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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딸 갈등 그린 연극 <뷰티퀸>

‘엄마는 항상 조건 없는 사랑 베푼다’에 의문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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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156-157호 이우인⁄ 2010.02.08 17:16:21

아일랜드 리넨의 외딴 농가. 이 작은 집에는 70세 노모 매그와 40세 늙은 딸 모린이 살고 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딸에게 모든 것을 내맡긴 엄마, 그런 엄마를 증오하는 딸, 어쨌든 이상적인 모녀의 모습은 아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모린이 마흔 살이 되도록 혼자인 이유가 매그 때문인 것. 이미 오래 전에 시집가서 연락조차 없는 두 언니를 대신해 모린은 매그를 떠맡게 된 것이다. 처음엔 엄마니까 자식으로서 돌보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착한 딸 모린. 그러나 자신밖에 모르는 매그에게 점차 실망하고, 이제는 죽지 못해 같이 사는 기막힌 모녀가 돼 있다. 연극 <뷰티퀸>은 <필로우맨>(원제 The Beauty Queen of Leenane)의 작가 마틴 맥도나의 처녀작이다. 맥도나는 이 작품으로 ‘21세기 연극계의 천재작가’ ‘포스트 셰익스피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뷰티퀸>은 맥도나가 25세 되던 해에 8일 만에 쓴 작품으로 알려졌는데, 놀랍게도 1998년 토니어워즈에서 최고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고 5개의 시상식에서 연출상 등을 수상한 업적을 기록했다. 세상이 <뷰티퀸>을 알아본 이유는 연극을 보면 알 수 있다. 남성 작가이면서 여성의 마음, 엄마와 딸의 마음을 아주 적나라하게 꿰뚫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엄마란 존재는 늘 희생하고 따뜻하고 아름답게 그려져왔다. 작가는 그러한 생각에 삐뚠 마음을 품었는데, 의외로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아마 엄마는 절대 죽지 않을 거야. 영원히 거기 버티고 있을 거야. 날 괴롭히기 위해서(모린).” “난 절대 안 죽어. 일흔 살이 돼서야 내 장례식을 치르게 될 걸. 그때 애프터세이브 냄새를 풍기며 네 허리에 팔을 두를 남자가 몇이나 있겠니(매그)?” 극 중 매그와 모린의 대사다. 엄마라면 지긋지긋해진 모린은 ‘엄마 제발 죽어’라는 잔인한 생각을 말(言)이라는 용액에 희석해 슬쩍 내비친다. 그러면 매그는 그 숨은 의미를 아주 잘 알면서도 장난으로 받아쳐내며 모린과의 정면 대결을 피한다. 왜냐면, 모린은 매그와 살고 싶지 않은 반면, 매그에겐 모린과 꼭 함께 살아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분유와 죽을 매일 만들어주고 말 상대가 돼주는 모린이 없으면 앞으로의 여생이 고단할 것임을 잘 알아서다. 엄마는 자식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존재로 그려져왔지만, 연극 <뷰티퀸>은 그 통념을 부순다. 자기 자신을 위해 자식의 인생을 소비하는 늙은 엄마. 그리고 그 엄마에게 뒤늦게 복수하는 늙은 딸. <뷰티퀸>은 어쩌면 가족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를 괴롭히는, 세상에서 가장 뻔뻔한 죄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뷰티퀸>은 <스프링 어웨이크닝> <웨딩싱어> <마이 스케어리 걸> <쓰릴미> 등 진정성이 가득한 뮤지컬 작품들을 제작해온 뮤지컬 제작사 뮤지컬해븐의 연극 브랜드 ‘노네임 씨어터 컴퍼니’가 처음 내놓은 연극 작품이다. 106석의 소극장을 관객으로 가득 메운 연극은 말이 필요 없는 완벽한 원작에 사실적인 색감의 조명, 당시 아일랜드의 분위기를 잘 살린 무대와 소품들, 홍경연·김선영·신안진·김준원의 캐릭터에 뜨겁게 녹은 연기까지 흠잡을 데 없이 완벽 그 자체였다. 그러나 평소에 사이좋은 엄마와 딸이 함께 보는 일은 왠지 권하고 싶지 않다. 이 연극을 보고 나면 보기 전까지 굳게 맞잡았던 손을 놓고 싶어지는 끔찍한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연극 <뷰티퀸>은 2월 28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Space111에서 공연된다. 문의 02-744-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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