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 편집국장 토요일 예능 프로그램 중 1등이라는 ‘무한도전’이 있다. 장수 프로그램이면서도 1등을 놓치지 않으니 대단한 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은 제목 그대로 항상 새롭고도 무모한 도전을 해낸다. 또 다른 특징이라면 ‘일단 고정 출연 멤버가 정해지면 중간에 빼내지 않고 끝까지 함께 간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시청률 전쟁’이라고 표현되는 국내 방송 시장에서 출연진 갈아치우기는 상시적으로 이뤄진다. 연예인의 방송 생명은 그래서 ‘파리 목숨’이다. 이런 국내 현실에서 ‘단점이 있는 멤버를 끝까지 끌고 가는’ 무한도전식 용인술은 감동적이다. 대표적인 예가 뚱보 정형돈이다. 출연진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고 어색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개그맨 정형돈은 무한도전 이전에 출연한 여러 프로그램에서 도중하차를 많이 경험했다. 그가 나오면 어색해진다니, PD 입장에선 당장 갈아치우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달랐다. 그는 정형돈의 어색함을 오히려 적극 내세웠고, ‘어색한 뚱보’는 정형돈의 트레이드마크가 됐고, 어색함 그 자체가 웃기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버리는 용인술이다. 최고참 중 하나면서도 주변을 맴도는 정준하를 ‘쩌리짱(겉절이 중 최고 짱)’으로 만든 것도 마찬가지다. 최근 새로 합류한 가수 길이 무리수를 두며 웃기려 드는 데 대해 일부 반감을 가진 시청자가 있지만, 오히려 ‘무리수’를 그의 특징으로 삼으려는 시도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이런 용인술을 보면서 역시 사람은 단점보다는 장점을 살려야 살아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한국 사장 중에는 “자른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많다. 인력이 남아돈다면서 시도 때도 없이 직원들에게 “너 같은 사람은 몇 트럭이라도 구할 수 있다”고 노래를 부르는 사장이다. 이런 사장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구직자가 많다지만, 새로 올 직원이 ‘자를’ 직원보다 일을 잘한다는 보장은 아무데도 없다. 현재 있는 직원은 검증이라도 거쳤지, 새로 올 직원을 파악하려면 또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직원 한 명이 이직할 때마다 회사에 2000만 원씩 손해가 발생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런데도 “자른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직원들 사기를 팍팍 죽이는 사장은 도대체 회사를 살리자는 것인지, 죽이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 사회는 ‘자른다’ 논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운전면허 시험은 면허증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 주기 위해서 치러지며, 대학입시·영어시험·일제고사 등 한국 젊은이를 괴롭히는 모든 심사들이 ‘자르기 위해’ 존재한다. ‘붙이기 위해’ 운전 실력을 보고, 활발한 시도를 유도하기 위해 ‘두 번째 찬스(second chance)’를 주는 미국식 시스템에 비교한다면, 서슬 퍼렇게 무서운 게 한국 시스템이다. 이제 그만 좀 자르고, 붙이면서 살아보자. 단점을 보고 죽인다면 안 죽을 사람이 없다. 반면에, 조금 모자라도 장점을 살리면 못 살 사람이 없다. 한국 사회의 지도층이, 사장님이, 공무원이 이렇게 ‘붙이고 살리는’ 김태호 PD식 용인 정신을 갖는다면, 한국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사회공포망’ 역시 걷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