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문대 공대생의 신입 여학생 여러 명 성추행, 그리고 세계 최고의 스포츠 스타 타이거 우즈(미국 프로 골퍼)의 여성 편력과 그에 따른 섹스중독 치료소 입소 등 성과 관련된 사고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미국에는 타이거 우즈가 6주 합숙 치료에 거금 6만5000달러(한화 7500만 원)를 내고 입소했다는 섹스중독 치료소처럼 여러 가지 형태의 섹스중독 치료 시설들이 운영되고 있다. 그만큼 섹스중독자가 많다는 반증이다. 반면, 한국에는 섹스중독이란 개념도 생소하고, 따라서 치료 모임이나 치료 기관도 거의 없는 상태다. 한국에는 섹스중독자가 없기 때문인가? 아니다. 섹스중독은 분명히 존재하고 문제가 되고 있지만, 사회적 조명을 받지 못할 뿐이다. 섹스중독이란 도대체 어떤 증상을 말하는 것인지, 치료는 가능한지, 우즈 같은 스타에게 섹스중독은 불가피한 것인지 등을 점검해본다. 섹스중독(sexual addiction)이란 개념에 대해서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정신장애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문화적 부산물일 뿐 정신장애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학계 공식 합의 없지만 정신장애의 하나로 분류되는 추세 정신병 판단에 대한 세계적인 기준은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펴내는 ‘정신 장애에 대한 진단 및 통계 매뉴얼’(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줄여서 DSM)이다. 가장 최신판인 DSM-IV-TR 판에도 ‘섹스중독증’ 항목은 포함되지 않았다. 아직 학계에서는 공식적으로 섹스중독증을 정신병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식 항목으로 섹스중독증을 포함시키지는 않았지만, 이 매뉴얼은 섹스중독증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는 하다. ‘달리 정의되지 않은 성적장애’라는 이름으로, ‘성적 상대를 사람이 아니라 대상(thing)으로만 인식하면서 연속적으로 성적 관계를 맺는 정신적 장애’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람을 섹스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면서 연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상태로 규정해놓은 것이다. 반면, 세계보건기구(WHO)가 펴내는 ‘국제질병기준’(ICD)은 가장 최근 판인 10판에서 ‘과도한 성적 충동’이란 병명 아래 남자의 음란증(satyriasis)과 여성의 색정증(nymphomania)을 등재시켜 놓았다. 앞에서 말했듯 섹스중독증에 대한 학계 공통의 정의는 아직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마약·알코올 중독 같은 중독 증상의 한 가지로 섹스중독증을 보는 견해이며, 다른 하나는 억압·충동 증상의 한 가지로 보는 의견이다. 인생 망가지는데도 성적 행위 계속 추구 타이거 우즈가 입원한 파인 그로브 행동센터(미시시피 주 소재)의 섹스중독 치료 프로그램인 ‘젠틀 패스(Gentle Path)’의 프로그램 관리자 패트릭 칸스 박사는 중독의 입장에서 섹스중독을 보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섹스중독의 특징으로 ▲아주 외설적인 섹스 행위에 빠지고픈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는 행동을 반복하고 ▲자신의 의도보다 더 오랫동안, 더 광범위하게, 자주 성행위에 빠져들며 ▲이런 행동을 스스로 저지하려고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며 ▲일·공부·가사·사회적 의무를 해야 할 시간에 폭력적인 섹스 행위에 몰두한다는 등의 특징을 꼽았다. 억압·충동 모델로 섹스중독증을 설명하는 제니퍼 슈나이더 박사는 섹스중독의 특징을 ▲충동성: 성적 행동을 계속할지 멈출지를 조절하는 능력이 없다 ▲문제가 생기는데도 계속 성적 행동을 추구: 섹스 추구 때문에 가정에서 멀어지고 자녀를 돌보지 않으며 배우자가 떠나가는 등 문제가 발생해도 돈·결혼·가정·직장의 상실을 무릅쓰고 계속 성적 행위에 집착한다 ▲집착: 성적인 상상을 하루 종일 하느라고 다른 일을 못 한다 등 세 가지 특징으로 정리했다. 미국에는 대도시마다 수많은 섹스중독증 치료 모임과 유료 치료시설 등이 운영되고 있다. 알코올중독증 환자들이 모여 스스로를 돕는 자조 모임인 ‘알코올중독자 갱생회’(Alcoholics Anonymous, 줄여서 AA)를 본딴 섹스중독자 갱생회(Sex Addicts Anonymous, SAA)가 대표적이다. 미국엔 도시마다 다양한 치료 모임 활동 중 이 밖에도, 섹스홀릭 갱생회(Sexholic Anonymous), 성적 충동 갱생회(Sexual Compulsives Anonymous), 섹스와 사랑 중독자 갱생회(Sex and Love Addicts Anonymous) 등이 인기 있는 서로 돕기 모임이다. 이들 모임들은 알코올중독자 갱생회가 1935년부터 개발해 완성한 12단계 치유 시스템을 원용해 서로 자신의 섹스중독증을 고백하고 상호 지원하는 방법으로 치유에 나서고 있다. 미국에서 이런 모임들이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근거는, 지난 1935년 설립돼 그간 알코올중독을 성공적으로 치유해온 AA의 12단계 치유법을 잘 원용해 사용하고 있으며, 중독증을 치료할 수 있는 전문가도 다양하게 양성돼 있기 때문이다. 섹스중독증 환자가 없는 게 아니라 단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인 한국에서도 앞으로 이러한 치유 공동 모임 등이 활성화돼야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치유 전문가 양성이 먼저 이뤄져야 하며, 섹스중독증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