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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림 속 서랍이 움직이네

서랍으로 기억-욕망-추억 표현하는 정해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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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47호 김대희⁄ 2009.12.07 14:38:32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자주 쓰는 잡다한 물건들을 넣어두는 서랍. 쓰는 사람마다 또는 놓인 위치에 따라 다른 용도로 쓰이지만 어떤 무언가를 담아두는 쓰임새는 누구에게나 같다. 쉽게 지나치는 이런 서랍에 주목하며 물건만이 아닌 감정과 느낌 등 세상 모든 것을 담는 작가가 있다. 개인전을 10여 일 앞둔 정해윤 작가를 경기도 양주시 장흥아틀리에의 개인 작업실에서 만났다. 장흥아틀리에는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하나로 약 50여 명의 작가가 입주해 있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연구하고 작업하는 공간이다. 정 작가는 작업 대부분이 끝난 상황인지 완성된 많은 작품과 함께 작업실도 깔끔히 정리가 돼 있었다. 무척이나 설레는 모습을 보이는 정 작가는 이번 전시가 첫 개인전이라고 한다. 사실 정 작가는 대학생 시절부터 주목을 받은 젊은 작가다. 국내보다 먼저 해외에서 그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2008년 10월 영국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번이 첫 전시이기에 그만큼 설렘과 기쁨이 더 크다고 얘기한다. 정해윤 작가에게 서랍은 평범하지 않다. 욕망을 담기도 하고 기억을 담기도 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담기도 한다. 서랍에 담기는 것들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작가 자신까지도.

“내 그림의 주제는 모두 주변에 있다. 서랍은 아무 곳에나 있지만 대부분 잘 정리가 되어 있고 보통 자신이 넣고 싶은 걸 넣게 되는 데 나는 일상적이지 않은 걸 넣고 싶었다.” 정 작가의 말처럼 작품에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들어 있다. 처음엔 물(빗물)을 넣고 돌도 넣어 보고, 보이는 사물에서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이미지들까지 서랍에 넣고 싶은 건 계속 달라진다고 한다. 서랍에 넣는 주제에 대해 따로 생각지 않고 작업한다는 정 작가는 갑자기 떠오른 주제 또는 주변의 가까운 것들에 대한 관심을 서랍에 담는다. 정 작가는 “서랍은 기억이 되기도 하는데 서랍 하나하나가 기억이 되고 다 모였을 때 또 다른 큰 하나의 기억이 된다”며 “욕망을 담은 작품, 아파트 속 사람들의 일상과 모습을 담은 작품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누가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그림”이라고 덧붙였다. 요즘에는 담는 매체가 서랍에서 그릇으로 옮겨지기도 한다. 많은 그릇이 그려진 그림에 대해 정 작가는 자신의 존재와 함께 그에 맞는 역할이 달라짐을 표현했다고 말한다. 자신은 하나지만 자신의 역할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기다. 가령 가족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직장에서의 역할, 사회활동에서의 역할 등 주변과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의 모습을 담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러한 역할의 주체를 나타낸 숟가락도 그림 속에 등장했다. 그리고 그 많은 역할 중 유난히 가장 크게 느껴지는 역할을 표현한, 즉 책임감을 강조한 대형 그릇을 그린 작품도 있다. 앞으로 더 담을 수 있는 매체는 계속 나올 것이라는 정 작가는 어떤 작업이 나올지 알 수 없는 묘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작가다. 정 작가는 서울대학교 동양학과를 졸업했는데 학생 시절부터 서랍 시리즈는 시작됐으며 지금까지 이어진다. 물론 처음과 지금은 많이 다르지만 서랍이라는 주제는 그대로다. 그림 속 서랍과 함께 유독 눈에 띄는 점은 많은 박새와 관절인형처럼 표현된 인간이다. 흔히들 참새로 착각한다는 정 작가는 우리 주변에 참새보다 많은 새가 박새라고 한다. 바로 주변에 흔한 것들을 주제로 한다는 정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새는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며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희망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며 “자연과 박새는 아날로그로 생각하지만 인간은 숫자 0과1의 조합 같은 딱딱 끊어지는 디지털로 생각하므로 관절인형처럼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자연과 새는 어디를 가도 같은 모습으로 변하지 않지만 인간은 나라마다 다른 언어와 모습 그리고 세대별로 다른 시대를 살기에 분절된 모습의 관절인형으로 그렸다고 한다. 정 작가의 작품은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그동안 잊고 지낸 것들에 대한 소홀함을 다시금 돌아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런 건 잊고 살면 안 된다”라고 느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정 작가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주는 그림,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만드는 그림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주관적 생각을 강조하는 예술이 아니라, 주변에서 쉽게 생각하고 간과해버리는 것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정 작가의 다음 작업이 벌써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그는 12월 11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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