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종로구청, 돈 허투로 쓰려면 그냥 나눠줘라
최근 한 달 새 대학로를 두 번 가보고 두 번 다 놀랐다. 한 달 전에는 36억 원을 들여 도보 한가운데 사람들 빠지라고 ‘돌허방’을 만들어 놓은 모습에 놀라고, 이번에는 그렇게 큰 돈을 들여 만든 시설물을 또 돈을 들여 ‘하수구’로 만들어놓은 모습에 놀랐다.
11월 어느 날 대학로에 약속이 있어 나가니, 인파가 가장 많은 도보 한가운데 깊이 50cm 정도의 구멍이 패여 있었다. 물이 졸졸 흐르고 있어 조경 목적으로 만든 시설물인 줄은 알겠지만, 그 모습은 공포스러웠다. 필자가 약속 때문에 그곳에 갔듯, 대학로는 많은 주점과 공연장이 밀집해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시선은 땅이 아니라 네온사인·광고판 등으로 향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발밑에는 깊이 50cm의 돌로 단단하게 파놓은 허방이 있다니! (관련 기사 35면)
기자가 서울시와 종로구청을 상대로 취재해 11월 17일자에 실은 기사에서도 놀라운 사실이 지적됐다. 구청이나 시청 관계자 모두 “설계 점검 단계에서 ‘위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설계 의도를 존중해 그냥 설치했다”는 설명을 태연스레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그 개념이 없어진 지 오래지만, 공무원은 원래 공복, 즉 공중에 대한 서비스맨이다. 주인을 모시는 종이 주인에게 위해가 갈 수도 있는 일을, 문제 제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 한 번 해보자”고 밀어붙였고, 그래서 주인이 다쳤다면, 그 종은 어떻게 돼야 하는가?
하지만 우리 공무원들은 그간 ‘36억짜리 돌허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부상을 입힌 뒤 단 한마디 사과도 없이 이번에는 또 돈을 들여 돌허방 위를 강화유리로 덮어버리기만 했다. 덮은 뒤의 결과는? 그저 보도 한가운데 하수구가 지나가는 모습이 돼버렸다. 덮는 공사를 하는 데 또 얼마나 돈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36억의 돈을 들여 보도 한가운데 유리 덮인 하수구를 만든 모양이 됐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사과와 돈의 문제다. 행정기관이 문제를 일으켜 시민들에게 부상과 부담을 안겼다면 사과부터 해야 한다. 스리슬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돌허방 인근 상인들은 사람들이 자주 허방에 빠져 다치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 하소연했었다.
돈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36억 원이 작은 돈인가? 도보 한복판에 돌허방을 팠다가 다시 덮는 돈은 고스란히 설계·시공 업체들에 주어졌고, 이익으로 남겨졌을 것이다. ‘문제 있는’ 설계·시공을 하고도 돈을 번 것이다. 그 돈은 국민의 세금이다.
일자리가 없다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서울시는 길에 넘치는 실직자를 위해 일자리 알선센터를 운영 중이고, 정부는 ‘희망근로’라는 근로사업을 벌여 돈을 풀고 있다. 36억 원의 돈을 소수의 업자에게 주지 않고 그냥 대학로 인근에서 추운 날씨에 장사를 하거나 거리를 방황하는 실직자들에게 나눠줬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하였을까? 그 돈은 종로구의 경기를 살리는 데 도움을 줬을 것이다.
어느 경제학자는 정부가 경제를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나 종로구청에 예산이 남아돌아, “길 가운데 허방을 한 번 파볼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뭔가 사업을 벌일 생각 말고, 그냥 돈을 주민들에게 나눠 줘라.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 하는 공무원보다는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이 차라리 낫다.
최영태 desk@cn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