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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O 사태, 결국 검찰이 나섰다

불공정 계약 있는지 중점 수사…판결 뒤집을지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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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61호 김진성⁄ 2010.03.15 15:42:08

100여 개 중소기업과 은행들 사이의 싸움으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KIKO 사태에 대해 결국 검찰이 “개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5일 KIKO 피해 중소기업들이 시중 은행 네 곳을 사기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금융조세조사 2부에 배당하고 KIKO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이에 따라, 지난 2월 법원에서 원고 측 중소기업들의 패소를 선고한 결과를 검찰이 뒤집을 수 있을지에 금융계와 기업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은행이 고객인 기업을 상대로 사기를 벌였다’고 주장하는 중소기업인과 ‘부당한 이득을 취한 일이 없다’며 항변하는 은행 간의 2라운드 공이 이제 막 울린 것이다. KIKO가 뭐길래…경제 석학들도 의견 엇갈려 KIKO란 ‘녹인 녹아웃(Knock-In, Knock-Out)’의 영문 첫 글자에서 따온 말로,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한 환 헤지 상품의 하나다. 약정환율과 변동의 상한(Knock-In) 및 하한(Knock-Out)을 정해놓고 환율이 일정한 구간 안에서 변동하면 약정환율을 적용받고, 하한 이하로 떨어지면 계약을 무효로 하며, 상한 이상으로 올라가면 약정액의 1~2배를 약정환율에 매도하는 방식이다. 환율을 기준으로 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환율 변동에 따라 손해가 날 수도, 이익을 볼 수도 있지만, 은행을 통해 KIKO 상품을 구매한 중소기업들은 하나같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내용을 은행이 말해주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KIKO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기업들의 모임인 ‘환 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은행들이 KIKO 상품을 판매하면서 실제로는 은행의 기대이익이 기업의 기대이익보다 2배 이상 높으면서도 계약서에는 양측의 기대이익이 동등한 것처럼 꾸며 계약을 유도했다”며 법적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공대위는 신한은행과 씨티은행·SC제일은행·외환은행 등 시중 4개 은행이 불공정한 KIKO 계약을 체결해 지난해 연말을 기준으로 113개 기업을 상대로 8233억 원을 가로챘다고 주장한다. 은행과 기업의 싸움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금감원과 공정위 등에 민원을 넣는 수준에 그쳤던 중소기업의 대응은 공정위가 “약관법상 문제없다”는 해석을 내리면서 법정 싸움으로 치닫게 됐다. 2008년 8월 KIKO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S사가 SC제일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듬해 8월에는 서울고등법원이 공대위가 제출한 ‘KIKO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고, 비슷한 사안의 재판에서도 모두 은행 측이 승소했다. 이후 올해 2월 서울중앙지법이 주식회사 수산중공업이 우리은행과 씨티은행을 상대로 낸 KIKO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은행과 기업 양측의 대립은 더욱 첨예한 양상을 띠게 됐다. 특히 양측은 이 소송에서 각각 세계적인 석학을 증인으로 내세우면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기도 했다. 공대위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로버트 F. 엥글 교수를 증인 자격으로 내세워 “KIKO는 불공정한 계약”이라는 주장을 펼쳤으며, 은행 측도 이에 대항해 ‘파생상품의 대가’로 불리는 미국 메사추세츠공대 스티븐 로스 교수를 증인으로 출석시켜 “KIKO는 수출 기업의 환헤지를 위한 상품이고 기업과 은행 어느 한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조는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법원은 판결문에서 “환율이 상승하면 이론상 무제한의 손실을 본다는 기업 측 주장은 외화 현물이 없는 상태에서 투기적 통화 옵션 계약을 체결했을 경우”라며 “외화 현물이 있는 경우 환 위험 헤지를 목적으로 통화 옵션 계약을 체결하면 환율 상승에 따라 현물 자산에서 이익을 보는 만큼 이익과 손해가 상쇄된다”고 언급했다. 덧붙여 법원은 “계약 당사자의 손익이 불확실한 요소에 연계돼 있다면 계약 체결 당시의 상황을 참작해야 한다”며 “계약 체결 당시 국책·민간 연구소 어디에서도 환율 급등을 예상하지 못했고, 수산중공업은 이전에도 20여 건의 장외 파생상품의 거래 경험이 있는 만큼, 은행 측이 상품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는 원고 측 주장은 이유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공대위 “은행의 부도덕함 고발할 것” 지난달 8일 법원의 판결을 접한 공대위는 이틀 뒤인 10일 ‘KIKO 판결 규탄 및 형사고발 결의대회’를 갖고 결의문을 발표했다. 공대위는 결의문에서 “이번 판결에 기업들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으며, 명백한 사기인 KIKO 상품을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중소기업을 상대로 판매한 부도덕한 은행들을 규탄한다”면서 “KIKO 상품을 판매한 부도덕 은행들을 검찰에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대위 측 관계자는 “은행의 폭리와 부당한 행위를 규명하기 위해 기업이 은행 측에 요청한 ‘문서 제출 명령’은 재판부가 기각하고, KIKO 상품의 구조를 비롯한 주요 내용에 대해 충분한 심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기업에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며 “이는 원화값 상승으로 가뜩이나 경쟁력이 약화된 수출 중소기업을 더욱 어렵게 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여러 가지 잘못된 불완전판매 요소들을 은행에 대한 조사를 통해 밝혀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이를 무시했다”며 “약관 여부에 대해서는 금감원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밝힌 재판부가 금감원이 밝힌 은행의 잘못은 무시한다”며 재판부의 이중적인 태도를 규탄했다.

참고로, 금감원은 올해 1월 20일 금융회사가 새로운 파생상품을 개발해 기업에 판매할 경우 거래 대상, 거래일, 거래 금액 등을 금감원에 보고하도록 하는 ‘파생상품 종합정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파생상품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KIKO 사태에 대해 금융 당국이 신규상품을 파악하지 못해 손실을 키웠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금융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편,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국내 모 매체에 기고한 글을 통해 “신용을 기본으로 하는 은행이 고객을 속인 것이 KIKO 사태의 본질”이라며 “은행 측은 고객에게 손해를 입히고도 사과는 커녕 KIKO 미납 상환금 확보를 위해 기업의 예금 인출을 정지하거나 기업 자산에 대한 가압류 조치를 취했다”며 은행들의 처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검찰 “KIKO 설계구조와 계약서 내용 확인이 우선” 재판부가 은행 측의 손을 들어주고 보름가량 지난 2월 25일, 공대위는 한국씨티은행·한국외환은행·SC제일은행·신한은행 등 4개 은행 임직원 34명을 상대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이날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한 안용준 공대위 공동위원장은 “검찰 수사를 통해 KIKO 관련 의혹을 밝히고 은행의 사기 혐의를 밝혀내 응분의 처벌이 내려지길 바란다”며 “특히 그동안 KIKO에 투자한 중소기업들을 ‘투기꾼’으로 바라봤던 시각이 검찰 수사를 통해 바뀌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검찰 측은 우선 고발장 접수를 받은 뒤, 지난 5일 KIKO와 관련된 수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2008년 이후 100여 개 중소기업이 은행들을 상대로 KIKO 관련 소송을 제기한 바 있지만, 수사기관이 직접 개입하는 것은 처음이다. 우선, 검찰은 공대위에 의해 고발된 4곳의 시중은행이 KIKO 상품에서 은행의 기대이익인 콜옵션 가치를 풋옵션 가치보다 평균 2.2배나 높게 설계한 뒤 양측의 기대 이익이 동일한 것처럼 꾸며 계약을 유도했다는 공대위 측의 주장에 따라, KIKO 상품의 설계구조가 계약서 상 설명과 동일한지 여부를 확인하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아울러 은행이 기업과 계약을 체결하기 전 해당 기업들에게 수수료 부과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환율이 계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전망해 고의로 기업의 판단을 흐리게 했는지도 수사를 통해 확인할 예정이다. 한편, 고발된 4곳 은행은 이번 검찰 수사 진행에 대해 한결같이 “수사가 진행되는 중이기 때문에 특별히 언급할 내용이 없다”는 입장을 보여 “부당한 이득을 취한 일이 없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던 재판 승소 직후의 입장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법원 판결에서 번번이 은행 측에 참패했던 공대위가 결국 시중은행 4곳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새로운 양상의 싸움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될지, ‘다윗과 골리앗의 기적’이 일어날지, 양측을 지켜보는 기업인들과 금융계의 관심이 자못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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