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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행한데 너는 행복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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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78호 최영태⁄ 2010.07.12 16:39:30

최영태 편집국장 이번 호에는 한양대 관광학부 손대현 교수의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슬로시티’ 운동의 한국본부를 이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인터뷰에서 가장 와 닿는 말은 ‘사는 사람이 행복해야 관광객도 행복하지요’라는 말이었습니다. 손 교수의 말을 들으면서 한국의 관광수지가 만년 적자라는 사실을 생각해봅니다. 적자도 아주 큰 적자죠. 한국인이 놀러 또는 쉬러 해외에 많이 나가는 반면, 외국인이 한국에 놀러 또는 쉬러 오는 경우는 훨씬 적다는 증거입니다. 손 교수의 말을 들으면서, 제가 외국에 나갔던 경우를 되새겨보았습니다. 제 경우는 대개 선진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 기분 좋더라고요. 후진국으로 갔을 때는 휴양지 시설이 아무리 ‘외국인 기준’에 맞춰 좋아도 별로고. 예컨대, 동남아에는 휴양지를 아예 ‘현지인 통행금지 구역’으로 만들어 철조망을 쳐놓고 운영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 리조트에 들어가 극진한 봉사를 받으면서도 즐겁기는커녕 왠지 불편하고, 특히 리조트 밖으로 차를 타고 나가면 구멍 뚫린 도로 하며 퀭한 눈의 현지인들 얼굴을 보면 정말 우울해지더라고요. 서울을 세계 최고의 디자인 도시로 만드는 것도 좋고, 도시 미관을 최신식 LED 조명으로 휘황찬란하게 가꾸는 것도, 한강 다리에서 분수가 뿜어져 나와 환상적 장관을 연출하는 것도, 다 좋습니다. 그런데 밤 10시가 넘어, ‘밤거리 안전도’가 세계 최고인 한국의 거리에서, 자율학습을 마치고 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우울한 학생들의 모습은 어떻게 할 건가요? 한국 신문·방송을 보면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오는 공직자·회사임원의 추문들, ‘어이없는’ 행동을 쉬지 않고 해대는 정치인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유명인의 자살 행렬, 세계 최고의 자살률 등은 어쩔 건가요? 이런 건 어떻게 돈 처들여 ‘디자인’ 안 되나요? 저는 다른 건 다 그만두더라도 밤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의 어두운 얼굴들, 그리고 이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이나 시선을 옆에서 보면 너무 안쓰럽고 가슴 아프고 약 오릅니다. 청소년의 활달한 모습이야말로 최고의 거리 디자인인데, 지구상의 어느 나라가 청소년들을 ‘고문’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외국인에게 행복한 나라라고 자랑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것저것 돌아볼 필요 없이 우리들 행복부터 돌보자’는 슬로시티 운동이 한국에서 뿌리내릴 토양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의 지수가 높을수록 변동의 추진력 역시 강할 수 있기 때문이죠. 슬로시티 운동이 자리 잡는다면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예컨대, ‘디자인 서울’을 추진해도 ‘보여주기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우리가 좋으라고 하는 디자인’ 운동이 될 것이며, 예산을 투입할 때도 외지인 보기 좋으라고 투자하는 게 아니라 사는 사람 좋으라고 투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 보란 듯이 잘 사는’ 나라에서, ‘누가 보든 말든 상관없이 우리부터 행복해지자’는 나라로 바뀌는 변화가 슬로시티 운동을 통해 싹이 트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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