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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황해> “절망으로 가슴을 채워 주마”

더 잔인하고 무겁게 돌아온 나홍진, 김윤석,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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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202-203호 이우인⁄ 2010.12.27 13:58:21

영화 ‘황해’는 2010년 기대작이다. 영화 ‘추격자’에서 호흡을 맞춘 나홍진 감독과 배우 김윤석, 하정우 이 세 사람이 뭉쳐서 완성한 작품이라는 이유에서다. ‘추격자’는 2008년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조촐하게 개봉됐지만 그해 전국 500만 관객을 사로잡고, 나 감독과 김윤석, 하정우에게 영화제에서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상을 모조리 안기며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추격자’의 여운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고 나 감독과 김윤석, 하정우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 역시 내려올 줄 몰랐다. 그리고 12월 22일 나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황해’가 개봉됐다. 내용은 이렇다. 한국으로 일하러 간 아내는 6개월째 소식이 없고, 아내의 비자를 만들기 위해 진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직장에서도 잘리면서 사면초가에 놓인 조선족 김구남(하정우 분)은, 개장수이자 청부살인업자 면가(김윤석 분)의 청부 살인 제의를 받고 한국으로 밀입국한다. 정해진 기간에 살인을 계획하던 구남은 목표물이 눈앞에서 살해당하고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돼 도주한다. 그 와중에 조직폭력배 두목 김태원(조성하 분)과 면가가 구남을 죽이기 위해 쫓고, 구남은 내막을 모른 채 절망을 향해 달려간다. ‘황해’는 절망에 놓인 한 남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을 다하다가 결국엔 참혹하게 죽어가는 과정을 숨 막히게 그린 대서사시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구남에게는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내내 어둡고 답답하다. 하지만 액션 스릴러라는 장르에 걸맞게 액션 장면은 빠르고 생동감 넘친다. 때론 너무 사실적이어서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지기도 한다. 특히 자동차 액션 장면(car chasing)은 시원하고 통쾌하다. 이 장면을 위해 투입된 스태프만 150명이며 동원 차량 50대 중 20대가 크게 부서졌다고 한다. 액션 장면은 ‘추격자’ 때보다 더 잔인하고 사실적이다.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피를 철철 흘리거나 피범벅이 돼 죽는다. 하나 같이 외롭고 무겁고 쓸쓸한 ‘개죽음’이다. 2시간 40분에 달하는 긴 영화가 끝나고 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허무함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여운은 길지만 결코 즐거운 영화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절망하다가 절망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 개봉을 이틀 앞두고 열린 ‘황해’ 언론시사회. 나홍진 감독을 비롯해 김윤석, 하정우, 조성하의 표정 또한 영화의 분위기만큼이나 무거워 보였다. 힘겨웠던 촬영이 다시 떠오른 듯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나? 나홍진 감독(이하 나) “영화 마지막에 김구남이 죽는다. 그 남자가 죽어가는 과정을 그려보고 싶었다.” -나홍진 감독과 만나면 유독 고생하는 것 같다. 세 번째 영화의 출연 제의를 받을 생각인가? 김윤석(이하 김) “나 감독 작품은 푹 젖어서 살 수 있게 한다. 내가 이 영화에 출연 안 하고 시사회를 보는 입장이 된다면 굉장히 약이 올랐을 것 같다.” 하정우(이하 하) “나 감독의 작품은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한다. 현장에서는 연기 외에도 많은 깨달음을 준다. 동지로서, 공동 창작자로서 동기부여도 준다. 언제든 다음 작품 출연 제의가 오면 열린 마음으로 할 수 있다. 나는 힘들거나 나쁜 기억은 금방 잊는 스타일이어서 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나 감독의 생각은? “나는 얼마든지 제의할 생각이다. 하지만 두 분이 거부할 것 같아 세 번째 기록은 무산될 것 같다.” -영화 촬영은 얼마나 힘들었나? “부산항에서 구남을 쫓는 시퀀스가 있는데 배에서 액션하고 물에 다이빙한 뒤 다시 올라와 트레일러를 옮기고 카 체이싱까지 찍었다. 그때가 겨울이었다. 정말 힘들었다. 모든 스태프가 헤어드라이기와 난로를 준비할 정도였다. 물에 들어갔다가 나와 얼음을 녹이곤 했다. 개인적으로는 ‘면가’의 모습으로 1년 사는 게 힘들었다. 면가의 모습으로 가족과 식사를 하고 딸을 유치원에 보내는 슬픔이 만만치 않았다(웃음).” “나 또한 ‘구남’의 모습으로 1년 동안 살아야 했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다. 어떤 옷도 안 어울렸다. 뭘 해도 저런 모습으론 기분전환이 되지 않았다. 추웠다는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다. 아! 오늘 영화를 보니 대역을 써도 되는 장면에 내가 왜 굳이 했을까 하는 후회를 느꼈다.” 조성하(이하 조) “두 사람에 비하면 나는 힘들지 않았다. 늘 벤츠를 타고 다니고 화려한 집에서 예쁜 여자와 있었으니까. 단 한 가지를 꼽자면 1년 동안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는 것. 견디는 게 가장 큰 숙제였다.”

-‘황해’라는 제목의 의미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냥 그렇게 가야할 것 같다고 느낄 때다. 제목에 대한 질문이 많아서 어떻게 답변을 드려야 할지 고민도 해봤다. 그런데 느낌이 그냥 그랬던 것 같고 이 영화에 참여하고 만드는 분들이 제목에 대해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추격자’에서도 많이 달렸는데 ‘추격자’ 때보다 얼마나 많이 달렸는지 궁금하다. “나는 별로 안 달렸다. 그리고 ‘황해’가 ‘제2의 추격자’라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감독의 개성과 하정우, 김윤석이 다시 만났다는 점을 빼고 ‘추격자’와 비슷한 점은 없다. 심지어 면가와 구남은 국적도 다르다. ‘추격자’ 때 입은 옷이 아르마니, 베르사체였다면 면가는 9000원, 7000원짜리 싸구려 옷을 입는다. ‘황해’의 스케일이 더 크다. 재미있는 사실을 알았는데, 족발이 사람을 때릴 때 유용한 무기라는 점이다. 족발을 잡을 때 그립감이 굉장히 좋았다(웃음).” “‘추격자’ 때는 에어가 없는 깔창 운동화를 신었다면 이번엔 에어가 있는 신을 신고 뛰었다. ‘추격자’ 때보다 100배 정도는 더 뛴 것 같다. 허벅지도 두꺼워졌다. 촬영 팀은 ‘찍을수록 달리기가 빨라졌다’고 하더라. 축구를 하는데 동료들이 스피드가 좋아졌다고 말했다(웃음).” -관객들은 ‘황해’를 ‘추격자’와 비교할 것 같은데, ‘추격자’와 다른 점은? “김윤석이 말한 대로 두 배우가 나오는 것 빼고는 흡사한 점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찍은 영화인데, 옷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나? “일교차도 심하고 너무 추웠다. 나홍진 감독이 내복을 두 벌 껴입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입었는데 그 장면을 겨울에 못 찍고 여름에 찍었다. 더워서 죽을 뻔했다. 조성하와 버스 사이를 오가면서 하는 액션 신 역시 여름에 찍었는데, 설탕이 들어간 특수 피를 온몸에 바른 채 오리털 파카를 입으니 덥고 끈적거려 혼났다. 파카를 입었을 때는 지금 생각해도 괴롭다.” “그나마 오리털 파카는 참을 수 있었는데 니트 모자는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세트 촬영은 내부 온도를 최대한 영하로 떨어뜨려 괜찮았다. 로케이션은 참는 수밖에 없다. 설탕이 주성분인 가짜 피에 벌레들이 꼬여 곤혹스러웠다.” “두 사람이 힘들 때 나는 세트나 벤츠에서 시원하게 촬영했다(웃음).” -굳이 챕터(chapter)를 나눠 구성한 이유가 궁금하다. 챕터 제목엔 어떤 의미를 담았나? “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챕터를 나누는 영화를 생각해 왔다. 사실은 막 안에 기차가 달리는 이미지를 담고 싶었다. 그렇게 달리던 기차가 영화가 끝나면서 서고 여인이 나온다는 구성을 생각했는데 기차가 달리는 장면을 찍을 길이 없었다. 나중에 영화를 붙여서 편집하려고 했지만 이미 분절된 구조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네 조각의 이야기를 하나의 조각으로 붙이는 데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챕터를 나누게 됐다. 제목은 편집실에서 생각한 것을 썼는데 영화를 볼 때 이런 측면에서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넣은 것 같다. 첫 번째는 연변에서 택시를 운전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 두 번째는 그 남자가 살인자가 되어 한국에서 벌이는 이야기, 세 번째는 그 남자가 한국에서 조선족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네 번째 챕터는 그들이 모두 함께 그런 엔딩을 맺는다는 의미를 담아 지었다.” -긴 촬영 기간 동안 이 무거운 캐릭터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일단 사람을 많이 안 만났다. 영화 시사회도 안 갔다. 면가의 모습으로 가면 말이 많을 것 같고, 영화에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다. 하정우와 술을 한 잔 할 때도 웬만하면 조선족이 하는 양꼬치 가게에서 연변 술과 김치 등을 먹었다. 역할에서는 빠져나왔는데 게으름은 남아 있다. 잘 안 씻게 되더라. 씻어도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 조용히 있었다.” “나 역시 사람들과 촬영장에서만 시간을 나눈 것 같다. 유난히 긴 촬영이라고 생각했다.” -구남이 너무 불쌍해 보이던데, 가장 불쌍한 장면을 꼽는다면? “아무리 큰일을 겪어도 배고픔을 느끼는 게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힘든데도 중간 중간 뭔가를 먹는 구남의 모습을 모니터를 통해 봤을 때 ‘참 잘 먹는다’ ‘맛있게 먹는다’ ‘그래도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격적인 베드신이 인상적이다. 소감이 어떤가? “나는 별로 파격적인 것 같지 않다. 사실 나 감독과 더 많은 장면을 준비했는데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많이 못 보여줬기 때문이다. 준비한 것을 많이 못 보여줘서 죄송하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더 보여주도록 하겠다(웃음).” -끝으로, 관객들에게 한마디. “‘황해’는 2008년 5월부터 시작해 오늘 아침까지 진행돼온 제작 기간이 긴 영화다. 이 자리에 나온 우리 네 명 외에도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의 어마어마한 헌신 끝에 완성된 영화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그런 이유에서 이 영화가 잘 되길 바라고 책임감을 아주 크게 느낀다. 이 자리를 빌려 그들에게 감사드린다.” “만약에 ‘황해’로 상을 받는다면 단체상을 꼭 받고 싶다. 촬영 시작부터 지금까지 노력한 200명에 달하는 사람 모두가 보람을 느꼈으면 좋겠다.” “큰 힘과 많은 응원을 부탁한다.” “‘황해’에 대한 기대치를 갖고 극장에 와서 ‘황해’ 자체에 담긴 진미를 맘껏 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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