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성 동두천 해성산부인과 원장 나이가 40대 중반을 지나고 있다. 코엘료의 <11분>이란 소설을 읽고, 사랑도 참 허무하다는 생각을 했다. 11분에 끝나는 섹스, 오르가슴…. 남자들은 나를 만나면 자기 얘기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살아온 이야기, 지금의 상황,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지, 하지만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외로움을 얘기할 수 없는 상황들. 또 외로우면서도 자존심은 지키고, 위로는 받으면서 위험하지 않은 여자를 만나고 싶고, 시간은 없으면서도 항상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들…. 누구나 대개 비슷한 얘기들이었다. 다 갖고 싶지만 절대로 다 가질 수 없고, 손해 보지 않으면서 사람을 만나거나 사랑을 하고 싶고, 위험하지 않은 행복한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들. 결국 이익을 보고 싶다는 얘긴데, 다른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니 문제다. 모든 사람들이 모두 이익을 보고 싶어 한다. 사랑을 덜 주고 더 많이 받고 싶어 하고, 돈을 덜 쓰고 더 많이 받길 원하고, 나는 시간을 덜 쓰면서도 그 사람은 오래 기다려주길 바란다. 그런데 그게 대개의 경우는 불가능하다. 누구나 자기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의 사랑을 하고 싶고, 자기의 행복을 갖고 싶고, 자기의 생각을 펼치고 싶어 한다.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상대방 감정을 읽으려 하지 않는다. 모두 자기중심적이다. 그래서 결국 아무도 사랑을 가질 수 없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고, 사랑은 희생을 먹고 자란다. 그런 약간의 희생이 있어야 사랑이 이루어지고 유지될 수 있다. 엄청난 희생을 하면 때로 엄청난 사랑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인은 결과가 확실하지 않고 상대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 그런 희생을 감수하지 못한다. 남자들은 안전하면서도 짜릿한 여자를 찾지만, 그런 여자는 없다. 안전한 곳에 머물면서 여자가 나에게 와주길 바라지만, 그런 여자도 없다. 또한 사람들은 자기가 희생했을 때 혹시 받게 될 상처를 먼저 생각하고, 자존심을 먼저 생각한다. 때론 자기만 희생하고 바보가 될까봐 걱정한다. 그래서 계산이 빠르거나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는 현대인은 사랑을 이룰 수도, 유지할 수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외롭고 사는 게 허무하면서도, 절대로 자기를 드러내거나 자기를 희생하지 않는다. 머릿속으로는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살 걸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외롭지만 상처받기를 바라지 않고, 초라해지느니 차라리 고독을 선택하고, 혼자 놀기를 선택한다. 왜 그럴까? 만족이 없는 존재가 인간인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부족하거나 혹은 채워지지 않는 것을 추구한다. 희생하거나 헌신적인 여자랑 사는 남자는 섹시한 악녀를 매력적이라고 느끼며, 그런 여자의 유혹을 기다리거나 목말라한다. 악처와 사는 남자는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여자를 간절히 바라면서, 악처의 그늘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일탈만을 꿈꾸며 산다. 여자 또한 마찬가지다. 짐승 같은 남편과 사는 여자는 여자가 원할 때까지 섹스하자는 얘기로 조르지 않는 남자를 바라고, 너무 성욕이 없는 남자랑 사는 여자는 짐승을 원한다. 모두 공통점이 있다. 자기는 노력하지 않으면서 다른 상대가 나타나길 기다리거나, 상대방이 바뀌길 기다린다는 점이다. 인간의 유전자에는 자신의 단점을 보충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이 있다. 그래서 자기와 다른 성질을 가진 사람에게 끌린다. 하지만 살다 보면 자기와 다른 사람과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다르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만, 다르기 때문에 사사건건 다투게 된다. 이런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하고 해결할 수 있을까? 그것이 우리 유전자의 한계이고, 우리가 겪는 갈등이다. 만약에 그 갈등을 해결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파트너의 단점이 보이면 파트너를 바꾸면 된다. 하지만 파트너를 바꿀 용기가 없거나 그럴 여건이 아닌 사람은 생각을 바꾸거나, 노력을 하거나 참고 살아야 한다. 그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문제다. 돈이 많거나 권력이 많은 사람도 모두 겪는 갈등이고 고민이다. 절대로 채워질 수 없는 갈망이고 허무함이다. 다른 사람은 나의 모든 상황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만큼 나의 고민을 이해하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은 잠시 이해를 받거나 배려를 받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이 식으면 사람은 다시 이기적이게 된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정신과적으로 보면 원래 잠시 미쳐 있는 상태다. 마치 마약 중독처럼 어떤 사람에게 중독돼 있는 상태이다. 호르몬 검사를 해도 그렇고, 뇌를 검사해보아도 중독 때와 거의 같은 양상이 나타난다.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써서 미화시키지 않았다면 사랑은 일종의 중독증이다. 그런데 인간이 사랑이라는 말로 아름답게 꾸며서 사랑이 아주 좋은 것이고 환상적이라고, 꼭 해봐야 하는 그 사랑이 인간에게 없으면 삶이 무의미하다고 세뇌를 시켰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절체절명의 과제처럼 생각하고 꼭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미친 중독 상태다. 어떻게 한 사람에게 평생 미칠 수 있겠는가. 상대방이 나를 찾을 때 정말 재미있게 놀려면, 평소 혼자서 잘 놀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일부러 미치거나 중독될 사람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평생 미쳐서 살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한 사람에게 평생 미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평생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런 마음의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무엇으로 위로받고, 누구에게 위로받을까?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상처받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랑이나 사람에 대한 배신감으로 치를 떨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지 않을 수 있을까? 배신당하거나 실망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기대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 경우가 많다. 애정이 약간 식었는데도 사람이 변했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열의 속성은 식게 마련이고, 사람들은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실망하지 않으려면, 따로 또 같이 해야 한다. 함께 할 수 없을 때 혼자서 잘 지낼 수 있어야 한다. 같이 놀아달라고 보채지 않을 정도의 친구나 취미나 일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를 괴롭히게 되고, 싫증나게 하고, 달아나게 만든다. 상대방이 놀아달라고 보챌 때까지 혼자서 잘 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 행복할 수 있고, 싫증나지 않으면서 사랑이 오랫동안 신선하게 유지될 수 있다. 그것만이 유일한 답이다. 내가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상대방이 연락할 때 감동을 준비하고 있으면, 다시 열정은 뜨거워진다. 하지만 내가 먼저 연락해서 재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실망을 시키면 열정은 점점 식는다. 혼자 잘 놀 줄 알아야 한다. 사랑받고, 사랑할 준비를 하면서, 혼자 놀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