. 1995년 형법 개정 때 폐지론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유지됐으며, 특히 2002년 헌법소원 당시에도 헌법재판소는 7대 2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청구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은 사실이나, 피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 돼 사회적 질서유지를 위해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판시했으나, 7년 만에 다시 심판대에 오른 혼인빙자간음죄는 ‘위헌’ 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동안 폐지론자들은, 법이 제정된 시기엔 여성의 처녀성이 매우 중요시됐고 여성의 사회활동도 극히 제한됐지만, 오늘날은 그와 다르다고 주장해왔다. 1955년 처녀 70여 명 울린 ‘박인수 사건’ 유명 한편, 1955년에 여성의 정조 문제를 공론의 장에 올린 ‘한국판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이 50년대 혼인빙자간음의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20대였던 박 씨는 당시 유행하던 댄스홀을 드나들면서 70여 명의 미혼 여성과 성관계를 가진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았으며, 피해자 중에 유명 여대 재학생과 고위층 자제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으나, 박 씨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내가 관계한 여성 가운데 처녀는 단 한 명이었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해 당시 보수적인 사회를 경악케 했다. 박 씨의 공판에는 방청객 수천 명이 몰려 법원 유리창 수십 장이 깨지기도 했다. 1심 법원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으나, 이 판결은 항소심에서 뒤집혔고,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보수적인 성문화가 최초로 도전을 받은 사건이었다. 이 외에도, 70년대와 80년대에는 뒷바라지해준 여성과 그 가족이 ‘성공한 남성의 변심’을 문제 삼는 전형적인 케이스로 의사와 사법연수생 등이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당하는 일이 세간의 화제가 됐다. 또한 ‘고위 공직자의 아들’이라거나 ‘일류대 학생’이라고 속여 성관계를 맺고 돈을 뜯어내 구속되는 사례도 잇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