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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시선]세밑의 겨울, 음지의 아이들

“우리 모두 산타클로스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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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150·151 편집팀⁄ 2009.12.28 14:55:22

얼마 전에 현아(가명)라는 어린아이를 알게 되었다. 후배 녀석이 야학에서 봉사를 하면서 알게 된 아이인데, 그 아이를 돌보다가 너무 가슴이 아파 도와줄 방법이 없겠는지 내게 물어온 것이다. 점퍼를 파고드는 이 맹추위 속에서도 늘 어두운 표정으로 낡고 얇은 옷 한 장을 겨우 걸친 채 외할머니가 기다리는 단칸방으로 터덜터덜 향하는 현아의 모습에 후배의 가슴이 많이 아팠나보다. 어린 현아는 서울 인근의 어느 쪽방촌에서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까지 부모와 함께 살았지만, 들리는 소문에는 부부 간에 불화가 심하여 어린 현아가 보는 앞에서 어머니가 자살이라는 잘못된 길을 택하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자살한 후, 아버지는 곧 새로운 여인을 만나 재혼하였다.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새어머니가 데려온 형제들과 함께 살게 된 현아였지만, 새어머니의 구박과 핍박이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한창 군것질을 좋아할 나이에 과자는 입에도 대지 못하도록 새어머니는 종주먹을 댔으니, 떼쓰고 투정하는 일은 엄두도 못 냈다. 게다가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여 뼈만 앙상하게 남아버렸다. 또한 씻기지 않아 위생도 엉망이었고, 형제들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필자가 119 상황실에 근무할 때 종종 경험했던 전형적인 아동 학대의 모습 그대로였다. 결국, 보다 못한 외할머니가 현아를 몰래 데리고 나와 지금의 쪽방촌에서 단둘이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병을 앓고 있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꾸려야 하는 생계가 만만할 리 없었다. 동사무소의 지원과 노령연금 등이 있어도, 한겨울의 생활비로는 역부족이었다. 화장실이 따로 없는 냉골방에서 그 흔한 참고서 하나 없고 맛있는 반찬도 못 먹으며 어리고 작은 현아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어머니의 자살과 새어머니의 학대 과정에서 현아가 받은 정신적 상처였다. 정신적 충격과 불안증세 때문에 학우들과의 관계도 겉돌아 정신과 치료가 시급한 실정이지만, 치료비가 없으니 상담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현아의 할머니 역시, 여러 가지 지병을 앓고 있어 치료가 시급한데도, 현아 걱정이 늘 먼저이다 보니, 정작 본인의 아픈 몸은 돌볼 겨를이 없다. 7세 소년과 77세 외할머니의 아름다운 동거를 그린 영화 <집으로>의 장면들과는 달리, 우리 이웃에 살고 있는 조손가정들의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얼마 전에 발표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에 의하면, 조부모가 생계를 책임지는 조손가정의 경우 절대빈곤율이 63.7%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상대적 빈곤은 더욱 심각할 것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 가장 타격이 큰 계층이 빈곤층 아동들이기도 하다. 소년소녀가장·결손가정·결식아동·조손가정 등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사회적 목소리가 크지 않은 아동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우리가 모른 채 지나치기가 쉽다. 특히 급속한 산업화·도시화 이후 핵가족화 현상과 경제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가족 해체가 심화되는데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여, 아동 보호 기능은 약화되고 빈곤 아동의 수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130만 명 정도의 아동이 상대적 빈곤 상태에, 60만 명 정도의 아동이 절대 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재정 지원 확대, 급식 지원, 공부방 운영, 상담센터 운영 등 빈곤 아동들에 대한 정책 지원이 확대되어야 함은 발등의 불이다. 그러나 정책적인 해결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사회적 인식과 관심의 전환이다. 빈곤 아동들은 학교나 동네에서 따돌림이나 편견에 의한 이중고를 겪게 된다. 우리 역시 주변에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저런 아이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가르치는 모습을 많이 보거나 직접 경험했을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봉사하는 아동복지시설들은 이사할 때마다 지역 주민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혀야 했고, 일부 주민들은 아동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편견은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얼마 전, 탈북 아동들과 일반 아동들이 함께 공부하는 초등학교에 관심이 가게 되어, 잠시 견학한 적이 있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과연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다행히도, 탈북 아동 또는 북한에 대한 편견이 아직 머릿속에 자리 잡지 않은 어린아이들이었기에 북한 출신이건 남한 출신이건 상관없이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참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한 탈북 청년으로부터 듣게 된 학교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좋은 사례이다 보니 학교의 성공적인 운영을 한 방송사에서 TV 카메라에 담았고, 그 방송을 본 학부모들이 자신들의 편견을 자녀들에게 전이시키게 되어, 방송 후 남한과 북한의 아이들 간에 갈등이 생겼다는 것이다. 또한 TV 방송 역시 어른들의 시각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방송을 본 아이들은 어른들의 편견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른들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현아와 같은 아이들을 얼마든지 만나볼 수 있다. 다만 우리의 편견과 따돌림 때문에 자꾸자꾸 음지로 숨어들어가고 있을 뿐이다. 음지에서 수많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간다. 그러므로 빈곤 속의 아이들을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 아이들의 경제적·정서적 고통은 단지 그들 부모들의 잘못만은 아니며, 이웃과 사회 공통의 책임이기도 하다. 이제는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작은 정성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함께 반찬을 나누고, 잠시 안부를 물어주고, 쓰지 않는 물건을 나누는 정성만으로도 현아와 외할머니의 겨울은 더욱 따뜻하고 행복할 것이다. 요즘 길거리에서 구세군 자선냄비 활동에 동참해보면, 시민들의 마음이 얼마나 얼어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아마 어려운 경제 사정 탓만은 아닐 것이다. 각박한 세태가 우리네 마음을 얼어붙게 했을 것이다. 빈곤층 아이들의 가정에는 올해에도 산타클로스가 오지 않았다. 이웃의 어른들이 그들의 산타클로스 또는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현아 또는 현아와 같은 아이들을 일시적으로 돕거나 장기후원하고 싶은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도서 지원, 재정 지원, 난방유 지원 등, 작은 정성이 큰 사랑과 기적을 만들어갑니다(ysangy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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