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 편집국장 ‘20대 전반전 - 불안을 강요하는 세상에 던지는 옐로카드’라는 책이 나왔다. 책 표지도 노랑색이다. 서울대 교내언론 ‘교육저널’에 실린 글들을 모은 책인데, 여러 글 중에서도 문수현 대학원생(영어영문학과)의 글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식당 서빙 일을 해봤다는 문 씨의 경험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그녀는 미국 식당에서 일할 때는 힘들어도 ‘노동이 주는 즐거움’을 느꼈다고 했다. 한국 식당에선 ‘절망하는 법’부터 배웠다고 했다. 같은 서빙 일인데 태평양 건너 두 나라가 왜 이렇게 다를까? 그녀가 드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손님들의 태도. 그녀의 경험에 따르면, 손님이 물을 달라고 요구할 때, 한국인은 “여기, 물도 안 줬어요” “손님한테 물도 안 줘요?”라고 따지고, 미국인은 “물 좀 갖다 주면 고맙겠어요” “물 한 잔만 갖다 줄래요?”라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한국 스타일은 모욕을 주는 방식이고, 미국 스타일은 부드럽게 일을 시키는 방식이다. 이런 차이를 그녀는 ‘그들(미국인들)이 노동의 고됨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다음은 근무환경. 식당 서빙 일은 대개 ‘하루 몇 시간’을 정해 놓고 한다. 다른 점이라면 한국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는 손님이 없으면 주인이 “손님이 없으니 나가라”고 요구하면서 밖으로 내쫓아 시급을 아낀단다. 즉, 미국에선 하루 8시간 일하기로 했으면 손님이 많거나 적거나 8시간을 일하지만, 한국 패밀리 레스토랑에선 손님의 양에 따라 수시로 일하는 시간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손님이 없으면 아무 때나 ‘무급휴식’이고, 반대로 손님이 많을 때는 기름에 데어도 약 바를 시간도 안 준단다. 이런 차이에 대해 문 씨는 “열악한 근무환경보다 더 화나는 것은 그들(점주·매니저)이 우리에게 ‘절망하는 법’을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라고 썼다. 한국의 식당 손님들이 서빙하는 사람을 천대하는 바탕에는 “너와 나는 근본이 달라” 또는 “나는 절대로 너 같은 일을 안 할 거야”라는 생각이 깔린 것 같다. 또는 손님 자신이 자기 일터에서 겪는 모멸감을 식당 종업원에게 옮김으로써 일시적 만족·자부심을 느끼는 심리적 반응이랄 수도 있겠다. 반면, 미국인의 태도에는 미국 문화의 특징이라는 “너나 나나 신 앞에서는 다 같은 사람”이 깔렸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이렇게 다른 문화에서 일을 한 젊은이는 점점 더 다른 사람이 돼 간다는 것이다. 미국 식당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은 몸은 힘들어도 노동의 즐거움을 맛보고 ‘일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반면, 한국에서는 ‘절망하고 화난 젊은이’가 되기 쉽다. 한국 사회에서 정말로 궁금한 점은 ‘화나고 절망한 젊은이’를 많이 만들어내서 도대체 어디 쓰려고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기 꺾인 젊은이는 당장 부리기는 좋을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고분고분할 테니까. 그런데 또 요즘 화두는 ‘콘텐츠 경제’이고, 21세기에 나라가 잘 되려면 젊은이들의 창의성이 좋아야 한단다. 한쪽에서는 기를 꺾지 못해 안달을 떨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왜 우리 젊은이들은 패기·창의성이 없냐” “왜 우리에겐 스티브 잡스(애플 컴퓨터의 CEO)가 없냐”고 난리를 치니, 참 요즘 젊은이들도 답답하기는 하겠다. 최근 보도를 보니, 손님 없다고 아르바이트생을 매장 밖으로 내쫓아 강제로 쉬게 하는, 즉 세계 최고의 ‘노동 유연화’ 기술을 자랑하는 한국의 패밀리 레스토랑 업계가 일부를 제외하고는 장사가 안 돼 망할 지경이란다. 일부는 매물로 나와도 사는 사람도 없단다. 아르바이트생의 등골을 빼먹는 기술을 최대로 활용하다가 결국 몰락의 길을 걷는 최후는 패밀리 레스토랑에만 한정될까? 비슷한 기술을 구사하는 한국 경제는 앞으로 잘 달려 나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